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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믿음보다 중요한 것'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5-11 05:00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믿음’보다 중요한 것]

(잠언 5:1-23)

1.

‘믿음’이 중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는 말이 
점점 이상해져왔다.

기독교 신앙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믿는 것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목사의 말이라면 토를 달지 말고 믿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놀랍게도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차고 넘치는 것 같고,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도 넘쳐나고 있는 것 같다.

‘믿음’이라는 말이 이토록 천박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믿음’이 포함하는 너무나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팽개쳐 버렸기 때문인 듯 하다.

믿음이 내포하는 중요한 것,
어쩌면 믿음 자체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너무나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2.

‘믿음’이라고 말할 때 
그 안에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는
‘분별력’이다. 

(잠 5:2, 새번역) 분별력을 간직하고, 네 입술로 지식을 굳게 지켜라.

분별력이 왜 중요할까?
분별력이 없으면 믿음 때문에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 대해서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잠 5:3-4, 새번역) 「3」 음행하는 여자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 말은 기름보다 매끄럽지만, 「4」 그것이 나중에는 쑥처럼 쓰고, 두 날을 가진 칼처럼 날카롭다.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분별력이 없다면 
음행하는 여자의 입에서 떨어지는 꿀을 덥석 받아 먹게 된다.
그 결과 결국 쑥처럼 쓰고 비수처럼 날카롭게 다가오는
아픔과 멸망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분별력이 없는 믿음은 
영혼에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알지 못해서
독과 균이 들어와 자신을 망쳐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서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잠 5:5-6, 새번역) 「5」 그 여자의 발은 죽을 곳으로 내려가고, 그 여자의 걸음은 스올로 치닫는다. 「6」 그 여자는 생명의 길을 지키지 못하며, 그 길이 불안정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3.

분별력이 없어서 어리석은 상태로 빠져드는 경우를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고 들었다. 

목사가 오랫동안 재정 비리를 저질렀고
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몇 년을 버텨서 결국 제법 많은 퇴직금을 받고 은퇴를 했다.

범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도 없이 
그렇게 끝낸 것도 아쉬운 일인데,
교인 중에 몇몇 사람들이 은퇴한 그 목사에게 거액을 헌금해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한다고 한다.

그 목사의 악함이야 그렇다 쳐도,
그 교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분별력이 없어서다.
그저 맹목적으로 ‘믿기만’하면
그것이 기독교 신앙인 줄 착각하면서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분별력이라고는 전혀 갖지 못한 상태가 되고 말았기 때문에
목사의 범죄를 범죄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타락한 은퇴 목사를 다시 목사로 추대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4.

어떻게 해야 분별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신앙생활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앙생활의 올바른 초점은 ‘목사의 말’이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잠 5:8, 새번역) 네 길에서 그 여자를 멀리 떨어져 있게 하여라. 그 여자의 집 문 가까이에도 가지 말아라.

음녀를 분별하고 음녀를 피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믿음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신앙생활에서 ‘믿음’이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것이 
믿음의 중요성보다 우선해야 한다.

목사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말 중에서도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분별력을 가지는 것을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특히 현대의 기독교 속에서 분별력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분별력이 없어서 망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미리 말한 듯 놀라운 말을 잠언 저자가 한다.

(잠 5:9-10, 새번역) 「9」 그렇지 않으면, 네 영예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네 아까운 세월을 포학자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10」 다른 사람이 네 재산으로 배를 불리고, 네가 수고한 것이 남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이 
이런 일을 당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5.

분별력이라고 할 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분별한다고 하면서 참된 교훈까지 멸시하고 
참되게 가르치는 스승도 무시하고 
참되고 바르게 걸어가는 공동체 안에서조차 
전혀 헌신을 하지 않고 딴지만 거는 삶이 되어선 안 된다.

만약 그렇게 산다면 
이런 후회를 할 수 밖에 없다.

(잠 5:11-14, 새번역) 「11」 마침내 네 몸과 육체를 망친 뒤에, 네 종말이 올 때에야 한탄하며, 「12」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였던가? 내가 어찌하여 책망을 멸시하였던가? 「13」 내가 스승에게 순종하지 않고, 나를 가르쳐 주신 분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14」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이런 처절한 재난을 당하는구나!" 할 것이다.

분별이란, 무조건 비판하고 비난만 하고 
시간, 재정적인 헌신을 거부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올바른 교훈을 알아보고 
올바르게 가르치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올바른 스승을 알아보는 것이 분별이다.

그래서 올바른 가르침에는 자신의 삶을 다 걸어야 한다.
올바른 공동체에는 자신의 시간과 재정을 헌신하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헌신 없이 삶이 좋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분별력이 없어서 잘못된 헌신을 해서 망하기도 하지만,
분별을 이상하게 해서 삐딱한 시선으로 
올바른 것조차 비난하는 성품이 되어
어떤 헌신도 하지 않는다면 
더 망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6.

(잠 5:15-16, 새번역) 「15」 너는 네 우물의 물을 마시고, 네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셔라. 「16」 어찌하여 네 샘물을 바깥으로 흘러 보내며, 그 물줄기를 거리로 흘러 보내려느냐?

온 삶을 다 걸어야 할 참된 교훈이 있다.
그런데 그 교훈을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그 교훈을 목사의 말에서만 기대하고 있으면
분별력을 상실해서 큰 아픔을 겪거나,
그 아픔 때문에 올바른 목사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인격을 갖게 될 수 있다.

올바른 스승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더 걸 교훈을 찾고 만나야 한다.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 삶을 살지 않는다면 
영영 분별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결국 분별력이 없어서 맹신에 빠지든지,
반대로 완전한 불신의 상태에 빠지는
불행하고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7.

특히 이 시대에는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분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분별력은 ‘스스로’ 말씀을 읽고 
‘스스로’ 묵상하여
‘스스로’ 자신의 영혼이 생존할 은혜를 
생산해내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생긴다.

믿음을 타인에게 의존한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일이 없다.
목사도 사람이어서 타락의 가능성을
언제든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고,
믿을 대상도 아니고,
그저 사랑할 대상이라는 말은
당연히 목사에게도 적용된다.

적어도 말씀을 말씀답게 ‘바르게’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그 가르침과 설교를 자신에게 치열하게 적용하려 노력하는
정상적인 목사나 스승을 만나야 하고,

그 목사나 스승의 도움으로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묵상과 삶을 연결하려고 ‘스스로’ 애쓰고,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교제하는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한다.

그런 자발적이고 정상적이고 건강한 신자들이
이 시대에 많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원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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