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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담임목사.(사진제공=우리가꿈꾸는교회) |
<완전연소>
1. 진심이 오해 될 때만큼 낙심하게 되는 일이 없다.
2012년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진행하는 제자훈련세미나(CAL)가 처음으로 신학생들을 위해 열렸다. 당시 신대원 2학년생 이었는데, 기숙사 방장 선배의 소개로 해당세미나에 함께 참석했다. 제자훈련 세미나는 매우 충격적이고 흥미로웠다. 이론과 실제, 철학과 현장이 함께하는 입체적인 세미나였고 CAL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강사분들의 열띤 강의도 한 자리에 들어 좋았다. 무엇보다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론' 강의와 '한 사람' 철학은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가슴 속에 새겼다. 옥한흠의 '제자훈련'은 이제 나의 목회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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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역을 처음 시작하면서, 나는 여러가지 저항에 부딛혔다. 제자훈련의 철학으로 온 교회가 움직이지 않는 현장에서 초임 전도사로서 할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600명의 청년이 있는 교회에서 6명의 소그룹을 데리고 고강도 훈련을 하겠다고 했으니,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 켠에서는 내가 성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나는 제자훈련의 현장이 있는 곳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갔다.
2.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드러낸다.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본의가 오해 받았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의 상황은 갈라디아교회와는 달랐다. 바울이 떠난 자리에 와서 바울의 복음을 공격하고, 다시 전통적인 율법 준수와 행위를 강조하는 자들로 갈라디아교회가 혼란스러웠다면, 고린도교회에는 세련되게 자기를 PR하기 위해 먼저 된 바울을 깎아내리며 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선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특히 예루살렘을 향한 연보를 걷는 것을 문제시 삼았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웠기에 바울은 여러 교회에서 헌금을 모아 전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울이 재물을 탐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호도했다(14c). 더 나아가 그는 원래 '교활한 자'로, 성도들을 속여서 선동하고 무거운 짐을 주고 있다고 했다(16). 바울이 없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들로 성도들은 설득 되어져 갔고, 바울의 심경은 괴로웠다.
3. 또한 바울은 두려웠다.
예측이 안 되는 고린도 성도들의 상황은 그들이 재회 했을 때 어떤 결과로 나올지 몰랐다. 바울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을 것에 대해서(20a), 그들 안에 여전히 갈등과 분쟁의 조짐이 있을 것 같아서(20b), 하나님이 이번 기회에 바울을 공개적으로 낮추실 것에 대해서(21a), 성도들이 편지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에 대해서(21b) 그는 두려워했다. 목회자로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이런 순간이 아닐까.
4. 바울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14상)".
예루살렘을 향한 성도의 연보도 중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그들을 향한 구제와 동시에 고린도 성도들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19). 바울의 관심은 '오직 너희'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한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14하). 어느 부모가 돈을 받으려고 자신을 키우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텐트를 만들어 파는 등, 자비량 선교로 유명했다. 정당한 사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복음에 막힘이 없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이를 제한했던 사람이다.
5. 바울은 이에 더 큰 다짐으로 그들에게 약속한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주리니"(15a). 여기서 재물을 사용하고와 자신을 내어주리니 라는 말은 같은 어근을 두고있다. 헬라어로 '다파네'라는 단어는 '비용'을 뜻한다. 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가진 자원이나 재료를 소비하고, 비용을 대고, 허비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위해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또한 그는 더 나아가 '내 자신까지도 내어주리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바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거는 것, 자기 능력의 한계에 달하는 것'으로 '완전 연소'를 뜻한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을 다 태워버리기로 결정했다.
6. 나는 바울의 고뇌와 결정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만약 바울이 완벽한 사람이어서, 그는 흔들림이 없었고, 그는 애초에 성도들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자기 것은 조금도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이번 기회에 자신을 낮추실까에 대한 두려움을 담았다(21a). 그것은 자신이 틀렸을수도 있다는 고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15절의 고백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자신의 진정성이 오해를 받고 궁지에 몰릴수록 그는 더욱 정련되어갔다. 환경의 풀무와 거듭되는 망치질 속에 그는 진정한 사도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는 완벽한 초상으로서 바울을 볼게 아니라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 우리도 그처럼 정련되어감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3년, 나는 정말 목회를 실험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수록 내 안에 제자훈련에 대한 열정이 깊어져 간다. 확신이 분명해져 간다. 하나님의 망치질 속에 본질을 고민하는 동안 그날에 배웠던 '광인론'과 '한 사람' 철학이 갈수록 선명해져 간다.
한 사람을 위한, 완전 연소.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셨고
사도 바울도 따랐으며
제자 옥한흠도 그 길을 걸었다.
이제 우리도 그 길을 걸을 차례다.
<고린도후서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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