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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 하늘의기쁨교회 양봉식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히 유대인의 한 남자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스가랴 3장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결하시고 용서하셨다. 이제 그 소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얻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아담 안에서 출생한 자가 사단의 본성을 소유하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본성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15)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하나님의 본성을 소유한 사람은 더 이상 예전에 자신이 가졌던 사단의 본성에 참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이 가지신 본성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육신을 입고 있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본성인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을 통해 모든 사람은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냥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의 본질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존재이다.
“이는 형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2)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낳은 자들이다. 이 출생은 육이 아닌 영의 출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은 더 이상 육이 아니라 영이다. 이 영은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보증하고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바울이 계시를 복음을 깨달은 다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양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 발견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의 편지에서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어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이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에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기동하고 거기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영역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충만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영적 출생에 있어서 완벽함은 물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또한 하나님의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은 감각의 영역에서는 믿음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진리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그분은 약속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회복하게 하시고 자녀로써 이 땅에서 살게 하셨다.
문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나지만 그 생명이 우리 삶 가운데 왜 풍성해야 하는지 말 모른다는 사실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은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은 것과 함께 더 풍성히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생명을 낳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해졌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10)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그 생명이 더 풍성해져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 것과 연결시켜서 봐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2)
이미 생명을 얻었다면 또 얻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충만해졌다면 우리도 충만하다. 하지만 이 충만해진 영역은 혼과 육체의 영역이 아니라 영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는 영역은 혼과 육체의 영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령한 젖인 말씀을 먹어야 한다.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영의 영역이 아닌 육신의 영역인 마음과 육체의 영역에 구원을 이루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된다.
“베드로후서 3장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그리스도인들이 부지런히 그의 말씀을 먹고 성령님을 통해 그것을 알아갈 때, 그 진리를 행하며 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과 능력을 이해하고 새 생명, 즉 새 사람으로 기능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얻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끝낸다. 더구나 이 생명의 의미도 중요성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냥 구원을 받았다. 이제 죽으면 천국이다. 이 정도이다. 나머지는 종교적인 신앙생활이다.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 목사가 시키는 대로 교회 조직 생활에 순종하는 것, 각종 교회 모임을 통해, 기도 생활을 통해 자신의 문제, 가족의 문제,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졌으며, 더 이상 육신을 통해 무언가를 채우고 얻어내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우리 안에 이미 임한 그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모든 것을 이 땅에 드러내고 어그러진 이 땅의 모순, 악, 약함, 질병, 가난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일을 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으로 보냄을 받은 우리가 이제 그 일을 하도록 요구하신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 전혀 변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은 옛사람의 사고를 통해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으로만 들어가 있다. 성령이 아닌 우리의 노력을 통해 주어진 신학적인 지식의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의 종교적인 지식일 뿐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11)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영의 영역에 있다. 이 생명과 능력이 우리의 육체 가운데 나타나게 하려면 우리의 몸에 예수의 죽음을 짊어져야 한다. 즉 옛사람에게 순종한 몸이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그 욕구를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 바울이 말한 대로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이 훈련은 먼저 영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오감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훈련을 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식을 먼저 거듭나는 영의 영역에서 시작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옛사람으로 있는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한다. 이 때 마음은 고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머리 아래 있는 가슴에 말씀이 가득해야 생각이 바뀐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말하고 듣고 생각했던 오감의 방식을 따라 무엇이든 아주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영으로 살기 시작할 때, 영의 방식과 육의 방식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당신은 거룩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생각은 그것을 즉각적으로 거절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이나 몸의 행동과 말이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적인 생각, 감정, 의지가 변화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된 영이다. 이 영으로 말해야 하는 것보다 오감으로 가득한 신념체계로 말한다. 그래서 이런 진리를 나눌 때, 이해는 가지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누적되어 이미 신념이 체계화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개정개혁 성경을 킹제임스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영은 이미 새롭게 되었다. 혼은 이제 처음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자신의 생각을 따라 스스로 지식을 만들었던 혼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가 혼을 이끌어가야 한다. 성경은 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성령님을 통한 진리의 순종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말씀은 성령님을 통해 순복되어지고 감동되어져서 진리에 순종할 수 있다. 우리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상명령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온전히 사로잡혀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게 되면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수많은 사역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한은 이 진리에 대해 “주께서 그러하심 같이 우리도 그러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요 14:!2)의 약속대로 예수님처럼 사는 그의 몸인 교회들을 통해 예수님보다 더 놀라운 사역들을 지상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해야 아주 좁은 길이다. 복음은 경우의 수가 많은 주사위 놀이가 결코 아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제시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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