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9일 목요일
뉴스홈 종교
워싱턴 예수사랑교회 이성웅목사, '너무나도 큰 고통'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11-20 05:00

워싱턴 예수사랑교회 이성웅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사랑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도 큰 고통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정말 짧은 우리네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지요.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죄인이요, 원수된 자에게 조건없이 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로 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만납니다. 그 어려움 중에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 성도들, 직장동료, 이웃 등 

그런데 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때 많은 이들은 보다 쉬운 결정들을 합니다. 그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헤어지는 것입니다.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또한 쉽지 않는 결정들입니다. 그러나 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다는 쉬운 결정입니다. 보다 쉬운 선택이지만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닙니다.(물론 어떤 경우는 예외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성숙이 없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죄의 속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보다 더 썩은 것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된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 내면이 전부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내면이 아름다워지려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의 교만하고 이기적인 나의 자아가 깨어지는 고통이 필요합니다. 그 고통을 통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변화됩니다. 내가 얼마나 강하고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지 모릅니다. 그 강하고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깨어지는 고통과 아픔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들을 때 달콤한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떤 면에서는 고통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일은 교만하고 이기적인 나의 자아가 부숴지고 깨어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 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세요. 당신의 마음은 아픔과 고통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면 고통이 있습니다.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고통은 십자가에서 표현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가장 큰 은사요 가장 좋은 길이 사랑이라고 선포한 다음, 그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참는 것은 고통입니다. 오래참으려면 교만하고 이기적인 내가 깨어져야 합니다. 내가 부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는 것은 정말 고통입니다. 그것도 오래 참는 것은 고통 중의 고통입니다.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녀를 오래 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참을 수 있습니다. 그 자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모니까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참음에도 부모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녀를 참는 부모에게는 고통이 있습니다. 사랑은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오래참음의 사랑은 큰 고통입니다. 끊임없이 교만하고 이기적인 나의 자아가 부인되는 것이며, 나의 자아가 깨어지고 부수어지는 일입니다. 나의 생살이 떨어져 나가는데 어찌 고통이 없겠습니까? 정말 고통입니다. 

오래참음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죄인되고 원수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억울함을, 모멸과 모욕을, 조롱과 비방을, 수치와 부끄러움을, 뺨맞음과 침맺음을, 매맞음과 목마름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고통을 다 참으셨습니다. 

(더 이상 글을 써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된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만이 계속 흐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고통스러운 사랑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죄인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랑을 선택하심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셔야만 했는지 모릅니다. 사랑은 이런 면에서 고통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오래 참으시는 그 고통을 말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신 오래참음의 사랑입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호 11:9.

부부사이를 생각해 보세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갑니다.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고통이 없습니까?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는 고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참아야 합니다. 그 오래참음의 사랑을 통해 배우자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뀝니다. 내가 주님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오래참음의 사랑의 축복입니다. 이런 면에서 부부관계는 오래참음의 세월입니다. 

계속해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하나하나 생각해 보세요. 오래 참음, 온유, 시기하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 교만하지 않는 것,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 성내지 않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모든 것을 참는 것, 모든 것을 견디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고통없이 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자아가 부인되지 않고 깨어지지 않고 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은 고통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고통이듯이 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에 부름을 받은 성도의 삶은 이런 면에서 고통입니다. 끊임없이 나의 자아가 깨어지고 부수어지는 삶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삶이요, 생명의 삶입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원수를 오래 참으시고 그 원수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 바 되어 서로 사랑하는 최고의 인생을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사랑은 고통이지만 생명이요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오실 우리 주님과 주님 안에서 영원한 가족된 여러분으로 인해 행복한 목사 드립니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