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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벧엘교회 담임 손희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누군가 나를 거스르고 악한 말을 할 때
1. 대적하는 자는 어디에나 있다.
주인공이 등장하면 반드시 악인이 나옵니다. 악인은 주인공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갈등과 화해라는 구조는 드라마 혹은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갑니다. 어제 보았던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시편 2편에서 우리는 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권위자를 무시합니다. 거역합니다. 사탄(satanas)의 다른 이름은 “대적하는 자”입니다. 저들은 본래 천사였지만 하나님을 대적했다가 마귀 곧 사탄이 되었습니다.
2. 불평과 원망의 출처
사탄이 하는 또 하나의 일이 있습니다. 불만과 원망을 심는 일입니다. 마치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듯이 불평하고 투덜거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말합니다(3절). 그들은 자신들이 묶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박을 당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불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고후 3:17). 부족할 것이 없는 에덴동산에서도 사탄은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며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께 불만을 품게 했습니다. 사탄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날마다 내려 주시는 만나에 대하여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장기 집권을 한다며 고깝게 보도록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복 있게 대처한다.
이런 군급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묵상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8절) 말씀을 받기 전에는 심난합니다. 야속합니다. 걱정이 엄습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받고 난 후 하나님의 사람은 담대해 집니다. 나를 거스르는 소리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은 내 아들이다. 너는 건드리지 마라.” 따끔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들을 귀가 있는 당신의 자녀에게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녀는 이제 담대하게 외칩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거스르고 악한 말은 멈추십시오.”(11절) 그리고 자신을 대적했던 이들에게 서둘러 자신과 입맞추자고 강권합니다(12절). 입맞춤의 행위는 화해의 제스처이며 친밀함의 제스처입니다.
4. 언제든 시편 1편으로 돌아가라.
살면서 일절 갈등도 고민도 두려움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순풍만 만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거스르는 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고 관점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면 마음에 주름이 생기고 빛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시편 1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읽으라고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들려올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이런 말씀을 듣고 나면 절대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당당해질 것입니다. 확신에 찰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권세를 가지고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하루를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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