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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믿음의 원뜻을 왜곡한 대참사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Hab 2:4)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Rm 1:17)
로마서 1장 17절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로 삼은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부패를 맞서 종교개혁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종교개혁이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유럽에서는 거의 생명력이 다했고 대한민국에서도 한 때 융성했지만 개독교란 오명을 쓴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은 신앙의 자유마저 위태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봐도 기독교가 부흥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독교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독교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개념을 원어적으로 살펴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구약에서 믿음이란 단어는 하박국 2장 4절에서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하박국에서 쓰인 믿음이란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는 ‘에무나(אמנ)’입니다. 에무나의 원뜻은 ‘충성’, ‘신실함’, ‘진실함’, ‘선량함’ 등 입니다. 에무나(אמנ)가 구약에 49번 나오는데 대부분 성실이나 진실함, 충성 또는 직임으로 번역이 되었고 믿음으로 번역한 경우는 단 한번 밖에 없습니다. 하박국에서 ‘에무나(אמנ)’를 믿음으로 번역하였는데 내용은 다른데서 번역한 것과 같이 성실이나 진실함의 원뜻과 같습니다.
이렇게 사용된 에무나(אמנ)라는 단어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어근은 ‘아만’인데 ‘아만’은 138번이 나옵니다. 아만에서 아멘(אָמֵן,amen)이 나왔고 ‘에무나’로 파생되었습니다.
동사 ‘아만’은 ‘믿다’, ‘신실하다’, ‘충성되다’, ‘굳게 서다’라는 의미로 번역됩니다. 또한 ‘아멘’이란 단어는 24번 사용되었는데 그 뜻은 정말로, 진실로 등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동사형 아만이나, 명사형 에무나는 충성과 성실함이란 면에서 사실상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히브리어 에무나(אמנ)가 헬라어 명사 피스티스(πίστις), 동사 피스튜오(πιστεύω), 형용사 ‘피스토스’(πιστός)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들 단어는 신약에서 240여회 나옵니다. 대분분 ‘믿음’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피스티스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신실성’, ‘신뢰성’, ‘약속’, ‘서약’,‘신뢰’,‘ 확신’, ‘믿음’ 등입니다. 피스티스 역시 신실함, 충성, 믿음 등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하박국 2장 4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의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의인은 그 에무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합니다. 에무나로 사는 사람은 글자 그대로 충성되고 진실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사람입니다. 에무나로 사는 사람은 한번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동의하는 수준의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신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그 성품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볼 때 악한 바벨론 사람들이 와서 의로운 사람들까지 다 죽이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의로운 사람은 충성심과 성실로 말미암아 죽지 않고 살리라" 하나님께 에무나로 인정받은 의로운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대표적인 이단은 영지주의입니다. 마르시온이란 사람은 영지주의자의 대표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오직 믿음만의 구원’을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루터가 주장한 ‘오직 믿음’만의 교리는 마르시온이 주장한 교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르시온은 믿음을 강조하면서 행위를 완전히 제거한데 비해 루터는 그렇게 까지 극단적으로 행위를 멸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어거스틴은 믿음이란 무엇을 더하거나 어떤 목적에 이를 필요가 없으며 단지 믿음 자체만 있으면 되고 이 믿음에 다른 것이 관련되거나 더해져서도 안 되며 성화의 삶이나 성령의 열매나 선한 행위조차도 관련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시온이나, 어거스틴, 루터, 칼빈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원뜻에서 행위를 교묘하게 분리해 내므로 믿음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 했습니다. 물론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과 행위, 믿음과 충성, 믿음과 성실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에무나나 피스티스의 원어를 살펴보면 믿음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행위를 분리해 내고 행위가 없어도 구원을 받는 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행위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악세사리로 전락하였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원어대로 하면 충성스럽고 진실한 신앙입니다. 여기에 어디 삶의 분리가 있습니까? 믿음과 삶을 분리하는 것이 이원론입니다. 이원론이 곧 영지주의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삶의 행위는 구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무서운 생각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5:6)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은 단순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인정받은 믿음은 충성과 진심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한 믿음입니다.
구약의 믿음이라는 히브리어 ‘에무나’도 신약의 믿음이라는 헬라어 ‘피스티스’ 모두 같은 뜻입니다. 모두 삶에서 믿음이 반영되는 참된 신앙입니다. 충성과 진심이 따라오는 마음이자 삶입니다.
믿음 따로 행위 따로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어떤 이론이 아니고 생명입니다. 다시 말해 행위가 빠진 순수한 믿음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충성이고 성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바로 다음 순간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열매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야고보가 말한 대로 죽은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정작 믿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름이 끼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에무나의 믿음이 있는가? 나의 믿음은 피스토스의 믿음인가? 여기에 정직하게 답할 수 없다면 믿음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진실, 정직과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믿는다 하면서 진실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고 충성되지도 않는다면 그 믿음은 결코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만고 자기생각, 만고 자기 확신으로 나는 믿었으니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미신은 없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피스토스,πιστός)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피스토스,πιστός)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주님께서 최후 심판석에서 무엇을 따라 심판하십니까? 바로 충성입니다. 피스티스입니다. 이 믿음이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충성은 단회적인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과 동행하며 전 삶을 통해서 보여 줘야할 신앙의 길입니다.
에무나의 믿음, 피스티스의 믿음을 내버리고 믿음에서 행위를 완전히 분리해 낸 개혁신앙의 결과가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있었다면 진정한 피스티스의 신앙, 에무나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함과 믿음을 완전히 분리한 이원론을 앵무새처럼 주장하는 어거스틴의 후예들의 어리석은 소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정한 희망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믿음의 모델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받아야 믿음의 삶이 얼마나 복된 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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