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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제작 천체 관측기구 '혼개통헌의' 보물 지정예고

[대구경북=아시아뉴스통신] 남효선기자 송고시간 2019-04-29 21:05

이인문 '강산무진도' 등 6건도 보물지정 예고
조선시대 천체 관측기구인 '혼개통헌의'.(사진출처=문화재청)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천체 관측 기구인 '혼개통헌의'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혼개통헌의'를 비롯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등 고려~조선 시대 회화와 불상, 초기 철기 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陶器) 등 총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 의기(儀器,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 표현한 천문 관측 도구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제작 사례이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실학자 유금(柳琴, 1741~1788)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정조 11년)에 만든 과학 기구로 이 유물은 1930년대 일본인 토기야(磨谷)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지난 2007년 고(故)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로 되돌아 온 환수 문화재다.

혼개통헌은 클라비우스(Christoph Clavius, 1538~1612)의 아스토롤라베 해설서인 “Astrolabium”(1593)을 명나라 학자 이지조(李之藻, 1569~1630)가 1607년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로 번역출간하면서 알려졌으며 '혼개통헌의'는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儀器]의 뜻을 지닌다.

유금은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숙부로 당대 학술, 예술, 과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실학자이다.

아스트롤라베(Astrolabe)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기원한 단어이자 도구로,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시계. 처음 이슬람에서 고안되었고 이후 스페인 등 유럽사회로 널리 퍼져 활용됐다.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母體板)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聖座板)'으로 구성돼 있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을 위해 만들다(乾隆 丁未 爲約菴 尹先生製)'는 명문과 더불어 '유씨금(柳氏琴)'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어 유금이 약암(約菴)이라는 호를 쓴 윤선생(실명 미상)을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窺衡)', 별의 고도(위치)를 확인하는 '정시척(定時尺)'도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 있다.

유금이 규형과 정시척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혼개통헌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형과 정시척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혼개통헌의는 먼저 규형과 정시척을 이용해 별의 각도를 잰 다음 각도만큼 성좌판을 돌려 별의 위치와 시각을 확인하는 원리이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해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時刻)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南回歸線), 적도(赤道), 북회귀선(北回歸線)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地坪座標圓)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黃道) 상의 춘분점(春分點)과 동지점(冬至點)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黃道圓)을 한판으로 제작했으며, 특정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指星針)이 11개가 있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北極出地三十八度)'란 위도를 새겼으며 이는 곧 서울(한양)의 위도 37.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 새겨진 별자리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에 근거한 것이지만 유금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독자적인 별을 그려 넣기도 했고 중국 책의 실수를 바로 잡아 반영하기도 했다.

이는 유금이 '혼개통헌도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이와 연관된 기하학에도 능통했음을 의미한다고 학계는 평한다.

문화재청은 " '혼개통헌의'가 서양의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밝혔다.

또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과학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해 그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강산무진도(江山無盡)'.(사진출처=문화재청)

◆ 이인문 작 '강산문진도'...조선조 회화 대표작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李寅文 筆 江山無盡)'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것으로 총 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이다.

이인문(1745~1821)은 자는 문욱(文郁), 호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며 중인 집안  출신으로 38년 동안 도화서(圖畵署) 화원을 역임하고 세 차례 북경 연행(燕行)을 다녀오며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대 화법(畵法)을 절충해 산수․인물․화조 등 다양한 소재에 재능을 발휘했다.

김홍도(金弘道), 김응환(金應煥) 등 당대 유수의 화가들과 교유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그림은 이인문의 그림 중 처음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으로, 조선 말기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소장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화제(畵題)인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주제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의 경관을 형상화하였다.

문화재청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한국회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권(長卷)의 산수화로 전문 직업 화가로서 그의 높은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 표현과 정교하고 뛰어난 세부 묘사가 일관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 회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보물 지정예고 배경을 밝혔다.
 
조선시대 문인 유희령 시선집 '신편유취대동시림(新編類聚大東詩林)'.(사진출처=문화재청)

◆ 유희령 시선집 '신편유취대동시림'...시문집 간행 과정 연구 주요 자료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新編類聚大東詩林 卷九~十一, 三十一~三十九)'는 총 70권 중 권9~11 및 권31~30에 해당하는 책으로, 1542년(중종 37) 경에 쓰인 금속활자인 '병자자(丙子字)'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이 판본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시(詩)의 원문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으로 판단된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신편유취대동시림'은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柳希齡, 1480~1552)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詩選集)이다.

기존에 간행된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 왕실, 여성, 승려, 귀화인 등의 작품을 망라했다.

현재까지 동일 판본이 확인되지 않은 유일본이자 1516년(종종 11, 병자년)에 중국 명나라 때 간행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바탕으로 해 주자도감(鑄字都監)에서 새로 주조한 ‘병자자’로 인출한 서책이라는 점, 조선 전기 금속활자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병자자(丙子字)’는 1516년(중종 11) 주자도감에서 만든 활자로, 크기가 고르고 활달한 서풍(書風)이 특징. 15세기에 주조된 계미자(1403년), 경자자(1420년)의 단점을 보완한 활자이다.
 
전북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石造地藏菩薩坐像)'.(사진출처=문화재청)

◆ 선운사 '석조지장보살좌상'...여말 선초 지장 신앙 연구 귀중한 사례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懺堂庵 石造地藏菩薩坐像)'은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온화한 표정과 불룩한 입술, 양쪽에서 드리워져서 여의두(如意頭) 형태로 마무리 진 띠 장식, 둥근 보주(寶珠)를 든 모습, 그리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 등은 고려 말기 조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지장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띠로 묶어 주름잡은 섬세한 두건의 표현 등이 조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보주를 든 두건 지장의 정확한 도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말 선초의 지장 신앙과 지장도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이 시기 금동과 목조로 제작된 지장보살상은 몇 점이 전하고 있으나, 석조로 제작된 지장보살 중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사례는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이 거의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대좌의 경우 보살상과 함께 조성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상‧중‧하대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고 가늘고 긴 형태, 여의두문(如意頭文)이 새겨진 안상(眼象) 등에서 고려시대의 특징이 뚜렷하므로 함께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거푸집'(사진 위쪽)과 완주 '갈동' 출토 청동제 거울인 '정문경'.(사진출처=문화재청)

◆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거푸집...2세기 청동기 주조기술 연구 탁월한 가치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完州 葛洞 出土 銅劍銅戈 鎔范 一括)'은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용범, 鎔范) 2점으로,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銅劍, 칼)과 동과(銅戈, 창)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로서,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경에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다.

‘완주 갈동 토광묘’ 유적은 지난 2003년 조사된 철기 시대 유적으로, 이곳에서 출토된 각종 청동기, 토기 등은 한반도 이남에서 발전한 초기 철기 시대 문화를 규명해 고고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석제 거푸집의 경우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같이 나온 유물들로 보아 출토 정황이 명확하여 매우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재라고 평가했다.

또 거푸집의 상태,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매우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며 "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출토 지점과 출토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자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물 지정예고 배경을 설명했다.

◆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2세기 사용 청동제 거울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完州 葛洞 出土 精文鏡 一括)'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이다.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로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자리한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됐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이며, 그 중 '전(傳) 논산 정문경'은 국보 제141호이며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八珠鈴), 쌍주령(雙珠鈴) 등과 함께 국보 제143로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지정돼 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전(傳) 논산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매우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은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고 밝히고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연유인화문 항아리'...통일신라기 연유도기 제작 연구 중요자료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陶器 鉛釉印花文 壺 一括)'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대호(大壺)와 소호(小壺) 총 2점으로 구성돼 있다.

대호와 소호는 제작 당시 외호(外壺)와 내호(內壺)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는지 불분명하나 유사한 형태와 문양,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같은 공방과 장인(匠人)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문화재청은 분석했다.

뻐항아리(골호, 骨壺)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鉛釉陶器)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하며, 통일신라 시대 연유도기의 제작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문화재청은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구연부와 바닥굽 등 일부 파손으로 인해 후대에 보수를 거쳤으나 동시기 도기와 비교할 때 조형적‧기술적 측면에서 독보적이며,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 측면에서도 8세기 통일신라 도기(陶器)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물 지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혼개통헌의' 등 총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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