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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 새언약교회 김곤주 담임목사.(사진제공=새언약교회) |
죽으면 새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갈까?
교회 수련회를 할때,
"계시록에 나오는 새예루살렘은 우리가 죽으면 들어갈 새예루살렘 건물을 말할까요? 아니면 천국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의 새예루살렘일까요?" 하고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분이 "가봐야 알죠" 하고 단숨에 정답을...
물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봐야 알게 되겠지만, 계시록 21장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새예루살렘은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이 묘사한 이 새예루살렘은 크고 높은 성벽이 있습니다 (계 21:12). 마찬가지로 , 계시록 22장 15절에 가면,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새예루살렘 (천국)에 크고 높은 성벽이 왜 필요합니까?
아직도 어떤 적들이 천국의 성밖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예루살렘 성안은 천국이고 성밖은 지옥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입니까?
새예루살렘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면 도무지 말도 안되는 표현들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구약성경을 근거로 한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새예루살렘 천국을 묘사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레위기 24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사람은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쳐서 죽임을 당하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밖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상태 혹은 저주받은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것입니다. (cf. 민 15:36)
이와 대조적으로, 이사야 26장 1-2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성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사 26:1-2).
여기서 예루살렘 성벽을 안전과 구원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한은 이러한 구약성경의 표현들을 빌려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죄인들과 악한 자들은 결코 들어갈수 없는 곳임을 성안과 성밖이라는 대조적으로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요한이 묘사한 새예루살렘은 가장 안전한 곳이요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된 거룩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임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 11절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요한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열 두 문’에 있는 열 두 천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문의 출입을 통제하는 천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그 문위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점은 특별히 구약의 에스겔 48장 30-34절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보면, 에스겔이 환상중에 본 새 성전 문에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를 지닌 '여호와 삼마'가 그 성읍의 호칭으로 부여됩니다. 이 내용은 계시록 21장에 나타난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관련된 것으로 (3절;22:3, 4)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새예루살렘의 문에 쓰여진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표(상징)한다면, 성의 기초석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신약 시대의 교회 (그리스도인)를 대표(상징)합니다.
따라서, 새예루살렘 천국은 신약과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면에서 어린양의 신부라는 사람의 개념입니다),
이렇게 새예루살렘 천국은 어린양의 신부들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는 곳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장소인것과 같이 천국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곳)도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cf. 계시록 5-7장)
그래서, 이렇게 새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하는 사람의 개념으로 그리고 동시에 실제적인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이 어린양의 신부(계 21:9-10)라고 소개하면서 그 모양은 실제 예루살렘 성의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신부 (교회 혹은 신자들 )로 이해하는 분들은 장소적인 개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장소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은 새예루살렘이 어린양의 신부 (교회 즉 신자들)라는 개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묘사하고 있는 새예루살렘은 아주 미묘하고도 역설적인 방법으로 ‘사람’과 ‘장소’라는 두가지 개념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막연한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실재하고 요한은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그 천국을 새예루살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가 어린양의 신부로서 새창조를 통하여 거룩한 천국으로 변화되어 갈 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죽어서 갈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 (계21:1)은 저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과 저천국이 하나가 되는 종말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