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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어려움]
(역대하 18:12-27)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어려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양상의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일까?
1) 설득 또는 강요
미가야 선지자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게에 설득인지 강요인지 모를 말을 했다.
(대하 18:12, 새번역)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말하였다. "이것 보십시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 내용은 '다른 예언자들과 똑같은 말을 하라'는 것이었다.
설득인 듯 회유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2) 권력자가 싫어하는 말을 해야 함
아합 왕은 전쟁에 나가길 원하고 있었고,
400명의 다른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아합 왕의 견해를 지지하는 예언을 했다.
그 상황에서 미가야는 왕의 의견과 다른 예언자들의 예언과
정반대의 예언을 해야 했다.
(대하 18:16, 새번역)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 떼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들에게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여라' 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아합의 패배를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니
그렇게 예언할 수밖에 없는 선지자의 운명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은
다수의 거짓 선지자의 입장에 설 것인지
아니면 대중이나 다수의 예언자들이나 권력자의 뜻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만 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3) 어쩔 수 없는 비판
미가야는 적어도 동종업계 종사자들인
400명의 예언자들의 비위는 거스르지 않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들이 틀렸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피해를 덜 받을 수 있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400명의 예언자들이 틀렸다고
미가야는 대놓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하 18:22,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 보십시오, 이미 주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여기에 있는 임금님의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주님께서는 임금님께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눈 앞에 400명의 예언자들이 서 있는데
그들 앞에서 그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이 들어갔다.'
라고 미가야가 말을 한 것이다.
이 말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합 왕이 전쟁에 나가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거짓말하는 영'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왕도 백성들도 거짓 선지자들 자신들도
반드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4) 뺨 맞음
결국 미가야는 뺨을 맞고 말았다.
(대하 18:23, 새번역) 그러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다가와서,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말하였다. "주님의 영이 언제 나를 떠나서, 어느 길로 너에게 건너가서 말씀하시더냐?"
뺨을 맞을 줄 미가야가 몰랐을까?
미가야의 성격이 독하고 괴팍해서 이런 과격하게 말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욕을 먹고 뺨을 맞고
박해를 당할 것을 충분히 알았지만,
자신의 성격에 반대되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기에
가감없이 전할 수밖에 없었던 미가야다.
2.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왕에게 미움을 받고
동종업계 종사자에게 뺨을 맞고
회유와 협박을 받으면서까지
미가야는 왜 이렇게 했을까?
조금만 말을 돌려서 400명과 비슷하게 말했더라면
그런 어려움들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그렇게 세게 말해서 어려움을 자초한 것일까?
자신의 뺨을 때린 예언자에게 한 미가야의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대하 18:24, 새번역)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네가 골방으로 들어가 숨는 바로 그 날에, 너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대답은 '골방'에 있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신만의 '골방'을 늘 지켰다.
400명의 예언자들과 왕과 권력자들과
힘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힘을 키우는 대신,
미가야는 오직 하나님을 대면하는 '골방'을
떠나지 않고 지켰던 것이다.
미가야를 때린 예언자는 왕의 앞에 있는 이 시간이 지나고
'골방'에 들어가 숨는 그 때에
자신이 거짓 영에 사로잡혔음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이 거짓 선지자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골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치열한 매일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결코 미가야처럼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전할 수도, 외칠 수도 없을 것이다.
자신만의 골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가지는 사람만이
선명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것이고
자신에게 다가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할 수 있을 것이다.
3.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설교자로서의 세월이 길어질수록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묵상글은 내가 묵상해서 은혜받은 내용을
단순하게 나누는 글일 뿐인데,
글을 읽고 처음에는 은혜를 받다가
나중에는 자신들의 관점으로 내 글의 내용을
바꾸어달라고 요청 또는 강요하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물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조언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무례하게 가르치거나 공격하면서 말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나누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느낀다.
한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를 훌륭한 분이라고 칭송하는 목사에게 "그 목사 타락한 목사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습합니다."
라고 말했더니, "에이. 그 목사님이 그러실 분이 절대 아닙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Y대형교회 목사는 얼마 후에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했다.
목사조차도 그토록 분별력이 없으니,
그런 타락한 대형교회 목사를 존경하고
자신도 그런 교회를 세울 것을 꿈꾸면서도
올바른 목회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니,
일반 성도들은 말해 무엇할까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묵상만 잘 하면 되지
왜 다른 목사를 비판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말씀을 묵상한 내용 중에 거짓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답하지만
거친 말과 '당신만 잘났냐?'는 조롱의 말만 답변으로 돌아온다.
나는 MBTI성경유형상으로 '평화주의자'라고 정의될 정도로
싸움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더 이상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묵상글을 공개하지 않을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원하는 사람들만 묵상글을 읽게 해야겠다 싶어서
sns에 묵상글 공개를 줄이고
회원제로 글을 보내드리려고 시도했다가
돈 밝히는 목사로 오해받는 상황을 만나기도 했다.
비슷한 이유로 설교도 유튜브에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실시간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외부와 외국에서까지 우리교회 예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적지만 생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튜브에 설교가 올라가게 되었다.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상황,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되는 것을 보며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살아나고 회복되고 바른 길로 걸어가는 것이 내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다.
그리고 나눔을 하지 않으면
묵상을 계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sns에 나눌 뿐이다.
그럼에도 생기는 파장이나 불편이라면
이제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받아들인다.
이런 불편과 아픔들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말씀의빛교회는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모임이 되어가고 있고,
온라인 묵상 나눔 모임도
묵상을 제법 깊이 나누는 아름다움 모임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분의 글에 아픔의 내용이 있을 때
내가 다는 댓글보다
구성원 중 누군가가 단 댓글이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줄 때가 많다.
이런 말씀 공동체가 이루어져 가고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말씀을 중심으로 생명을 나누며
내면의 회복을 서로 누려가는 공동체가 세워지고 있으니,
묵상글을 통해 묵상 나눔을 시도해온 10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감격스럽다.
실수와 허물이 많은 내가 한 부족한 묵상을 통해서
말씀의 사람들이 세워져간다는 것이 놀랍다.
나 같이 연약한 사람들 통해서도
말씀의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셨다면,
나보다 훌륭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아름다운 일들을 하실 것을 믿으며,
오직 말씀의 사람이 되어가고
말씀의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세워가는 것에
나의 남은 삶을 걸고 살아가려 다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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