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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산본교회 이상갑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4-20 21:16

청년사역연구소 이상갑 대표.(사진제공=청년사역연구소)


<은혜를 깊이 경험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주께 하듯 하게 됩니다.> 

저는 26살에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2학년에 복학을 하면서 더 깊은 은혜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1주일 금식을 하면서 기도원에서 보냈습니다. 그때 더 깊은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금식하면서 성경을 읽는데 너무 달콤하였습니다. 은혜받은 감격으로 멈추어 서서 찬양하고 멈추어 서서 찬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1학년 때는하검이 시들시들 했습니다. C,D학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B학점 이하로 거의 떨어지는 과목이 없었습니다. 주께 하듯 공부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는 제게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학자 겸 목회자가 되기 원합니다. 책을 읽고 책을 저술하는 목회자가 되기 원합니다.> 그 은혜의 결과가 <설래임, 바이블 정신, 결국 말씀이다.> 입니다. 은혜 받으면 확 뒤집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주께 하듯> 하게 됩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주로 삼게 합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그 몸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지체란 각각의 기능이 있습니다. 각각의 책임이 있습니다.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균형 잡힌 건강한 은혜의 영성은 어떠할까요? (느8:9 후반절.)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균형잡힌 은혜의 영성은 단지 눈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물론 슬픔과 눈물은 일시적으로 회개의 표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여호와의 성일에 슬픔과 눈물을 통해 경건하게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신앙이 좋으면 교회에서 늘 슬픔과 눈물을 지닌 모습으로 오해했습니다. 바깥에서는 웃고 떠듣다가 교회만 들어오면 갑자기 조용해지고 엄숙해지는 것을 경건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느8:10 본문을 통해서 진정한 경건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경건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느헤미야8:10절)을 주목하여 읽어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여기에는 경건한 사람의 선명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무엇일까요? <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힘의 근원이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에서 힘이란 원어 <마우제켐>이 의미하는 바는 안전을 제공하는 장소나 수단, 요새, 견고한 성, 보호처,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의역하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러면 그가 너희에게 힘을 주실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힘이 됩니다. 능력이 됩니다. 어려움을 이기는 원천이 됩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보호처요 피난처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표식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분은 기독교는 잔치집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기독교는 분명 잔치집과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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