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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전의 잇단 국책사업 탈락, ‘실패보고서’를 써라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선치영기자 송고시간 2019-07-30 15:26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아시아뉴스통신=선치영 기자

스웨덴 스톡홀름의 ‘바사박물관(The Vasa Museum)’. 스웨덴 바사왕가가 북유럽 발트해 주변 제국 건설을 목표로 야심차게 건조했으나,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에서 침몰한 전함 바사호(號)를 전시하는 곳이다.
 
1956년 해양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된 바사호는 침몰된 지 333년 만인 1961년 인양됐다. 이후 보존과 복원작업을 거쳐 1990년 7월부터 현재의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4층의 이 박물관은 1만4000개의 조각을 맞춰 복원한 바사호만을 위한 전시관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지난 7월 24일 규제자유특구위원회(위원장 이낙연 총리)를 열고 ▲강원(디지털 헬스케어) ▲대구(스마트웰니스) ▲경북(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부산(블록체인) ▲세종(자율주행실증) ▲충북(스마트안전제어) ▲전남(e-모빌리티) 7곳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규제자유특구 주무를 맡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자체로부터 34개의 특구계획을 제출받아 분과위원회 검토를 거쳐 위 7곳을 첫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중기부는 7개 특구에서 향후 4~5년 동안 매출 7000억 원, 고용 유발 3500명, 400개사의 기업유치를 전망하고 있다. 7곳의 규제자유특구에서는 규제 특례 49개, 메뉴판식 규제특례 9건 등 총 58개의 규제특례가 허용된다. 중기부는 이번에 지정된 특구에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및 기업유치와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 특별시를 표방하는 대전시는 바이오산업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말았다.

대전시는 지난 7월 11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공모한 ‘스타트업 파크’ 사업에서도 인천시에 밀려 최종 탈락했다. 스타트업 파크 조성사업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 중국의 중관촌, 프랑스의 스테이션-F와 같은 ‘개방형 혁신창업 거점’으로, 창업자와 투자자, 대학 등이 교류·협력하는 열린 공간이다. 국비 120억7700만원은 스타트업 파크사업자로 선정된 인천시에게 돌아갔다.
 
대전시의 연이은 국책사업 공모탈락은 첨단기술경쟁시대에서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신호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혁신기업이 활발하게 창업하고, 자유롭게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제2의 벤처 붐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규제자유특구 탈락은 2000년 전후의 벤처 또는 스타트업 붐을 이끈 ‘대전의 시대’가 다시 오기 힘들지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은 ‘하늘이 없는 새장에 갇힌 새가 돼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선, 정부의 정책경로를 제대로 탐색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수시로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혁신성장 전략과 투자방향을 정한다. 중장기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핵심인재 양성과 투자계획도 확정한다.
 
이런 정부방침이 확정되면 정책경로를 탐색해 대전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런 능동적인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앙부처의 정책지침이 내려올 때까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대전은 대덕특구의 관련 연구인력과 최고 과학영재 양성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 등이 있지만, 이 자원들을 상시 활용할 시스템이 없다. 정책경로를 사전에 탐색할 수 있는 인프라가 튼튼하게 깔려있어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적극적인 의지나 진취적인 성취욕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전략적 사고가 나올 리가 없다.
 
스타트업 파크 사업은 4차산업혁명 특별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허태정 대전광역시장의 공약사업이다. 스타트업은 2~5명이 첨단 기술력 하나만을 믿고 창업하는 초기 벤처회사이다. 자본력이 부족한 것은 불문가지이다. 정책경로를 탐색하면 핵심은 이들을 담을 그릇의 필요함이다. 이들이 입주해 밸리를 형성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공간 확보에 중점을 둬야 했다. 대전시는 이 부분을 소홀히 했다. 인천시의 경우 1200억 원을 투자해 스타트업 밸리 구축이 가능한 공간을 제공한 것이 주효해 사업권을 받았다.

반면 대전은 ‘대덕특구가 있다’, ‘중소벤처기술부가 대전에 있다’라는 구태의연한 이유를 들어 사업권 확보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위치와 환경을 들이댄 것이다. 인천과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 형태였다.
 
기존 인프라 등을 활용하지 못하다보니 정책이니셔티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책목표에 따른 달성수단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다보니 다른 시·도에 비해 앞서갈 수 없다. 정책적인 헤게모니를 다른 시·도에 빼앗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일례로, 부산시가 규제특례지역으로 지정받은 블록체인은 정부가 정한 3대 전략투자분야이다. 대덕특구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이 가장 뛰어난 인재풀을 갖고 있다. 관련업체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대전지역의 인프라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한 민간업체에서 모든 비용(1억원)을 지불하겠다며 국제 블록체인 컨퍼런스 개최를 대전시에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블록체인 관련 정책적 이니셔티브를 잡을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던 셈이다.
 
첨단과학 분야에서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 대전광역시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데 무엇을 더 홍보하고 준비하느냐는, ‘제 논에 물대기’식의 안일한 인식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 규제특례지역을 별다른 인프라도 없는 부산에 넘긴 것은 너무 뼈아프다.
 
국책사업 공모 탈락의 원인은 실패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탈락하면 탈락한 것으로 끝나고 만다. 탈락 원인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실패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제처럼 실패의 분석을 통해 성공을 모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책사업 공모에서 매번 거의 같은 이유로 탈락을 되풀이하고 있다.
 
바사호는 길이 69m, 높이 52m, 탑승 가능 인원 450명, 탑재 대포 64문을 장착한 거대한 군함이었다. 그러나 진수식을 하자마자 열린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승선하고 있던 150여 명 중 30여 명이 익사했다. 당시 전함 건조를 가장 혁신적인 국가사업이라고 자랑했던 스웨덴 비사왕가의 참담함은 제국건설의 꿈을 꽤 오랫동안 접게 만들었다.
 
바사박물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사호의 거대함이나 장식의 화려함 등에 있지 않다. 침몰의 원인을 밝힌 과정을 보려는 데 있다. 갑판에까지 2열로 장착한 대포로 인해 무게중심이 위쪽에 있다 보니, 갑작스런 돌풍과 대포의 반동으로 균형을 잡지 못한 것이 침몰의 원인이었다. 이는 침몰된 배의 철저한 복원을 통해 밝혀졌다. ‘실패보고서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쓴’ 셈이다.
 
이처럼 과거의 사실은 활용의지에 따라 지식의 퍼즐이자, 미래의 비전이 된다. 대전시가 실패보고서를 가감 없이 써내려 간다면, 그것 또한 미래의 실패를 예방하는 지식의 퍼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 대전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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