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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 연기면 우주측지관측센터에 설치된 직경 22m, 높이 28m의 전파망원경.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초정밀 우주측지기술을 구현하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홍근진 기자 |
◇세종시 우주측지관측센터에서
세종시에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측량기준점이 우주공간 상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초정밀 우주측지기술을 이용해 오차없이 정해주는 우주측지관측센터가 있다.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 준성(Quasar)에서 발생하는 전파를 안테나로 수신해 GPS보다 더 정확한 좌표값을 제공하는 첨단시스템(VLBI)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 3번째로 구축돼 일반인에게 생소한 우주측지기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어 세종시의 대표 랜드마크로 주목 받고 있다.
몇 일전 이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속에 내가 어디에 있고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곳에서 지난해 북한에서 변경해 사용면서부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표준시(標準時)’에 대해 여러가지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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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경희궁 고궁박물관에 있는 조선 세종 때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사진출처=SNS화면) |
◇잘못된 시간
서울의 경희궁 고궁박물관에 가면 조선 세종 때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가 있다. 그런데 앙부일구와 손목시계는 항상 30분 정도의 오차가 있다. 앙부일구가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정오(正午)를 가리킬 때 손목시계는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표준시는 동경 135도에 맞춰져 있고 해시계는 127.5도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와 다른 30분 빠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은 장영실 등의 과학자들을 시켜 해시계를 만들면서 서울의 정남향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설정했다. 이는 동경 127.5도(함흥-원산-가평-양주-이천-청주-대전-순천으로 이어지는 자오선)에 맞췄다. 대한제국은 1908년 4월 1일 이를 표준시로 선포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을 침탈한 뒤 1912년에 표준시를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동경 135도로 변경했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이전보다 30분 일찍 일본의 시간에 맞춰 생활해야 했다.
이 표준시는 1945년 광복 후에도 한참동안 사용되다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1954년 3월 21일 오전 9시를 기해 원래대로 되돌려 졌었다. 이날 서울 종로 보신각과 전국의 학교, 교회, 사찰은 종과 사이렌을 일제히 울려 ‘시간의 광복’을 경축했다.
그렇게 7년 넘게 사용되던 표준시는 1961년 8월 10일 박정희 정권이 다시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바꿔 놨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제관례에 따른다는 이유였다.
실제 이유에 대한 의견이 많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한일 양국에 주둔한 미군의 작전 편의에 따라 한국의 시간을 다시 일본에 맞추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일본 오끼나와에서 뜨는 비행기가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하려면 같은 시간을 써야 편하다는 이유다.
그 이후 한국인들은 본의 아니게 30분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즉 타임머신을 타고 30분 빠른 일본인들과 같은 시간을 헤매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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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표준시는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변화흐름도/아시아뉴스통신=홍근진 기자 |
◇표준시 논란
우리의 표준시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0년 8월 조순형 의원 등은 한국인의 생체리듬에 맞는 동경 127.5도의 표준시로 변경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광복 60주년이었던 지난 2005년, 17대 국회에서 허천 한나라당 의원이 또 한 차례 표준시의 환원을 제안한 적이 있다.
2008년 7월 29일 당시 한나라당의 박대해 의원이 현재 동경 135도가 기준인 표준자오선을 동경 127도 30분으로 바꾸는 표준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최근에는 2013년 11월 21일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이 우리나라 표준시 기준을 우리 국토 중심부를 기준으로 바꾸는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잔재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고, 표준시 개정을 통해 영토주권과 역사를 재확립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정부에서는 반대 검토 의견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국가가 국제표준시(GMT)에서 1시간 단위의 시차를 두는 데 비해 30분 시차는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며 북한도 동경 135도를 쓰고 있으므로 통일 후에나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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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만국지도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천문대를 통과하는 경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정한 시간대 지도.(사진출처=중앙일보) |
◇뒤틀린 운명
세계의 표준시간은 지난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만국지도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천문대를 통과하는 경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정한 이후 변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본초 자오선을 중심으로 경도 1도에 4분, 15도에 1시간의 시간차가 났다.
세계 각국이 1시간 단위로 표준시를 정하는 ‘국제적 관례’가 있다. 이 관례에 따라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중국을 지나는 시간대 중에 하나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이란, 호주 등은 자국 고유의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15분 또는 30분 단위로 표준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중국, 러시아,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사모아 등은 표준시를 아예 바꿨으며 스페인과 인도는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운명을 점칠 때 ‘사주팔자’를 보는 경우가 있다. 통계학을 바탕으로 한 역술학은 우리나라의 위치에서 하루를 12개로 쪼개 태어난 시간에 따라 개인의 운명을 점친다. 태어난 시각이 달라지면 운명까지 상반되게 바꿔놓을 수 있다.
예컨대 자시(子時)는 우리 전래의 시간으로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그런데 현재의 시간 개념으로는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오후 11시30분이 지나야 진정한 자시생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이를 믿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동안 뒤틀린 시간 때문에 잘못된 운명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 때 가장 편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해와 달의 움직임을 보고 달력을 만들었다. 생체리듬 이라는 것도 곧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100년 넘게 우리에게 맞는 리듬을 깨뜨리고 살아왔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급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생체리듬에 맞는 시간보다 30분 앞당겨 살아와서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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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표준시를 되돌리는 일은 통일을 앞당기는 초석이기도 하다./아시아뉴스통신=홍근진 기자 |
◇통일의 초석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는 “동경 127° 30′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현재 시간보다 30분 늦은 시간)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표준시간으로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 한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했다.
사실 북한은 우리가 1954년과 1961년에 표준시를 바꿨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지난해 표준시를 바꿀 때까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시간을 써 왔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간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반만년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삼천리강토를 무참히 짓밟고 전대미문의 조선민족말살정책을 일삼으면서 조선의 표준시간까지 빼앗는 천추에 용서 못할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고 표준시 제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광복절 이후 평양역에 있는 시계가 오전 9시 출근 마감을 알릴 때 서울역 광장 시계는 오전 9시 30분을 가리키는 엇박자의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북한의 표준시간 변경으로 그동안 일본 표준시를 공유해 온 남북한은 여러 방면의 교류에서 불가피하게 혼란을 겪게 됐다.
정부는 당시 북한의 표준시간 변경으로 인해 장·단기적으로 남북관계에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입장을 내놓았었다. “남북이 공통으로 사용하던 표준시를 북한이 변경해서 남북 간에 30분간 시간차가 발생하게 됐다”며 “남북통합, 표준통합, 그리고 남북동질성 회복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동안 정부가 표준시 환원반대의 이유로 들었던 두 가지의 큰 것 중 하나가 북한의 표준시 변경 발표로 그 정당성을 잃었다.
정부가 그동안 주장하던 국제관례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뒤틀린 시간을 살아오면서 더불어 어그러진 우리민족의 운명을 바로 잡기 위해 또 동족인 북한과의 보조를 맞추는 의미에서 표준시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기왕에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인 우리의 표준시를 바로 잡는 일은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늦으면 늦을수록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통일을 앞당기는 초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