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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 '예수를 위한 죽음'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5-14 05:00

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예수의 죽음 그리고 예수를 위한 죽음>

모든 만물과 함께 자유롭게 소통하며 하나됨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자연스러움'이라고 한다면, 모든 만물에게서 떨어져 나와 또 다른 차원의 세계에 깊숙히 들어가는 것은 '초연'( 超然)이라고 합니다.

초연은 죽음을 통해서만 경험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려면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 모든 것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초연의 삶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라고 하면 날마다 우리들의 삶을 얽어매는 현실적인 시간, 일상, 업무등은 물론 죄와 육신 그리고 자아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결연히 육신뿐만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도 철저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크리스찬들이 경험해야 할 죽음을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죽음의 의미하는 단어는 '아포스네스코(apothnesko),'싸나투'(thanatoo), '네크루'(nekroo)등 여러가지 단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는 이 단어들을 고린도후서 4장 10절과 11절 말씀과 더불어 크게 두가지 차원에서 정리하고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서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1)

바울은 여기에서 우리들이 경험해야 할 죽음을 두 가지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하나는 4장 10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수의 죽음'이고 또 하나는 4장 10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수를 위한 죽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4장 10절에서 '예수의 죽음'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항상 <짊어져야 할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4장 11절에서는 '예수를 위한 죽음'을 예수의 생명이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의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며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들이 이 두가지 차원의 죽음을 '항상' 그러니까 일상 속에서 날마다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갈보리에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2000년전에 일어난 사건이고, 결국은 우리는 그것을 날마다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함께 믿음 안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장사된 바 되어진 우리들이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부활생명' 역시 우리들의 생명으로 믿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두번째 차원에서의 죽음인 '예수를 위한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으로서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우리 크리스찬들이 또한 날마다 믿음 안에서 여전히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려는 거짓된 그 자아를 부정하고, 살아계신 우리 주 아버지 하나님에게만 반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왕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연합적 은총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이미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영적인 실제가 확고한 이들에게서 경험되는 또 다른 차원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고 하였고,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은 고린도후서 4장 11절에서는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이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어진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역시 바로 이 차원에서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장사되어진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부딪히게 되는 자기를 부인함으로말미암아 또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또 다른 차원의 부활생명을 위하여 연합적 은총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 되지 못한 자들은 이 연합적 은총으로서의 죽음인 '자기를 부인하고'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충만함 속에서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당당히 고백하고 선언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그의 일상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라는 단어가 날마다 생생하게 살아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이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을 갈망하는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날마다 더 풍성하게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축복합니다. 샬롬!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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