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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길위의교회 김선주 목사, '솔로몬 뒤에 빈센조 온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5-05 05:01

대전 길위의교회 김선주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솔로몬 뒤에 빈센조 온다 >

솔로몬은 위대한 왕인가? 그는 어떻게 위대한 왕이 됐는가. 교회들은 일천 마리의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린, 그 기특한 짓 때문에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는 교훈을 설교하는 우매한 목사들은 이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도 위대한 왕도 아니었다. 솔로몬은 주변 강대국과 정략결혼을 했고, 이방 여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심약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가 기브온 산당에서 자던 밤,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소원을 말해봐!”라고 말씀하셨을 때,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영왕기상 3장 7-9절)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사법적 정의로서 왕권을 지탱하는 힘과 한 나라의 질서를 유지시키고 부강하게 하는 힘이다. 올바른 재판은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고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초다. 한 나라에 사법적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게 되면 왕권이 위태롭게 된다. 나이 어리고 심약한 솔로몬은 재판을 잘못해서 백성으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하거나 탄핵을 당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사법적 정의에 관한 것이다. 구약성경 열왕기 3장의 솔로몬이 지혜를 얻게 된 이야기 다음에 바로 나오는 에피소드가 두 창녀의 아기 쟁탈전 재판이라는 점은 이 사실을 확인해 준다. 

사법적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가에 위임한 국민의 주권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고 그 힘이 일부 특권층에 유리하게 작동되거나 힘없는 약자들에게 억울한 판결을 내리고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면 국민은 분노하게 된다. 그 분노가 외적으로 폭발하게 되는 극단적 현상을 우리는 ‘혁명’이라 부른다. 하지만 혁명이 아닌, 일상에서의 범죄적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tvN의 드라마 <빈센조>는 우리 사회의 사법적 질서가 왜곡된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벌과 검찰, 언론이 자기 이익을 위해 가난하고 무고한 시민을 어떻게 학살하고 은폐하며 진실을 왜곡하는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우리 사회의 3대 악은 재벌, 검찰, 언론이다. 역시 모든 악의 원형은 돈을 쥐고 있는 재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의 원형은 맘몬, 즉 돈이다. 사법적 정의는 돈 앞에 굽은 판결을 내리고 언론은 돈 앞에 진실을 은폐하며 왜곡한다. 국가 권력이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방조할 때, 정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폭력이 등장한다.

드라마 <빈센조>는 바로 이러한 폭력적 정의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차 있다. 드라마는 빈센조 까사노바(송중기)라는 마피아를 등장시켜 한국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홍길동전을 읽으며 양반 사대부의 가부장적 권위와 착취구조에 억압당하던 조선시대의 백성이 받은 감흥 같은 것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우리는 착각한다, 대통령 한 사람 바꾸면 세상이 다 바뀔 것이라고. 하지만 몇 백 년 동안 지속되던 이 악의 구조를 대통령 한 사람과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이 한 순간에 다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권력은 권력의 이해관계 안에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일종의 권력 카르텔이다. 그것을 깨뜨리는 게 혁명이다. 혁명은 피 흘리는 폭력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깨뜨리거나 제도적 반전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억압받는 시민들의 저항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빈센조>에서 마피아와 함께 금가프라자 입주 상인들의 각성과 협력은 좀 유치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갖게 된다. 권력의 카르텔을 부수기 위해 일어선 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저항의지는 집단폭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하나님이 솔로몬 한 사람에게 주었던 사법적 지혜를 이제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모두 솔로몬이 되었다. 인터넷이라는 지혜 말이다. 기성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말해도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또 다른 미디어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솔로몬의 지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각자의 손에 스마트폰이 주어졌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사법적 지혜를 받아서 그것을 잘 사용한 인물이다. 하지만 조세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왕궁과 신전을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세금으로 과도하게 징수했고 백성들을 부역에 강제 징집했기 때문에 원성이 자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사후에 나라가 분단이 되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사법적 정의와 조세 정의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솔로몬은 몰랐던 것이다. 

요즘 언론이라 이름 부르기도 부끄러운 소설 창작 집단들이 이재용을 마치 재림 예수처럼 구세주로 포장하고 있다. 삼성의 탈세를 위한 쇼맨십을 그림의 ‘사회 환원’이라고 연일 도배를 하고 있다. <빈센조>에서 풍자하고 있는 부패하고 타락한 재벌 기업, 바벨그룹이 사실은 삼성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삼성의 이미지는 너무 거룩하다. 삼성이 없으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소설 창작 집단들이 신화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돈이 있다. 그 때문이다.

솔로몬 뒤에 반란이 일어나고 국가가 분열된 것처럼 우리도 그러할 수 있다. 사법적 정의가 무너지고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며 경제의 이름으로 재벌이 맘몬의 지위에 오를 때, 빈센조가 온다. 우린 모두 빈센조가 되고 싶어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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