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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침례교회 조강혁 목사 페이스북 사진./아시아뉴스통신=유미선 기자 |
《열심의 내용》
1. 스코틀랜드의 목사이며 찬송가 작가인 보너가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천사가 보너의 열심을 저울에 달고 있는 꿈이었는데 엄청난 무게가 나왔습니다. 천사가 하는 말이 보너의 열심은 100kg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천사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가 그 열심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심의 발로가 14kg, 파당적 열심이 15kg, 명예와 자랑의식에 의한 열심 20kg, 성공하기 위한 열심 17kg,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열심 22kg, 주목받기 위한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한 영광을 위한 것은 10여kg밖에 안 나왔습니다. 깜짝 놀라며 잠이 깬 그는 자신의 행위를 깊이 살펴보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은 먼저 우리의 ‘중심’’의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행위가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행위, 삶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10%도 채 안 됩니다.
은밀한 영역 즉 은밀한 죄성, 보이지 않는 중심, 동기, 마음, 생각, 가치관, 인식과 의식체계는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 열심의 내용과 동기, 인식, 중심, 마음의 상태등이 그 행위의 선악, 영광의 유무, 경중을 결정 짓는 것입니다. 행위라는 ‘배’를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는 ‘키’입니다.
여러분은 자존심이 주된 동기가 되어 행동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직분 때문에 의무적으로, 벌 받을까 봐 두려워서 행한 적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동기, 중심, 마음들이 있습니다.
열등감으로 인한 것, 우월감으로 인한 것, 보상을 바라는 것, 칭찬과 인정, 자기증명, 경쟁심으로 인한 것들, 이런 것들은 모두 자아, 죄성, 자기 중심성으로 인해 나오는 마음들입니다.
이런 마음들에서 나오는 행위와 삶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올바른 행위들이 아닙니다. 마치 예수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 같이 자기 유익(유업, 복)을 위해 일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이미지와 영광을 위해 왕의 일을 했던 사울 같은 사람입니다. 과거 율법주의자일 때의 바울,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 같은 자들입니다.
신자들중에 그냥 대 놓고 ‘불순한 동기’로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직 참된 신앙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보통은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냥 특별한 마음의 살핌과 점검 없이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냥 합니다.
눈에 보이는 행위 자체가 선한 모양과 형태를 지니고 있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선하고, 훌륭한 행위일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불순한 동기"로 "거룩한 형태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배, 기도, 말씀, 찬양, 설교, 사역, 전도, 봉사, 구제....등등...
[성경 말씀 사도행전 8장 21절]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것도 없느니라
(2)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하고, 그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고, 올려 드리려 해도 우리의 자아(=죄성)이 깨어지지 않으면(=동기와 중심이 올바르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 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동기, 중심, 의식, 인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불신자들의 마음의 상태입니다.
[성경 말씀 로마서 1장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중생(구원)은 일차적으로 죄 된 자아를 깨뜨려 동기와 중심을 결정적으로 크게 한번 세우는것이고(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성화는 이 죄성이 지속적으로 깨어짐으로 나타나지는 "올바른 동기,중심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동기, 마음, 중심은 없습니다. 중생 때 한번 정화(목욕)되고, 깨어지고, 그 이후 계속 마음의 불순물을 정화 시켜 나가는 것이 성령님의 성화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올바른 인식과 중심,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영광의 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중생(구원)시키시고, 자아를 깨뜨리셔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참되려면 자아의 깨어짐과 하나님 의존성으로 말미암은 자기기만의 깨어짐. 깨어진 자아에서 나오는 삶과 행위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단 깨어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때론 알고, 때론 모르고, 때론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게 됩니다.
예를들어 바벨탑은 사람들의 어떤 업적과 쌓는 것, 성취하는 것,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바벨 탑은 하나의 문명, 도시를 말합니다. 오늘날 세상 문명과 도시들, 세상을 닮아간 교회들..다 누구의 이름을 위한 것들입니까?
[성경 말씀 창세기 11장 4절]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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