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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사람 단련법'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6-21 05:00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사람 단련법]

(잠언 27:17-28)

사람은 단련되어야 성숙할 수 있는데
사람을 어떻게 단련할 수 있을까?

1. 오해

사람을 단련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큰 오해가 있다.

책망과 비판과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사람을 단련한다는 오해다.

실제로 어떤 중형교회 목사님이 
부목사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았다.

그 담임목사님은 실제로 
부목사님들이 발전하도록 많은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그 기회와 함께 혹독하게 일을 시켰고 
혹독하게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들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자신이 부목사님들을 그렇게 대해야
부목사님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계셨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목사님들은 그 교회에 오래 있지 않았다.
그 담임목사님은 자신은 진심으로 부목사님들을 위했는데 
부목사님들이 버티지를 못했다고 생각하셨다.

정말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담임목사님은 사람을 단련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부목사님들이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님이 잘못한 것이라고 봐야 옳은 것 같다.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비판을 해서 
잘못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 
사람을 단련한다는 생각은 지독하게 잘못된 오해다.

2. 그럼 무엇이 사람을 단련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잠언 저자는 간단하게 말한다. 

(잠 27:21, 개정)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사람에게 은을 단련하는 도가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책망과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될 것 같은데
의외로 '칭찬'이다. 

사람에게 금을 단련하는 풀무의 역할을 하는 것도 
의외로 책망이 아니라 '칭찬'이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칭찬이 사람을 단련한다.
사람을 단련시키고 싶다면 
책망이 아니라 칭찬이 사람을 단련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책망이 사람을 단련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단련하겠다고 하면서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에 집중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망칠 뿐 아니라 관계까지 깨어지고 말 것이다.

학원을 운영할 때 수없이 많이 보았던 일이 있다.
자녀를 너무나 사랑해서 훌륭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많은 부모들이 하는 행동이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공부를 강요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가 틀어지고 
심지어 부모를 원수처럼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면 복수하겠다고 이를 가는 자녀도 있었다.

이런 비극이 생긴 이유는
부모의 욕심과 무지 때문이다.
사람은 칭찬으로 단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그 무지가 사랑하는 자녀를 망치고 
부모 자식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책망이 아니라 칭찬이 사람을 단련한다.

3. 정말 그래도 될까?

부모가, 담임목사가 두려워하는 일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칭찬만 열심히 했다가 
교만한 사람이 되어 인생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정말 칭찬에 집중해도 될까?
왜 칭찬만 해도 되는 것일까?
칭찬을 많이 들으면 교만해지지 않을까?
이에 대한 잠언 저자의 가르침이 있다.

(잠 27:22, 개정)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책망과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 정도로 심하게 해도 
사람에게서 미련은 벗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련이 어떻게 벗겨질까?
'내가 저 사람의 미련을 벗겨줘야지.'
라고 아무리 생각하고 결심해도 미련을 벗길 수 없다. 
미련이 벗겨지는 과정은 따로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
즉 사람이 사람과 관계하며 살아가다 보면
사람과 부딪히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인격의 모난 부분이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상대의 인격의 모난 부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서로 서로 미련함이 벗겨진다. 

그래서 잠언 저자는 이렇게 가르친다.

(잠 27:17, 개정)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친구 즉 만나서 교제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미련함이 조금씩 벗어지게 된다.

'내가 작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련을 벗겨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독한 교만이요
무서운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길 바란다면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일을 찾아 칭찬하는 것이다.

칭찬을 열심히 해주면 
사랑을 충분히 받은 충만한 마음으로 
일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미련을 깨닫고 고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제하는 사람들과 함께 
얼굴이 빛나는 성숙을 이루어 갈 것이다.

4. 나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적당히 잘했다.
1등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공부를 잘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죽도록 열심히 공부했다면
공부를 훨씬 더 잘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죽도록 열심히 공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우선은 승부욕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굳이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것에 대해서 
부모님이 나에게 칭찬을 한 적이 없었다. 
시험 성적이 제법 좋아도 그저 그런 반응이셨고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제법 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엄청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구나 싶었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우신데 
왜 나에게 직접 칭찬을 하지 않으신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칭찬을 너무나 듣고 싶었는데
부모님에게 받은 것은 언제나 
책망과 잔소리와 매였다.

잘한 것을 칭찬하지 않으셨고 
잘못한 것은 작은 것 하나까지 찾아서 
야단치고 책망하셨고, 
거의 정기적으로 매를 드시고 
모든 잘못한 것을 이유로 대시면서 때리셨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생각을 
부모님이 모두 갖고 계셨던 것 같다.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한 이유가 있다.
아내가 거의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싶을 정도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는데 
아내는 나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아내만 보면 나의 상처난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을 강행했다. 

문제는 결혼 후였다.
나의 부족함이 생활 속에서 드러났고 
아내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마음이 상했다.

아내는 마음이 상하면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나는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 부분이 맞지 않아서 제법 많은 다툼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아내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내가 한 말과 행동 중에서 
잘못한 것을 찾아서 지적을 했다.
고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마음이 상하기만 해서 다툴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그 다툼을 극복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다.
아내가 나를 기본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이고
나는 그런 아내가 좋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되었다.
설교자로 살아가는 초기에 아내는
내 설교가 끝나면 내 설교에 대해서 충조평판을 했다.

몇 번 그렇게 하는 것을 듣고 
설교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드는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 설교가 나빠? 들을 게 없어?"

아내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니. 매주일 은혜 받고 있는데? 
이런 설교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인데?"

그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은혜 받았다는 말을 안 하고 
고칠 부분만 말하는 거야?"

아내는 또 충격이 되는 말을 했다.
"칭찬하면 교만해지잖아. 그럼 안 되잖아."

그 때 아내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여보. 나는 칭찬이 너무 필요한 사람이야. 
앞으로 설교에 대해서 잘 한 부분, 은혜 받은 부분만 말해줘.
고칠 부분을 말하고 싶다면
잘 한 부분을 5가지 말한 후에 말해줘.
당신이 설교를 듣고 잘못한 것, 고칠 것만 말하면
나는 더 이상 설교를 하기 싫어져. 
나는 설교하면 안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이제는 아내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설교에 대한 지적질을 멈추었다.

아내는 지금도 내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는지 말해 달라고 해도 
그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나 보다.

"설교 어땠어?" 라고 물으면
"응. 좋았어." 또는
"오늘 설교 너무 좋았어."라고 대답할 뿐이다.
아내 성격에 그 정도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대신 아내는 요즘 나에게 
충분한 칭찬을 해주고 있다.
아내 성격으로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나를 무한으로 믿어주는 아내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31년째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을 무한으로 믿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나도 칭찬을 받고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아들들을 칭찬하는 말을 하려고 하면
너무 어색해서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아들들을 만나면 언제나 칭찬을 하려고 노력한다.
잘 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래서 고맙고 자랑스러운데 
그 모든 것을 다 칭찬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성도들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하려고 노력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목사의 몫이 아니라
일상에서 직접 겪어가실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얼마나 힘드실지를
내가 평신도 때 겪었던 일상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말을
성도 개개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 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럼에도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목사로 인정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성도님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목사님들을 만난다.
목사님들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을 잘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칭찬을 많이 듣는데
상대방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했던 것 같다.

내가 만나는 분들은 분명 장점들이 많은 목사님들인데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성격 때문인지 
칭찬을 잘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목사님들 만나면 다소 어색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장점들을 마음껏 칭찬해드려야겠다.

내 인생에서 과분할 정도로 너무 많은 인정과 지지와 칭찬을 듣고 있다.
그 인정과 지지와 칭찬들이 나를 단련하고 있는 것 같다. 

인정과 지지와 칭찬을 주시는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과 지지와 칭찬을 받는 만큼
인정과 지지와 칭찬을 돌려드리는
성숙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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