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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피해야 할 몇 가지'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6-14 05:00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피해야 할 몇 가지]

(잠언 23:1-14) 

인생을 잘 살고 싶다면 
피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1. 식탐 

(잠 23:2, 6, 새번역) 「2」 식욕이 마구 동하거든, 목에 칼을 대고서라도 억제하여라. 「6」 너는 인색한 사람의 상에서 먹지 말고, 그가 즐기는 맛난 음식을 탐내지 말아라.

사람의 가장 본능적인 욕망 중 하나가 식탐이다.
그런데 특별히 '높은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와
'인색한 사람'의 상에서 먹을 때는 식탐을 조심해야 한다.

그때조차 식탐에 이끌리면 삶이 어려움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일까?

(잠 23:3,8, 새번역) 「3」 그가 차린 맛난 음식에 욕심을 내지 말아라. 그것은 너를 꾀려는 음식이다. 「8」 네가 조금 먹은 것조차 토하겠고, 너의 아첨도 헛된 데로 돌아갈 것이다.

높은 사람이 맛난 음식을 준다면 무언가 속셈이 있는 것이고,
인색한 사람이 맛난 음식을 준다면 
먹은 음식보다 더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식탐에 이끌리는 삶이 되지 말아야 한다.

2. 부자 되려고 애씀

피해야 할 것 중에 의외의 내용이 있다.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소 충격이 되는 내용이다.

(잠 23:4, 새번역)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져라.

부자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도 이상한데,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리는 것이 슬기라고 말하는 것도 
이 시대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것 같다.

시대가 달라서 잠언 저자의 이 가르침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잠언 저자가 자본주의를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시대에만 있는 특수한 욕망일 수 없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반적인 욕망 중 하나가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면 잠언 저자의 가르침은
지금 시대에도 명확하게 적용되는 가르침이라고 봐야 한다.

왜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할까?
왜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리는 것이 슬기일까?

간단하다.
핵심은 '무엇을 위해 애쓰느냐'다.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나쁘다.

부자 되려고 애쓴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자가 되려고 애를 써서 혹시 부자가 된다면
부에 목숨 거는 사람이 되어서
인생의 참된 가치들을 놓치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없어질 재물,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는 재물에 삶을 거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삶의 태도다.

(잠 23:5, 새번역) 한순간에 없어질 재물을 주목하지 말아라. 재물은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3. 미련한 사람의 귀에 말하는 것

내가 아는 것,
내가 깨달은 것,
내가 발견한 사실들이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본능은 나쁜 본능이 아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잠 23:9, 새번역) 미련한 사람의 귀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가 너의 슬기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미련한 사람의 귀에 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미련한 사람은 슬기로운 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슬기로운 말을 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삶에서 좋은 것을 깨닫고 
삶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조건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미련한 사람'에게는 나누지 않는 것이 지혜다.
아무리 탁월한 지혜의 말이라도 
그것을 들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서
선별적으로 말해야 한다.

주님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마 7:6, 새번역)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되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것이 '거룩한 것'이 되고 
'진주'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이 '돼지'나 '개'가 아닌 것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들을 만한 사람에게 말하고 
들을 만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지혜다.

4. 피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피해야 할 것들을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인생이 되고 싶다면 
절대 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제대로 붙잡고 살아야 한다.
절대 피해선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잠 23:12, 새번역) 훈계를 너의 마음에 간직하고, 지식이 담긴 말씀에 너의 귀를 기울여라.

지식이 담긴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말씀에서 나오는 훈계를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

맛난 것 먹고 싶은 욕망,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맘껏 펼쳐 보이고 싶은 욕망은
삶을 망치는 주범이다.

그런데 욕망을 다 죽이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욕망을 어딘가를 향해서는 발현해야 한다.
사람은 욕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욕망의 방향을 '지식이 담긴 말씀'과 
그 말씀에서 나오는 '훈계'로 돌리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 

참된 지혜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한다.
돈이나 맛난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갈망을 키워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나
'말씀을 많이 알아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갈망의 방향이 된다면
그것도 삶을 망치는 주범이다.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맘껏 펼쳐서
결국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왜 갈급해야 할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갈망을 가져야 할까?
'살기 위해서'다.

돈이 나를 살리지 못하고
맛난 음식도 나를 살리지 못하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식을 자랑해서 
내가 높아지고 인정받는 것도 나를 살리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살기 위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신자답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마음만이 
인생을 복되게 만드는 유일한 갈망이다.

5. 나는?

왜 나는 목사가 되었을까?
내가 오랫동안 말씀을 묵상했고 
말씀을 많이 알기 때문에,
이것들을 누군가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다면
목사가 되는 동기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보다 나아서 
사람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내가 말씀을 묵상해서 지옥 같은 삶에서 건져져서
생명을 누려가는 삶이 되었고,
그 삶을 원하는 분들을 도와서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목사가 되었다.

두 가지가 비슷해 보이지만
동기에 있어서는 거의 반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사실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도 사람이고 상대도 사람인데
내가 무언가 나은 점이 뭐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겠는가?

나는 그저 내가 살고 싶어서 
매일 말씀을 묵상할 뿐이고,
내가 살아난 그 말씀을 사람들과 나눌 뿐이다.

sns에 묵상글을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 말씀에 갈급한 분들이 있을 텐데,
누군가 죽을 듯 괴로운데 
살아날 방법을 몰라 괴로운 분들이 있을 텐데,
그 분들을 만날 통로가 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갈급한 분들이 
나의 묵상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묵상글을 sns에 올린다.

유튜브에 설교 올리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올리지 않고
아주 가끔씩 설교 음성 파일만을 올렸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가 되었고
실시간 라이브로 예배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유튜브에 설교를 올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멀리 사는 몇 분, 
외국에 사는 몇 분이 설교를 듣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이제는 유튜브에 설교 올리는 걸 멈추기가 어렵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유튜브 설교를 올리는 것에 대해
마음에서 불편함이 여전히 있고,
그 설교를 공개적으로 sns에 올리는 것도 어색하다.

sns에 묵상을 올리는 것도,
유튜브에 설교를 올리는 것도 
마음에서 불편함이 있는 이유는,
자랑하는 마음이나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목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올리는 이유는,
자랑하고픈 마음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마음이
누군가 살아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나의 마음의 갈망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나는 무엇을 원할까?
돈을 원하는 마음, 
맛난 것을 먹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모두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욕망들에 이끌려 
나의 삶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런 욕망들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
한 가지에 삶을 건다.
오직 말씀 하나에 삶을 건다.

말씀을 갈망하는 그 갈망에 
나의 삶 전체를 맡기려 한다.
갈망의 방향이 말씀을 향할 때만
헛된 욕망들에 이끌리지 않는 삶이 될 수 있음을
오랫동안 경험해서 알기 때문이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욕망에 이끌려서 망하는 삶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말씀을 펼쳐 들고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이 단순한 삶의 패턴을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동일하게 말씀 하나로 
망하는 삶에서 건짐 받고 싶은 분들과 
이 삶을 나누면 살아간다.

소수의 성도들, 그리고 온라인 묵상 나눔방 회원들과 함께,
그리고 온오프라인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분들과 함께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직 말씀에 삶을 걸어
헛된 욕망에 마음 빼앗기지 않는  
나의 남은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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