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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일교회 2부 담임 이정만 목사, '그리스도인은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2'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5-09 05:00

서울제일교회 2부 담임 이정만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그리스도인은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2

국민일보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하여 기독교에 대한 의식 조사한 결과를 2022 년 4 월 27 일 발표했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18.1% 입니다. 국민 5 명 중에 4 명 넘는 사람이 개신교인을 싫어합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해 연상되는 단어에 대한 질문에 1 위가 배타성이고 이어서 물질 위선 이기심 세속 등 입니다.
조사에 나타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그리스도인 행위에 예수 마음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세상 사람들을 싫어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싫어 한다는 조사 결과입니다.
나가 너를 싫어 하는데 너님이 나를 좋아할리는 만무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라 하셨는데 사랑은 커녕 미워하게 된 원인과 성서가 말하는 바를 아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그리스도인들 끼리하는 사랑은 예수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친절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 간에 이해 관계가 얼키면 순식간에 안면 바꾸고 표변하는 게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장)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도덕 경건이 그리스도인 믿음 중심에 오게된 그리스 철학 영향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시려고 신이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3장)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구절에서 말씀은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한 것 입니다. 로고스는 세계가 운행되는 원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은 세계 정신이 인간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으로 오신 신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여시고 자신의 백성을 기쁘고 평화로운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1 세기 성서 저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증언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2 세기에 와서 상황이 크게 변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로부터 야훼 하나님울 배반한 배교자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로마 그리스 사람들로부터는 자기들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이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인간 예수께서 어떻게 하나님인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로마 그리스 사람들에게 그리스 철학으로 설명했습니다.
2 세기 신학자들은 예수와 사도들이 전한 하나님나라 복음이 아니라 예수께서 어떻게 신인가를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는 1 세기 예수 운동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무슨 사역을 하셨고 그분이 가르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신이신 것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설명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기독교 중심이 예수께서 전하고 가르친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예수 십자가와 부활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다.

기독교가 발생지인 이스라엘 토양과 사유에서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AD 70 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합니다.
가르침 중심의 랍비 유대교도 사실상 이시기 이후에 기독교와 경쟁하며 성립되었습니다.
랍비 유대교는 70 년 전란 중에 예루살렘을 탈출한 요하난 벤 자카이가 얌니야(야브네)에 아카데미와 권위 있는 랍비 기구를 살치함으로써 성립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역의 그리스 사상과 문화권에서 발전했습니다.
기독교가 역사 빈곤 그리고 철학과 교리 과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실종되고 이에따른 필연으로 삼위일체 신론이 실종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발생 원인으로 그리스도인 믿음이 하나님나라 되어감을 위해 역사에 참여하는 믿음이 아니라 교리 이해와 종교 생활을 믿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풍부한 공동체 중심의 역사 참여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리스의 개인 성찰 믿음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16 세기 종교개혁에서 개혁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고 오늘날에도 이와같습니다.

플라톤 세계관은 하늘(영원)이 본질이고 세상은 가짜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인식합니다. 악한 세상을 벗어나는 게 구원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플라톤은 개별자가 절대자 즉 초월자에 참여함으로서 거룩하게 지혜롭게 의롭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1)
아리스토텔레스 신은 모든 원인 중의 근원인 제일 원인이고 모든 선善 중의 최고선最高善입니다.
이에따라서 신플라톤주의 구원은 인간의지인 에로스를 통해 악한 세상을 벗어나 신에게 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악한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 목표가 신성화divinization 혹은 신화deification로서 완전한 인간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윤리 도덕 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윤리 도덕 철학은 BC 3 세기 제논을 비롯한 스토아 철학자들이 플라톤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운리학)을 기초하여 정립했습니다. 이들이 세운 윤리 도덕은 신플라톤주의와 함께 오늘날까지 인류 정신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가치체계를 무시하고 믿음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마태13:52)
민주 시민으로서 도덕과 경건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도덕과 경건을 기독교 믿음과 결부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도덕과 경건을 기독교 믿음에 결부하면 신앙인이 괴물이 됩니다.

불행하게도 2 세기부터 신학자와 교부들은 모두가 그리스 철학자이거나 로마 관리입니다.
기독교 첫 신학자 오리게네스(185년경 - 254년경)와 신플라톤주의 창시자 플로토니오스는 같은 스승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들 스승은 암모니오스 사카스인데 암모니오스는 부두 노동자라는 뜻 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예수그리스도를 선한 것의 집합으로 생각했습니다.(2)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을 최고선最高善으로 생각한 것과 같습니다.
이레니우스(115 - 142년경 - 202년)는 인류 재창조를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새로운 인간 출현으로서 인간 정화가 구원입니다.(3)
이들 모두는 플라톤주의자입니다. 이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플라톤주의자인 클레멘스(150년경 - 211)는 기독교 성인으로 시성되고 그래도 비교적 교회와 성서 저자들에 관심을 보였던 오리게네스는 이단 판정을 받았습니다.(4)
오리게네스는 성서를 통해 플라톤 철학을 반박했습니다.(오리게네스, 켈수스를 논박함)
원시 기독교가 얼마나 그리스 철학에 경도되었나를 말해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역사중 대부분 시기는 성서가 증언하는 삶의 변화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을 따라서 하늘 세계로 가는 피안성彼岸性을 기독교 이상으로 삼았습니다.(5)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천국에 가는 사람이기 위해 선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기독교 유입이 결정된 것은 5 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입니다.
그는 죄가 선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 잘못이 죄입니다. 성서는 죄를 인간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영 세력이라고 합니다.(로마7:8)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세계관을 따라 악한 세상을 떠나 신에게로 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이용해 신을 향유享有enjoy하라고 합니다. 그에게 세상 향유는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데 기독교 신학은 첫 출발부터 그리스 철학을 따라서 세상을 악하다고 인식하여 세상을 미워하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최대 오류는 세상이 향유 대상이 아니라 악한 곳으로 인식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에 따라서 선한 인간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교회가 수련회 한다면서 청년이 눈 속에서 얼어 죽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또 교회가 극기 훈련한다며 수련회 가서 자기 인분을 먹이게 해서 말썽이 납니다.
이러한 일은 선한 인간이 되려는 목표로 수련하기 때문입니다. 
인성계발이나 수련은 기독교보다 불교가 훨씬 좋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카네기 인간론 등 인문학도 인성계발은 기독교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교회는 선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도덕과 경건을 강조합니다.

현대 3 대 철학자 중 1 인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인 철학자 폴 리꾀르는 인간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인간은 인격(personality)은 변하지만 성격(charicter)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 DNA 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예수 믿고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어릴때 성격 그대로 삽니다. 이제껏 교회나 주변에서 예수 믿고 변화한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이제까지 그리스 철학이 기독교로 유입된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신학자나 성직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기독교 신학 오류를 연구하는 신학자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망해가는 기독교를 염려하는데도 말 입니다.
본글에서 인용한 아래 책 저자인 프랜시스 영도 기독교 신학에 그리스 철학이 유입된 현실을 긍정 평가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실패 원인이 잘못된 신학에 있다는 인식이 없어서 입니다.

바울의 은혜신학

다시 1 세기 신약성서 저자 이야기입니다.
바울을 최근에는 화해신학자라 부릅니다.(제임스 던 ) 그러나 전통적으로 바울을 은혜신학자라고 합니다.(FF 부르스 김세윤 등) 법정 스님은 석가모니께서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 인류 최초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 스스로는 구원 길이 없고 하나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 인류 최초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 만나기 전에는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신앙에 정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스데반을 살해하는데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는 체포조를 결성하여 외국으로 피신한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가던 중 다마스커스에서 부활 예수를 만납니다. 바울은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신앙하는 자신이 살인을 하는 등 증오가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부활 예수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생각됩니다.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되려는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는 신학(칭의)을 세웠습니다. 자기가 의로와 지려는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부려셨다는 칭의 신학은 화해를 위한 신학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세계인)도 하나님께서 불의한 우리를 의롭다고 부르시고 용납했으니 서로 용납하라는 화해 신학입니다. 그래서 그는 칭의(의롭다고 부름)가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로마5:1)

놀라웁게도 바울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서신에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만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어떤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교만한 인간됨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자랑함으로서 일어나는 교만은 불화와 갈등의 원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개신교가 믿음을 행위와 구분하는 것은 바울에 대한 최대 오해입니다. 바울 믿음 이해는 행위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으로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달을 보라고 달을 가리켰는데 개신교인들은 달은 보지 않고 바울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인간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A 슈바이처 R 불트만)
그는 철저하게 인간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 은혜를 구합니다. 그에게는 신에게로 가기 위한 어떠한 몸짓이 없습니다. 즉 그에게는 도덕과 경건에 대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도덕과 경건은 자기 의를 자랑하는 행위입니다.

(로마서 7장)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위 본문은 로마서 8 장 26 절 성령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구절과 함께 기독교가 세계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리는 이정표입니다.
바울은 위 본문에서 법이 나빠서가 아니라 법은 선하지만 죄 때문에 법이 요구하는 선을 이룰 수 없는 사람임을 절규합니다.
모든 종교는 도덕과 경건을 통해 선한 사람이 되어서 신에게 가는 게 구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절규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은혜로 의로운 사람이라 불림을 받았으므로 자기 의를 과시하지 말고 사랑하며 살라는 게 바울 가르침 핵심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법으로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위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고 저항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법을 해석하는 행위입니다.
기독교는 어떠한 형태로도 몸 변화를 꾀하지 않습니다. 삶의 변화를 꾀합니다.
몸 변화를 꾀하면 변화된 자신을 과시하여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은혜를 구하지 않고 도덕과 경건으로 무장하는 믿음은 그러한 사람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합니다. 이것이 예수 시대 바리새인인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바리새인과 같은 믿음 행위를 합니다.
도덕과 경건은 인간 교만의 표출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덕과 경건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도덕과 경건은 세상에 분열과 차별을 일으키고 세상에 어떠한 유익도 없습니다.

그러면 도덕과 경건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말이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바울 예를 봅니다.
바울 가르침 최대 독특성은 죄가 크다면 그곳에 하나님 은혜가 더 크게 임한다는 가르침입니다.(로마5:20)
그래서 어떤사람이 그러면 은혜받으려고 죄 지으라는 말이냐고 묻습니다. 바울 대답은 그런 질문하는 사람은 정죄받아 마땅하다고 합니다.(로마3:8) 다시 말씀드리지만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사람들이 달은 안보고 손가락을 봅니다.
도덕과 경건은 바울이 말하는 법입니다.
바울은 법대로 도덕과 경건을 통해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신앙에 정진했는데 오히려 자신은 살인과 증오에 물든 사람이 되어있음을 부활 예수 만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을 통해 사랑하면 그 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로마13:8 10) 
그리스도인은 법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은 도덕과 경건이 아니라 사랑으로 실행(役事)합니다.(갈5:6)

1. 프랜시스 영 신경의 형성 강성윤 민경찬 비아 2022, 220p
2. 같은 책 216-219p
3. 같은 책 212-214p
4. 같은 책 112p
5. 같은 책 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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