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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해동학혁명'은 '동학혁명'보다 23년 앞선 성공한 첫 시민혁명"

[대구경북=아시아뉴스통신] 남효선기자 송고시간 2019-05-13 08:22

김기현 향토사학자 "영해지역 동학혁명 역사적 재조명.복원 절실"
영덕참여시민연대 11일 '1871년 영해 동학혁명사 재조명' 초청강연
11일 오후 경북 영덕군 창수면사무소에서 열린 '1871년 영해동학혁명' 재조명을 위한 특별강연./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1894년 갑오농민전쟁'보다 23년 앞서 경북 영해.울진지방에서 일어난 ‘영해동학혁명’이 사실상 '동학혁명의 효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경북 영덕지역 시민단체가 이를 복원하고 재조명해 동학혁명사에 올곧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덕지역 시민사회단체인 영덕참여시민연대(상임대표 신병삼)는 11일 '영해동학혁명'의 성지로 알려진 영해 창수면 신기리 형제봉 소재 병풍바위를 찾아 추념식을 갖고 이날 오후 2시 창수면사무소에서 '1871년 영해동학혁명 재조명'을 위한 초청 강연회를 가졌다.

이번 영해동학혁명 현장 추념식과 특별 강연은 '동학혁명'이 올해 첫 국가지정기념일로 지정된 것을 기리고 영해동학혁명을 우리나라 동학혁명사에 올곧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마련됐다.

신병삼 영덕참여시민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특별강연에 앞서 "영해동학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혁명으로 평가되는 '갑오농민전쟁' 보다 23년 앞선 민주혁명으로 사실상 동학혁명사의 효시"라고 강조하고 "이번 참여시민연대의  '1871년 영해 동학농민혁명사 재조명'이 영해지역의 동학혁명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가되길 기대한다"고 이번 행사 배경을 밝혔다.

이날 특별 강연은 영해 출신으로 30여년 간 '영해 동학혁명' 관련 사료를 발굴해 정리하고 현장을 복원하는 등 '영해동학혁명'의 역사적 가치 정립에 힘써 온 김기현 향토사학자(동학학회 이사)가 맡았다.

김 이사는 이날 강연을 통해 "영해동학혁명은 당신 농민계층 뿐 아니라 유학자, 퇴직 군인, 부상 등 전 계층이 주체세력이었다는 점이서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기반을 닦은 사실상 우리나라 동학혁명사의 출발점이자 효시"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 '영해동학혁명'은 수운 최제우의 기일인 1871년 4월29일(음 3월10일)을 기해 해월 최시형(최경오), 이필제(이제발). 김낙균, 강사원, 남두병(남칠서), 박영관, 전의철(전인철)등을 지도자로 영해, 울진, 영양지역의 유학자, 관료출신, 농민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봉기해 당시 영해부사 이정을 처형하고 영해 관아를 접수한 대사건"이라며 "최초로 성공한 시민혁명"이라고 정의했다.
 
11일 경북 영덕군 창수면사무소에서 열린 '1871년 영해동학혁명 재조명을 위한 초청 강연회'에서 김기현 향토사학자가 '영해동학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 김기현 "영해지역 의병. 독립만세운동 뿌리는 1871년 '영해동학혁명' "

김 이사는 "당시 이 봉기로 영덕지역 40명, 울진지역 13명, 경주지역 21명, 영양지역 9명, 청송 2명, 안동 2명, 포항지역 8명을 비롯 경남 칠원, 영산, 울산, 밀양, 전남 남원. 서을지역 등 114명과 미기록 인사 등 143명이 관군에 의해 처형당했다"며 '수운행록(水雲行錄)' '도원기서' '교남공적(嶠南公蹟)' '왕조실록' 등 '영해동학혁명'을 기록한 고문헌을 소개했다.

이 중 '교남공적'은 영해동학혁명의 실제인 '1871년(高宗 8) 3월 10일 寧海府를 습격하여 府使 李政을 살해하고 印信을 탈취한 동학도들의 供招와 그 처리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학계에서는 영해동학혁명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하고 있다.

김 이사는 '영해동학혁명'이 '이필제의 난'이나 '영해 민란'으로 폄훼되고 왜곡된 것은 조선총독부의 왜곡된 기술에 의한 것으로 이는 해방 이후에도 친일역사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폄훼돼 왔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영해동학혁명' 관련 역사적 현장에 대한 복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이와 관련된 역사적 현장으로 영해 직천마을과 형제봉, 병풍바위, 일월산 윗대치, 울연전, 울진 기성면의 달빔마을(방율리), 서울프레스센터, 단성사 등을 제시했다.

이 중 병풍바위, 울연전 등은 당시 거사를 준비한 장소이며 서울프레스센터와 단성사는 당시 지도자였던 이필제와 해월 최시형이 처형당한 현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11일 경북 영덕군 창수면사무소에서 열린 '1871년 영해동학혁명 재조명을 위한 초청 강연회'에서 김기현 향토사학자가 참석 주민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남효선 기자

또 김 이사는 '교남공적' 등 영해동학혁명 관련 사료의 유네스코 기록물 지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또 동해안 지역의 최대 규모인 영해 의병활동과 독립만세운동 등 민중운동은 영해동학혁명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있다며 영해동학혁명의 역사적 재조명을 통한 지역 정체성을 되찾는 일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라고 피력했다.

김 이사는 앞서 지난 2014년 영덕군에서는 영해동학혁명 관련 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해 재조명을 시도한 적이 있다며 영해동학혁명의 역사적 복원을 위해서는 영덕군과 울진군 등 관련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뒤따라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은 영해동학혁명 관련 사료와 현장 등을 담은 영상물을 활용해 2시간여 진행됐으며 황재철 경북도의원, 주민, 출향인사, 시민단체 회원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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