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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일교회 2부 담임 이정만 목사,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2)'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8-02 05:00

서울제일교회 2부 담임 이정만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예수사랑이란 무엇인가 2

우리는 예수사랑이 무엇인가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기위해 예수사랑을 설명하기 전에 1. 인간본성인 사랑은 앞에서 살펴 보았고요.  2. 남녀 간의 사랑같은 일반적 사랑 즉 에로스 사랑 3, 아가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종교적 사랑인 자비사랑 4. 유대인의 차별적 그리고 공로적인 사랑과 동양 사랑을 차례 대로 살펴본 후에 예수사랑을 살펴 보겠습니다.

2. 에로스 사랑

플라톤은 천상을 영원 즉 이데아계라 하고 이 땅의 세상을 감각계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도 이 땅은 부동자이고  제일 원인인 신으로부터 유출된 세계 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에게로 가려는 '의지(에로스)'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에로스는 신에게로 가는 길이고, 의지이며, 소유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 중심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안더스 니그렌, 아가페와 에로스, 163- 185p)
이 에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덕 중에서 제일이라고 한 필리아라고 하는 우정과 함께 획득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말 입니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에로스는 사랑하는 자나 사랑받는 자가 서로 다가가기 위해 자기 덕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제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란 본래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욕망이라고 합니다.(플라톤, 향연, 87p)

필자는 결혼식 주례할 때 예수사랑을 강조하지만 서로에게 다가가려면 자기에 충실하여 덕을 쌓고 지식과 교양을 쌓는 에로스 사랑이 소중함을 함께 강조 합니다.

그런데 이 에로스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사랑은 '낯설음'을 사랑하는 것인데 반하여 에로스 사랑은 낯설음을 경계하고 익숙함을 좋아 합니다. 사치, 우아, 호화, 매력, 연모를 갈망하며, 또한 훌륭한 사람은 돌보고 나쁜 사람은 돌보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정한 사람, 불의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습니다.(플라톤, 향연, 114p)

반기독교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랑을 이 에로스 사랑만을 사랑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이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대한 힘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새로운 소유충동이어서,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그를 소유하기에 적합한 기회로 잡아 기뻐한다고 합니다. 특히 호의적이며 동정심 많은 사람이 그러한데,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독점적 소유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상대방의 육체뿐만아니라 영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힘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토록 난폭하고 탐욕적이고 불공정한 것이 사랑이 되어 모든 시대에 걸쳐 그토록 찬양되고 신성시된 것이 놀랍고, 가장 거침 없는 이기주의 표현이 이기주의 반대인 사랑이란 개념으로 탄생한 것은 놀랍다고 합니다.(니체, 즐거운 학문 14 절)( 레지날드 J 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 226p)

회의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사랑을 친밀함으로 파악하여 가까이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기 때문에 나쁘다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 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만 알고 사랑의 하나님을 몰라서 문제고 기독교는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아서 문제인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깊은 사랑은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사랑을 몰라서 이고 어리석은 사람 입니다. 예수사랑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1

기독교 신학은 5 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립하였고, 13 세기에 토마스 이퀴나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기초로 해서 자연, 정치, 윤리를 더하여 세운 신학이 오늘날의 가톨릭 신학이고요. 개신교 신학은 루터와 칼뱅이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은 제외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그대로 수용하여 세운 신학 입니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이, 그 사랑을 통해서 신에게로 가는 의지의 사랑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해하는 믿음과는 다르므로 아예 사랑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칼뱅도 주권신학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고 삼위일체 신론은 달가워 하지 않기 때문에(폴 틸리히) 사랑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습니다.

전 정부 청와대 권력 순위가 1 위 최순실,
 2 위 정윤회, 3 위 박근혜 라고 청와대에서 회자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 기독교(유사 기독교 포함) 권력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위 아우구스티누스,  2 위 플라톤,  3 위 예수,  •••   100 위 바울 쯤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에 기초해서 신학을 정립한 게 아니라 그리스철학에 기초해서 신학을 정립했습니다. 당시는 성경이 정립된 지 오래지 않았고 충분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로마는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모든 사상을 종합하는 국가 입니다. 그는 로마 신학자로서 종합적 사유를 하는 사람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덕신학자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이김으로써  은혜신학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 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들여다 보면 바울의 은혜신학엔 턱 없이 모자랍니다.

도덕신학자 펠라기우스는 자연신론처럼 하나님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하면서 도덕에 주신 능력이 은총이라고 합니다. 또한 펠라기우스는 인간 스스로 사랑을 생산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은 인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로마5:5)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하기를 좋아 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처럼 이 신이 주는 사랑을 통해 신에게로 갑니다.
그는 이런 모순을 전혀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공로와 미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랑을 욕망으로 파악하기 때문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사랑은 향유(enjoy)와 이용(use)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입문전 철학을 공부할 때 신플라톤주의 자인 키케로의 행복론인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여기에서

 '분명히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문장을 보고 평생 화두로 삼습니다. 즉 사랑이란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대상이 선하거나 인간에게 이로워야 합니다. 즉 그의 사랑이 향유(enjoy)와 이용(use)이라는 말은 즐거움을 얻는 신에게로 가기 위해 세상을 이용한다는 말 입니다.(어거스틴, 공성철옮김 아우구스티누스 후기저서들 411- 412)

그는 선하고 세상에 이로운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가 민족 반역자인 세리와 창녀 그리고 가나한 사람을 사랑(용납, 칭의)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기쁨과 평화를 얻는 것이 하나님나라(천국) 라는 바울 사도(로마 14:17)와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 철학의 에로스 사랑을 통해 악한 세상에서 신에게 가는 사상 입니다.

사랑을 이용해서 신에게로 가야 하는데 이 사랑이 신의 은총 없이는 우리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 사랑 개념의 독특성 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가톨릭 은총론의 창시자 입니다.(안더스 니그렌, 아가페와 에로스 500- 559p)
기독교는 신학이 시작될 때부터 예수사랑이 아니라 그리스사랑이 중심이 되어 가난한 사람, 부정한 사람,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과 함께하는 세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잘난 사람, 권력과 재물이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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