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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벧엘교회 손희선 목사 '단 것도 아니고 쓴 것도 아니고'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7-17 00:30

열린벧엘교회 담임 손희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단 것도 아니고 쓴 것도 아니고

1.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소송의 원칙 중 무죄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단죄할 때 추측만으로 유죄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판자이십니다. 공명하고 정대하신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추정으로 이스라엘을 유죄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거부하려야 할 수 없는 틀림없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2. 죄를 합리화하는 죄
가장 대표적인 죄가 있다면 “자기 합리화”입니다. 사람은 대개 머리가 좋을까요, 나쁠까요? 사람은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습니다. 태어난 지 수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가도 공갈로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사람의 머리가 비상하게 작동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죄를 지으면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들어야 정상이지만 사람 안에 있는 죄성이 그것을 묵인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속에서 일어나느냐면 합리화가 진행됩니다.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가 만들어 집니다. 선악과를 범하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당신이 내게 준 여자 때문에”(창 3:12)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3. 기준이 사라진 합리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것이 좋은 것이 되고 좋은 것은 나쁜 것이 됩니다. 어두운 것이 빛이 되고 빛이 어두운 것이 됩니다. 쓴 것이 단 것이 되고 단 것이 쓴 것이 됩니다(20절). 합리화가 진행되면 악한 것과 선한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단 것과 쓴 것 사이에 기준이 모호해져 버립니다.

4.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을 혼내는 제자들
한 여인이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져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나드”(나드로스)는 히말라야가 원산인 나드초에서 추출한 향유입니다. 무지 비쌉니다. 일반 노동자가 1년을 꼬박 모아야 살 수 있을 정도의 값어치입니다. 그것을 단 하루 만에, 아니 단 몇 초 만에 예수님의 머리에 다 부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감동의 탄성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여인의 행동은 향유를 허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가 나서서 여인을 질책합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요 12:5)

5. 여인에게 화를 낸 진짜 이유
얼마나 정의로운 발상입니까? 그 값비싼 향유를 팔아 그 값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더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힘없고 배고픈 민초들의 고단함을 헤아릴 줄 아는 이 갸륵한 발상을 보십시오. 하지만 성경은 속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6)

6. 여인에게 화를 낸 궁색한 명분
제자들 중에서 유다가 맡았던 역할이 돈궤입니다. 여인이 향유를 팔아 삼백 데나리온의 재정을 예수님께 드리면 그것은 고스란히 유다의 돈궤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는 미명하에 재정이 집행될 때 그 중의 일부를 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특심을 가장하여 예수님께 드렸던 여인의 헌신과 사랑을 마치 스타벅스 가방을 얻기 위해 수백만 원의 커피를 쏟아버린 것처럼 취급했던 것입니다.

7. 과오를 포장하지 않는 노(老)사도의 양심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 때문이었습니다(빌 3:6). 바울은 나사렛 예수가 이단인 줄 알았고, 예수님이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핍박했던 과거를 적당히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포장하며 어쩔 수 없었노라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딤전 1:13). 죄를 죄라고 정확하게 고백하는 바울의 양심, 바울의 영성이 제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을진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울릴 수 없을진대 적당히 타협하면서,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려는 저의 추한 죄성에서 떠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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