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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일교회 2부 담임 이정만 목사,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10)'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7-22 05:00

서울제일교회 2부 담임 이정만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예수사랑이란 무엇인가 10

12. 예수사랑은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랑 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ㄱ. 비유의 주제

양 1 마리를 잃었다고 99 마리를 산에 그냥 두고 찾아 나선 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목축업을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의 비유는 대부분 역설(irony) 입니다. 역설이란 어떤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논리나 가치체계를 무시해서 원하는 바를 더 부각 시킵니다. 표현되는 글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역설적으로 담긴 의미를 찾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나라는 이와 같다고 하는 선포 입니다.
예수말씀엔 선포, 교훈, 계명이 있는데 이 중 선포에 해당되는 말씀은 당장 이렇게 실행하라가 아니라 그에 대한 급진적 문제 의식을 가지라는 말씀 입니다.
비유를 선포의 한 양식으로 변형시키는 예수의 능력은, 이 비유가 청중들에게 실존적 실체가 되어 하나님나라를 경험케 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노먼 페린외 신약성서 개론 2 한국신학연구소 635p)

이 비유는 인간의 승리, 업적, 성과주의에 예수께서 소금을 뿌리는 행위로서, 신의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 입니다.
인간은 소유에 찌들어서 하나님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이 비유말씀의 대 전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윤리에 있어서, 가치개념을 관계개념으로 전환하라는 요구 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1. 작은 자의 소중함을 알 수 있고
2.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신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ㄴ. 잘못된 해석

홍창표는 잃은 양을 찾았다는 데 주목하여 교회에 성도가 많다고 만족하지 말고 잃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더 전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홍창표 하나님나라의 비유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150p)
이것이 보수교회 대부분의 해석인데 예수 비유설교 의도와 반대로 해석했습니다. 

유명 설교가 무디를 포함한 대부분의 설교자나 케네드 베일리 등 거의 모든 신학자는 99 마리를 산에 두고 찾아 다니는 게 말이 안되므로, 그 99 마리를 동굴에 두고 입구를 막았다거나 누가 지키고 있었다거나 집에 데려다 주고 왔다고 해석 합니다. 이해 가능하게 성서에 없는 말을 덧 붙입니다.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 107 장에 같은 비유말씀이 있는데, 잃은 양이 제일 큰 양이므로 더 소중해서 99 마리를 제쳐두고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잃은 양이 씨 종자면 99 마리보다 값이 더 나갑니다.
누가복음에도 같은 비유가 있습니다.(누가15:1-7) 누가는 잃은 양 찾은 것을 그 1 마리가 회개한 것으로 기술했습니다. 누가는 예수 비유말씀을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비유에서 1 마리 양이 취한 행위는 길 잃은 거 외에는 없습니다. 

ㄷ. 하나님나라는 가치개념이 아니라 관계개념으로 존재합니다.

99 마리를 산에 두어 위험한 상황에 두고 1 마리를 찾아 나서는 건 정신나간 행동 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이렇한 가치 판단을 무너뜨리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을 갖기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할까요?

한나 아렌트는 나치가 유대인 6 백만 명을 학살할 때 유대인 장로회와 자치경찰이 도왔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하는 것이 좋다는 논리로 그 학살을 도왔는데, 그러면서 그들은 권력을 즐겼다는 것 입니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187-189)
전체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가치판단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치개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개념이 오염되서 나를 억압합니다. 말씀과 계명을 가치화 하면 이것이 나에게 억압으로 옵니다.

가치화를 가장 반대한 사람이 노자 입니다.
불위不爲는 무불위無不爲이다인데, 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 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한 국면만을 보지말고 전체를 보라는 뜻 입니다.

바울은 완벽한 사상이나 학문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 인간을 억압한다고 합니다.(갈4:3)
사도 바울의 위대성은,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바울만이  우리의 가치판단을 도우는 종교, 사상, 이념, 정치, 경제, 도덕, 교육, 법률, 문화 등에서 나오는 악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성으로 이룰 수 없는 평화가 예수에게 있다고 합니다.(빌4:7)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법이라 하고 믿음으로 그 법을 이루자고 합니다.

신앙이란 현 세계에서 우리의 이기적인 얄팍한 이해관계 보다는,
 더욱 폭 넓은 삶 속에 존재한다는 느낌 입니다. 문명의 허구인 물질문명에서 평화를 얻겠다는 개념에 대해서, 탐닉에 대해서, 허위를 쫓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고, 
 보이지 않는 힘에 나의 삶이 친근하며 기꺼이 헌신하겠다는 사람이 신앙인 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은 지금 1 마리 양을 잃어서 99 마리를 염두에 둘 겨를이 없다는 것 입니다.

몇년 전에 지방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려 하신다는 전화를 일요일 새벽에 받았습니다. 지금 내려가마 하고 세수와 면도도 하지 않고 차 열쇠를 찾았습니다. 안해가 교회 설교는 어떻게 하고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사 정신이 들어서 동생에게 저녁에 내려간가고 다시 전화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길 잃은 한 생명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약한 자 하나를 사랑하는 예수사랑 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원의 날에 하나님의 의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고 합니다.(이사42:3)
예수는 보잘 것 없는 사람도 길 잃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수사랑은 그 약한 자 하나의 존엄을 전체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예수가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어떤 지배 형태의 담론도 믿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 입니다.(알랭 바디우 사도바울 새물결플러스 87p)

분자는 서로 하나가 되려는 욕구가 있어서 세포를 형성합니다. 마르틴 부버는 우주정신인 사랑이 개체에 수렴되었다고 합니다.(로마5:5) 오직 사랑만이 각 개체들을 연합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약한 자 하나가 불쌍해서 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한 자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 전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도우는 것 입니다.(마르틴 부버 인간현상 247-248)

99 마리 양을 산에 방치하고 1 마리 양을 찾아 나섰다는 비유를 가치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예수가,

인간은 가치개념으로 다룰 수 없다고 선언하는 말씀 입니다.

ㄹ.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예수사랑

인간의 존엄은 공리주의나 자유시장주의에 의해 침해받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집단의 유익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로부터 떨어진 1 마리 양을 위해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까지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어떠한 이유라도 한 인간의 존엄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입니다.

예수는 국가와 사회가 버린 사람들인 세리와 죄인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어떤 동력을 추구하는 것보다 그들을 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대등한 존재로 친구가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메시지 입니다.

이세상의 어떤 것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긴다는 예수의 말씀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의 소유권보다 한 인간의 존엄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설교 입니다.

선량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기쁨과 평화, 선을 향유(enjoy)할 수 있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퇴폐나 욕구불만이 있다면 사회의 억압 흔적이요, 불공평이 각인된 결과 입니다.

신앙인은 소외자,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지배세력에 저항합니다.
기쁨과 평화는 깨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신의 사랑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로마13:10)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 입나다.(마태25:40)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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