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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친밀함의 열쇠 3 - 더 오래'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6-15 21:21

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성령님과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깊은 친밀함’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1. ‘더 깊은 친밀함’은 ‘더 오래’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추구할 때 가능하다. 가끔 사람들은 <양보다는 질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분들은 양을 충분히 채운 분들이어야 한다. 기도도 질적으로 좋아지려면 기도의 시간도 충분히 많을 때 더욱 좋아진다. 말씀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 역시 말씀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하는 거다. 물론 올바른 방법과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 금상첨화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과 친밀해지려면 더 오래 그분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성령님 앞에 홀로 머물러 있는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즐겨야 한다. 습관이 되어야한다. 예전에 [임재기도]라는 책에서 나눈 내용이지만 잠시 나눠보겠다.
 
2. 리처드 포스터는 그의 책 [영적 훈련과 성장]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고독과는 다른 '홀로 있기'를 요청하셨다. 고독은 내적 공허를 가져오지만 홀로 있기는 내적 충만을 만든다. 홀로 있다는 것은 장소라기보다는 마음과 정신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때든지 마음의 홀로 있기를 할 수 있다.
 
반면 광야에서 혼자 수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홀로 있기를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홀로 있기 없이 친교를 원하는 사람은 공허한 말과 감정에 빠지기 쉽다.
 
3. 그러나 친교 없이 홀로 있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공허한 깊은 수렁과 자기도취와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고요함은 때때로 말이 없는 것과 연관되지만 듣는 행위와는 항상 연관이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 없이 단순히 말을 금하는 것은 고요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홀로 있기 훈련은 짧은 시간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족이 일어나기 전 침실에서 가지는 홀로 있기를 생각해 보라. 또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의 홀로 있기를 생각해 보라. 아침 출근 시간에 교통이 밀려 자동차가 자주 멈추는 시간의 홀로 있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꽃이나 혹은 나무를 볼 때에도 회복의 짧은 순간을 즐길 수 있다.
 
4. 홀로 있기의 또 다른 방법으로 하루 종일 한 마디의 말없이 생활하기를 시도해 보라.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일종의 실험으로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이때 당신이 느낄 수 있는 무력감을 관찰해 보고 전달 수단으로서의 말에 당신이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유의해 보라.
 
그리고 말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찾아보라.>
 
5. '홀로 있기'라고 해서 '나 혼자'라는 고독한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위의 여건이 적절히 주어진다 하여도 당사자는 홀로임을 느낄 때가 있다. '홀로 있기'는 쉽지 않은 훈련일 수 있다. 그러나 '홀로 있기'는 너무나 귀한 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종종 홀로 있도록 하셨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홀로 있기를 즐거이 훈련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있기를 즐거워했던 사람이었다.
 
6.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33:7-11)
 
모세는 '홀로 있기'를 즐거워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항상 만나주신다. 모세만이 아니며 위의 말씀을 끝까지 살펴보면 그 수종자 여호수아도 모세와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를 사모했다. 결국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모세와 동일한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 된 거다.
 
7.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홀로 있기'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홀로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성령님과의 독대를 위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계획들을 성취하실 수 있으시다. 예수님의 영광을 아름답게 드러내신다. 부디 홀로 있기를 지속적으로 훈련하자.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도 이렇게 조언하신다.
“내 영적 생활이 약한 것은 주로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부족해서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가장 오래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오래 서는 자이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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