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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4-17 10:00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담임목사.(사진제공=우리가꿈꾸는교회)


<희생하는 사랑>

1. 희생적인 사랑이 모두를 살린다. 어릴 적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늘 희생적이셨다. 어머니는 늘 미소와 감사를 말하시던 분이었다. 형편이 좋지 않을 때는 산과 들에서 나물을 캐다 맛있는 반찬을 식탁 위에 올리셨고, 아버지가 신학교에 가실 때는 꽃집을 빌려 장사를 하셨다. 내가 입시미술을 위해 서울로 학원을 다닐 때도, 신학교에 갈 때도 언제나 나의 뒤에서 든든하게 재정을 지원해주던 어머니였다. 결혼을 할 때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아빠의 사랑이면 되었어. 가족의 사랑이면 엄마는 충분했단다. 여자는 사랑이면 없는 힘도 생기고, 그것으로 충분한 존재야. 엄마는 돈 없어도 살수 있고, 아무 것도 없어도 살수 있어. 사랑만 있으면 돼. 너의 아내도 그렇게 사랑해주렴." 

2. 룻기는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변화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룻기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1:1). 룻기의 마지막은 '다윗의 족보' 소개로 끝난다(4:18-22). 사사 시대의 끝에 룻이 있고, 왕정 시대로의 도입이 룻에 있다. 룻은 연결고리다. 이 책의 시작은 나오미로 시작하고 나오미로 끝난다(1장과 4장). 그런데 왜 제목이 '룻'의 이름을 따고 있는가? 2장과 3장의 주인공으로 룻이 떠오르는데, 그녀의 행동으로 나오미가 변화되기 때문이다. 모압사람 이방인이었던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남편과 두 자식을 잃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어머니 나오미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삶의 방식과 가치를 버렸다. 그녀의 자기희생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우리가 룻기를 흥미롭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3. 나오미 일가는 기대에 차서 모압으로 이주했던 유대인 가족이다. 그때가 사사기의 연장이라는 부분을 기억하자. 사사기의 특징은 '그때의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는' 타락의 특징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으며, 이에 신앙도, 윤리적 삶도 뒤죽박죽 섞여 있던 Canon-기준이 없던 시대였다. 그들은 기준 없이 이방 땅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모압지역이 베들레헴 땅 보다 '비가 자주 오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내거신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독자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를 이겨낼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자립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오미의 가족이 모압으로 떠난 것처럼 그 시절엔 하나님의 말씀도 교육이 잘 되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것에 별로 영향받지 않았다. 나오미 일가의 선택은 성공했을까? 그들은 바라던 삶을 이루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렇게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4.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나오미의 행렬에는 남편과 두 아들의 시신이 함께했을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는 가족 매장이 관례였다. 죽은 조상들의 묘에 함께 묻힌다는 것은 고인이 죽은 조상들 곁으로 간다는 의미와 함께 향후 후손들의 공동체와 연결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귀향길은 '쓰디썼다.'(20절 - 마라). 베들레헴 사람들이 돌아오는 나오미를 보고 "이는 나오미가 아니냐"고 떠들썩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19). 지치고 일그러진 얼굴의 그녀와 이방여인 룻, 실려오는 운구 셋. 사람들은 북적였고, 저마다 외국에 가서 잘 사는 줄 알았던 흠모했던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나오미가 맞아?" d.a카슨은 그녀가 '아이러니한 모욕감'을 느꼈을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 나오미의 뜻은 '기쁨', '매력'이었는데 그녀는 지금 기쁨도 없었고, 매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귀향길에 두 며느리를 '돌려보냈던'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돌려보냈다(8-15). 이에 오르바는 돌아갔고, 룻은 끝까지 남았다. 모압과 베들레헴은 도보로 150km거리로 떨어진 만큼 삶도 달랐다. '돌아가다'라는 말은 퇴보하다, 회개하다, 배반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첫번째 며느리 오르바도 시어머니를 따라 걸었었다. 그러나 중간에 돌아갔다. 우리의 신앙도 누군가에게 영향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돌아가고 마는 경우가 있다. 왕년에 열심히 믿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많이 가봤으니까 충분한가? 돌아왔기 때문에 제자리 걸음이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지 않고 더 나아갔다.

5. 룻은 말한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6-17). 나오미는 그녀가 '굳게 결심함'을 보고 만류하지 못했다. 히브리어 아마쯔는 '마음을 단단히 하다', '견고히 하다'라는 뜻이다. 룻은 마음의 채비를 챙겼다. 그리고 자기의 고향도, 일가친척도, 문화와 삶의 방식도, 종교도 버리고 나오미와 함께했다. 남편을 잃은 룻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의 곁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남은 것 마저 버렸다. 이방인 여자 룻은 향후 다윗의 조상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게 된다(마1:5). 룻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다. 룻의 자기희생은 나오미만 회복시킨게 아니라 자신도 살렸고, 민족도 살린다.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은 우리를 죄를 대속할 뿐만 아니라 부활의 기초였다. 온 민족에게 주어진 구원의 능력이었다. 

6.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다(요15:13-14).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예수님이 사랑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자기희생으로 당신이 완전한 사랑이심을 확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놀라운 구원을 받았다. 희생하는 사랑에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놀라운 걸음에 능력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 걸음을 걷자. '텅빈' 것처럼 괴로워하던 자들이 결국에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리니.(21, 4:14-17)

<룻기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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