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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 '양보 할 수 있습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12-07 05:00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양보 할 수 있습니다
(창 26:19‭-‬33)

이삭이 우물을 팠을 때 그랄 목자들이 와서 시비를 걸고 이삭의 종들과 다투고는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삭이 판 우물을 빼앗아 간 일은 두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이삭은 자신이 파낸 우물을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는 더 이상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 시비를 걸지 않았고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칭하며 장소를 넓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이삭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이삭은 열심히 그리고 탁월하게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을 판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삭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하며 아주 열심히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삭의 수고로 우물을 얻게 되었을 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랄의 목자들이 찾아와 그것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며 시비를 걸었을 때 이삭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괴롭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그들과 전쟁을 선포하고 목숨을 걸고라도 하나님이 주신 우물, 기도와 수고로 파낼 수 있었던 우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끝까지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과정이야 어쨌든 순순히 우물을 내어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우리가 화가 날 지경입니다.

이삭은 바보같이 우물을 그들에게 내어 주고 다른 곳으로 갔기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삭을 보면서 그랄의 목자들은 이삭을 비웃고 자신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과시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삭은 그랄 목자들의 세력 앞에 자존심이 다 밟힌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반복 됩니다.

그러기에 이삭은 늘 '을' 처럼보이고 그랄의 목자들은 '갑'으로서 이삭에게 '갑질' 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착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빼앗은 것은 이삭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비웃고 갑질한 대상은 이삭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들은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것을 두 번 이나 빼앗았습니다.

또 그들은 이삭을 보내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비웃으며 하나님을 향해 갑질 한 것입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두 번이나 억울하더라도 내어준 것은 싸울 힘이 없고 비겁해서가 아닙니다.

이삭은 그들이 빼앗아아 간 우물도 하나님의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비웃고 조롱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충분히 양보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랄의 목자들에게 이삭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오직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추어지시고 드러나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 이나 하나님의 것을 빼앗아 가는 그랄 목자들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하나님은 이삭의 마음과 모습을 더 유심히 살펴보셨습니다.

드디어 이삭이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는 더 이상 그들이 찾아와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삭의 지경과 업적은 더 넓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이에 대해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가 찾아 온 이유는 두려워서입니다.

그는 이삭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알게 된 것 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자신의 부하들과 직접 찾아와서 이삭에게 부탁 겸 사정을 합니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창 26:28)

그랄 왕은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한마디로 자신의 민족을 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 개 목자들이 이삭을 미워해서 이삭에게 만행을 저지른 일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강하기에 이삭의 억울함을 모른채했고 그랄 목자들에게 정의를 실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삭은 약자이기에 언제든 자신들이 군림이 가능하다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 말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본 것 보다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람인 이삭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는 그러한 것 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에게 주어진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고 강력한지를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막상 복음을 들고 보내심을 받은 자리에서 땀 흘리며 씨를 뿌려도 누군가의 발로 뭉개지고 파내 버져리는 듯 한 아픔과 조롱을 받습니다.

마치 자존심이 무너지고 마음 상함의 무덤에 묻혀 버리는 듯 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수고로 파낸 우물일지라도 양보하고 내어 줄 수 있어야합니다.

조롱과 비웃음에 분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었고, 하나님이 비웃음 당하고 계심을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의로움으로 솟아나는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존심이 상해를 입으셨음에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합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이 일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저 부터 순종하여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양보합니다.

저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라도 주님만은 세상 그 누구도 조롱할 수 없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깨닫기를 기대하며...

이 후에도 하나님은 이삭과 함께 하시며 이삭으로 하여금 우물을 팔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 26:19‭-‬33)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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