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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고집'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18 05:00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고집]

(출애굽기 7:8-25)

1.  신자는 고집을 가져야 할까?

신자는 고집이 있어야 할까, 없어야 할까?
싸우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고 하는 것이 
신자의 삶의 자세일까?

그럴 리가 없다.
'진리'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신자인데,
자신이 삶을 걸고 살아가는 진리와 부딪히는
'비진리'는 반드시 거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는 어떤 고집을  가져야 할까?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정도의 고집을 보여준다. 

2. 바로의 고집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갔다.
이적을 요구하는 바로에게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보여주었다.

애굽의 마술사들도 동일한 이적을 행했는데
애굽 마술사들의 지팡이를 
모세와 아론의 지팡이가 삼켜버렸다. 
그 때 바로의 반응을 대해서 성경을 이렇게 기록한다.

(출 7:13, 새번역)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애굽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는 이적을 베풀었을 때에도 
바로는 동일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출 7:22, 새번역) 그런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바로의 특징은 '고집'이었다.
그런데 왜 고집을 부렸을까?
자신과 자신의 왕국이 손해보는 쪽을 
절대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손해는 안 돼.
반드시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해.'
라는 생각이 바로의 생각이었을 것이고,
그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고집의 전형적인 이유다. 

2. 하나님의 고집

바로만 고집이 센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고집은 바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하나님은 바로가 고집 부릴 것을 다 아시면서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켜 가신다.
앞으로 애굽에 일어날 재앙은 무섭고 비참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고집이 바로의 고집을 이기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고집을 부리실까?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데 있어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더 강한 고집을 갖고 계신다. 

대제국의 왕이 자기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강력하고 무서운 고집을 부린다 해도,
하나님의 선한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 

3. 모세의 고집 

모세는 고집이 있었을까?
모세도 당연히 고집이 있었다.

계속 고집 부리며 말을 바꾸는 바로에게 
계속 찾아가서 경고를 하고 
경고에 따른 재앙이 내리는 걸 보고,
다시 재앙을 거두게 하고,
다시 바로를 찾아가 재앙을 경고하는
너무나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할 정도로 
모세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모세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고집을 부린 것일까?
모세의 고집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모세 자신이 고집을 부린 것이 아니라는 특징이다.

모세는 자신이 고집을 부린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하나 하나 재앙을 선포했는데
그것이 10가지나 되는 결과가 되었고
결국 바로의 고집을 이기는 고집스런 모습이 되었을 뿐이었다.

신자는 스스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신자는 자신의 이익에 목을 매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죽도록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라면 기꺼이 손해 보는 쪽을 선택하고 
전혀 고집을 부리지 않을 수 있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신자다.

신자가 고집스러워야 할 부분은 
이익, 손해가 아니라 따로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것에 민감해서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그는 신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이익 손해에는 고집을 부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말씀의 가치는 쉽사리 팽개친다면
그 사람도 신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이익, 손해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집스럽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만큼은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단호하고 끈질긴 고집을 가진 사람이 
참된 신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한 고집은 
다른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지키시는 분이시고,
신자는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집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4. 나는?

나는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세고 단호한 편이다. 
나의 말투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내가 매우 고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런 면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소위 '똥고집'이 세다고 주변에서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다지 고집스럽지 않을 때가 많다.
예전에는 내가 가진 의견을 철회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게 별로 어렵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의 의견을 낸다.
단호한 말투이기 때문에 내가 의견을 내면
사람들이 조금은 긴장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합리적이고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나의 의견을 포기한다. 
그 때 내 고집을 꺾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소위 '똥고집'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한 가지인 것 같다. 
말씀을 묵상한지 제법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제 내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외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내 의견'이 통과되고 묵살되는 것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의견을 포기하는 것도 쉬워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말씀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결코 그 선택을 할 수 없어서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내 생명이 달린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작은 사건이 있었다.
판단을 잘못해서 작은 손해를 본 것이다.
예전 같으면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서 자책하고 
손해가 아까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담담했다.
손해를 보았고 
제법 불편해지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말씀의 가치를 손상시킨 것이 없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에 방해가 될 상황은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해와 이익에 민감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이번을 포함한 요즘 나의 이런 반응이 
참 감사한 마음이다.

말씀에 삶을 걸고 살길 소망하는 내 삶이 
나에게 준 작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나의 유일한 고집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 되길,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말씀만은 생명을 다해 붙드는 삶이길 
더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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