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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숨은 이야기, 한국경제사 또 한 장 넘겨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이광희기자 송고시간 2020-10-25 13:06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근경(인터넷 캡처)
[아시아뉴스통신=이광희 기자]
한국 경제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그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1월 9일 경북 대구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버지 이병철의 고향인 경남 의령군 할머니 손에서 3살까지 자랐다.
이후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녔다. 형과 자취생활을 했으므로 자주 집에 오지는 못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회장과 이건희(인터넷 캡처)

이런 생활환경 탓에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전한다.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놀기를 더 즐겼다. 때문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게 전언이다. 
6.25전쟁 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사범학교 부속 국민학교를 다녔다. 이어 서울대 사범대부설 중. 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는 레슬링부로 활동하며 투지를 배웠다고 전한다. 이후 연세대 상학과에 입학한 다음 곧바로 자퇴하고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에 잔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그는 서울사대부고를 다닐 때 공부에 대해 그리 흥미를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슬링부에 몸담았으니 거친 연습을 반복하며 투지를 배웠다는 후문이다.
당시 친구들이 말이 없던 그에게 물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 보이는데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의 대답은 남달랐다. “사람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고 했단다.
일화로 이병철회장의 눈 밖에 나 쫓겨난 임원이 있었다. 이건희는 그의 인품을 알기에 아버지 이병철을 설득했다. 아버지는 어리지만 아들의 말을 듣고 다시 임원을 불렀다는 이야기다. 이병철 회장이 인사관리에 자신하던 분이었지만 고등학생인 아들의 눈썰미를 더 높이 평가했다는 뒷얘기였다.  
그는 자동차 마니아였다. 학창시절부터 그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4200달러의 중고차를 매입해서 3개월 타다 차를 분해하고 수리해서 700달러를 더 받고 되팔았다.
그는 학창시절 6대의 중고차를 매입해서 되팔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는 자동차 수집과 운전에 관심이 유난히 많았다. 한때 애버랜드 서킷을 전세내고 레이서에게 고속주행에 대한 교습을 받기도 했다. 1982년에는 승용차를 몰다 사고가 크게 나는 바람에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급 외제차 수집 마니아이기도 했다.
2015년 조사결과 26억 원짜리 부가티베이론을 포함해 126대의 자동차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가격만 477억 원에 달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한번은 매장에서 포르쉐 6대를 계약하고 돌아서자 판매원이 계약금을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를 몰라본 것이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은 즉석에서 현찰로 3억 원을 지불했다는 일화도 있다.
동시에 그는 영화광이었다. 일본에서 유학 할 때는 하루 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영화를 수차례 관람하며 주연과 조연, 프로듀서의 특징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이런 방법으로 다각적인 사고형태를 키운 이건희 회장은 동아방송에 들어가 능력을 발휘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게 동아방송을 빼앗기기 전까지 동아방송 드라마부분을 직접 챙겨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을 들었다.
이건희 회장은 애완견 애호가였다.(인터넷 캡처)

그는 애완견 애호가였다. 한남동 자택에서 직접 개를 길렀다. 진돗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그는 비싼 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잘 따르는 개를 특히 좋아했다고 전한다. 특히 “벤지”라는 포메리안은 16세로 죽자 지방에 있는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개를 체세포 복제하기도 했다.
그이 뚝심은 대단하다. 오늘의 삼성전자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삼성그룹내부 경영진의 반대에 개인 사재로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지속적인 설득으로 이병철 회장의 상성그룹 차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것이 현재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다.
“선친은 경영일선에 항상 나를 동반하셨고 적지 않은 일을 내게 직접 해보라고 주문하셨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현장에 부딪치며 스스로 익히도록 하셨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비즈니스는 이론이 아닌 실제이며 감보다는 체험적 교훈을 배웠다.”(이건희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취임식 사진(인터넷 캡처)

그는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지 않았다. 주로 기술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전자제품이나 각종 기계류를 분해했다. 어릴 시절 내성적인 성격과 탐구하는 문화가 몸에 배인 탓이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우면 전문가를 불러 해결했다.
삼성 부회장시절 사석에서 남긴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된다.
“주말에 우리 집으로 초청한 일본 기술자만 수백 명이 넘는다. 그들에게 한수씩 배웠다.” 
그의 한남동 서재에는 경영관련 서적보다 미래과학이나 전자, 우주, 항공, 자동차, 엔진공학 등 이공학 관련도서가 즐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전집류가 아니라 낱권의 책으로 직급 그가 골라 읽은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방문자들은 전한다.
그는 특히 웬만한 전자제품의 작은 부속품 기능차이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국산제품과 외국제품을 가져다 놓고 부품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품질 차이를 파악하고 계열사 기술담당을 불러 손에 쥐어주기도 할 정도였단다.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던 그의 성품이 그대로 방증되는 대목이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함으로 우리경제사에 또 한 장의 역사가 장을 넘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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