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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조용기 목사님'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9-16 05:00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조용기 목사님

목사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읽었다. 목사님은 내 신앙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다. 집 근처 교회를 다니면서, 갈등이 있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통해 큰 소리로 설교를 하셨지만, 무슨 말씀을 전하는지, 메시지가 잡히지 않았다. 

고심 끝에 교회를 찾아 다녔다. 창신교회, 동대문에 위치한 복음 교회, 종교교회, 경동교회, 정동교회, 새문안 교회 등을 찾아가 주일 예배를 드렸다. 경동교회 강목사님은 청산유수 설교를 했지만, 복음적 메시지를  듣기 힘들었다. 마치 무슨 철학 강의를 하는 것 같았다.

마음에 감동을 주었던 분은, 동대문의 복음 교회였다. 순수하고, 진실함이 느껴지는 장목사님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바지 단추가 열려 있어, 어느 나이든 여자분이 지적하자, 웃으면서 단추를 끼었던 것이 기억된다, 참 소탈하고 학자 풍의 목사님이었다. 

그 당시 유명한 교회를 다녔지만,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또 찾아간 교회가 서대문 순복음 교회였다. 정문을 들어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30대 후반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는 한 마디로 dynamic했다. 성경 본문을 우리 삶에 적용시켜, 믿음으로 살고 승리하는 삶을 가르치는 설교였다. 마침내 교회를 찾은 것이다.

학교가 광화문 신문로에 있었기 때문에 주일이면 도서관에 책가방을 두고, 예배를 참석하고 돌아와 공부하고 집에 돌아 왔다. 주일뿐 아니라, 수요예배도 참석하며 순복음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순복음 교회의 열기는 대단했다. 치유의 소식이 알려져 병낫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교회를 찾아와 날로 날로 숫자가 늘어갔다.

교회에서 발행한 신앙계의 대부분은 몹쓸 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들의 간증으로 채워졌다. 이런 소식이 전해 지니, 그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 번은 부흥회 중, 미국 선교사님이 설교를 하다 방언을 하니, 통역자가 멍하니 서있었을 때, 뒤에 앉아 있던 조목사님이 방언을 통역해 주었다: 하나님은 사자가 범치 못하는 안전한 길로 자기 백성을 인도해 주신다는 내용이었다. 그 방언 통역을 들은 교인들은 거의 ecstasy 상태에 빠졌다. 조 목사님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던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서대문 순복음 교회에 다녔다. 수요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 안성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놓쳤다. 다음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 다음 날 안 것은 그 앞서 간 버스가 회기동에서 건널목에서 기차와 충돌했다는 기사였다. 그때 그 버스를 탔다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버스는 평소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간 이유가 있었다.

설교를 들으면서 수긍이 안되는 말씀도 있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한국으로 오신다는 말씀, 또 EC 10개국이 통일하면,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씀 등이다. 고등학생의 귀에도 낯선 설교로 인식되었다. 생동력 있는 설교를 듣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언가 아슬아슬한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그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 재미있던 것은 조목사님이 기도할 때, "영화로우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하니까, 대표기도 하는 분들도 모두 그말로 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목사님을 닮고 싶어하는 교인들의 마음의 표현으로 이해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 마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추운 1월 초, 서대문 순복음 교회에서 이틀 철야를 했다. 고 3,  10월에 각혈을 했지만, 병 낫기를 위해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약을 복용한 후유증일까, 항상 마음이 우울하고 침체된 상태에 있어, 벗어나고 싶었다. 

교복만 입고 갔다가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어느 30대 여자분이 자기 외투를 내게 덮어 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어려풋한 어둠 속에 비치는 그 여자분 얼굴을 기억한다. 그 옷은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옷이었던 것도 기억된다. .그분을 찾고 싶었는데, 찾지 못했다. 

철야를 해서 무슨 답을 얻지 못했지만, 잠들었다가 꿈을 꾸었다. 철길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기적 소리가 들렸다. 꼼짝 못하고 쓰러져 있는데, 철길 옆 세 아이가 있다가 나를 옮겨 준 꿈이다. 그 아이의 얼굴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의 내 상황, 또는 내 신앙 여정 속의 섭리를 보여 주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관심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웠다는 데 있지 않다. 목마른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었던 그 시절을 인해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교회가 크고 작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허전하고 답답했을 때, 생동적인 설교로 은혜를 끼쳐 준 그때가 생각나서 이 글을 쓴다. 

훤출한 키에 교회 정문을 오고 갈 때 만났던 조 목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시골의 순수함과 목회적 열정을 지니고 살았던 분으로 기억된다. 교회 역사적으로는 한국을 빛낸 분이 틀림없다. 우리도 언젠가, 가까운 시절, 늙음과 병을 피하지 못하고 떠나갈 날이 다가 오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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