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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교회 학원선교부 박길웅 전도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시15:1-6
1.주님의 장막에서 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의 기능을 넘어 그 분과의 깊은 관계 가운데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주님과의 아무런 관계 없이 그 분의 장막에 당연히 거할 수 없지만,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할지라도 주님과 관계 없는 주의 장막에서의 거주는 결국 자기 만족으로 그칠 수 밖에 없다.
2.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불러보면 3절의 고백이 바로 이와 같다. ‘거친 들이 높은 산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내가 어디에 거하는 장소적 개념보다는, 내가 붙드는 자가 누구인가에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있다.
3.이는 하나님 나라를 장소적 개념보다 통치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개념을 보다 깊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앞으로 죽어서 갈 천국을 소망하여 지옥 같은 이 세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시궁창 같은 이 현실속이라도 주님이 내 삶 가운데 함께 하신다면, 이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또 다른 소망과 희망을 보게 될 수 있다.
4.본 시편에 주님의 장막에 거하는 것과 주의 성산에 사는 자를 표현하는 것은 시편 24편에 주님의 성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가 하고 밝히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시편 24편에 주님의 성산에 오를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이며, 본 시편 15편에 주의 장막에 머물자 역시 정직에 행하는 자이다. 모두 마음에 관계되어있다.
5.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뉘지 않는 일편단심의 마음 상태라는 것을 일전에도 나누었는데 그 근거로는 마태복음 5장의 팔복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 역시 가시적인 눈으로 본다는 의미보다는 그 분과의 관계를 맺으며 누리는 것임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주의 장막과 마음의 청결,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을 보는 것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다.
6.또 다른 면에서는 주의 장막에 머물과 주의 성산에 오를 수 있는 자에 대한 자격요건(?)-[정직, 공의,진실, 남의 허물 덮기, 악을 행치 않기, 비방치 않기, 망령된자 멸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자 존대, 서원 지키기, 이자 원치 않음, 뇌물 따르지 않음]이 잠언 6장 16-19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예닐곱 가지”와 거의 반대로 일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7.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예닐곱가지는 다음과 같다.[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자의 피흘리는 손, 악한계교의 마음, 빨리 악으로 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증인, 형제 사이 이간]
8.주인의 집에 머물기 위해서는 주인이 원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 이제 내가 사는 이유가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그 분의 어떠함’이 되길 소망한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내가 처한 곳이 어느 곳인가 보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부분이 누구인가를 더 가슴에 새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9.아담은 장소적으로 가장 완벽한 환경에서 타락했다. 우리의 사는 환경에 대한 지나친 사모함은 결국 우상 숭배로 갈 수도 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