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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살고 죽는 일'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5-06 05:00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살고 죽는 일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자라나다가, 나중에는 늙고 노쇠하고 죽음에 이르른다. 시간의 문제이지,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태어난 사람은 죽음을 향해 쉬임 없이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죽을텐데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음은 우리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시간 사람들은 자기 생명과 삶에 대해 몇 가지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다. 살아 있음을 마음으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 반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괴로운 사람,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없이 하루 하루를 지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죽음은 자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범과로 주어진 것이다. 죽음은 형벌적, 교육적 의미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떠나면, 죽는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 죽음의 선고와 집행 뒤에는 인간을 향한 교육적 배려가 크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나 살지 말라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 사건이다.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집행하신 하나님은 잔인한 분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이 인간의 운명에 동참하시고, 같이 죽음의 고통을 맛보시고, 인간의 삶에 항상 동행자가 되어 주신다. 사람은 자신의 불신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고통과 죽음으로 끌어 내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초래한 고통과 죽음의 동참자가 되어 주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불러 주신다. 생각할수록 감사할 일이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죽음을 원수라고 부르는 데도 이유가 있다. 살아 있던 것을 반응없는 존재로, 부패로, 무의 존재로 끌어 내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큰 허무와, 무력함과,  무의 존재로 느끼는 것도, 이 죽음을 경험하면서이다.

죽음은 사람으로 자기 존재의 본질을 찾게 해주는 하나님의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살기를 원하면서 죽어야 하는 인간은, 그때 가서 스스로 사는 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타자의 의지에 의해 살고 있다는 것을 죽음 앞에서 역역히 깨닫는 것 아닐까? 그 사실을 평소 알고 살 수 있다면, 사람은 자기 주장과 욕망 속에 사는 것을 자제할 것이다. 나를 살게 하는 분의 뜻과 의지를 물으며 살고 싶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사상도 주장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17세기 인간의 이성과 진보를 신봉했던 계몽주의 사상도, 죽음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세력을 잃었다고 한다. 독일의 신학자 Helmut Thielicke의 글에 있다. 죽음은 사람에게 큰 과제이다.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극복하고 살아야 할지를 평생 숙고하고, 대답을 찾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찾지 못하면, 사람은 꺼져가는 빙판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라 말한다. 시간 문제이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정해져 있다.  죽음 앞에 그 짧은 유희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까운 분의 가정 속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서, 이제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떠나 보내며 슬퍼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이 죽음의 슬프고 허무한 경험 앞에, 내 자신은 이 죽음을 어떻게 맞아 드려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 각자는 "신 앞의 단독자"라 한다.  우리는 살던지, 죽든지, 항상 그분 앞에 존재하며 살기 때문이다. 항상 그분을 바라 보며 사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계곡" 속에서도 "생명의 길"이 열린다고 한다.

사람은 100년도 안되는 삶을 살다가 떠나간다. 그러나, 그 삶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무익한 말" 한 마디도 그가 기억하신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삶의 작은 부분도 의미없지 않다. "그 앞의 삶"이요, 항상 기억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짧은 생을 살다 가지만, 그 삶이 영원한 기록으로 남고 기념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영사기에서 나오는 작은 영상들이 스크린에 큰 화면으로 비추는 것처럼, 우리의 짧은 날들이 영원한 날들로 확장된다 할 수 있다. 우리의 순간 순간은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하루를 사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원한 날의 기록을 남기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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