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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 '나더러 어디 가는지 묻는자가 없고...'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4-17 05:00

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자가 없고..."
         - 요한복음16장5절에서 7절 묵상
            (D.A. 카슨의 요한복음 주석을 중심으로)

1. 요한복음은 너무도 귀한 책입니다. 우리 신동감리교회에서는 올해 사순절 기간에 21일간 요한복음을 묵상했습니다. 그 은혜가 참으로 놀랍고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은혜중에 일부, 요한복음 16장 5절에서 7절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트리니티 복음 신학교의 신약학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저명한 성서신학자 D.A. 카슨은 요한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어린아이도 걸어서 건널 수 있고 코끼리도 헤엄칠 수 잇는 연못과도 같다" 이 말의 의미는 요한복음이 어린아이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커다란 지적 능력을 혹사할만큼 깊고 심오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요한복음은 "태초에 있었던 말씀"(요 1:1)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또 다른 그의 문서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요일 1:1)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말씀에 대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태초부터 있었던 이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었는데 요한은 "이 생명이 곧 빛이라고 하면서 이 어둠이 세상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요 1:4~5)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는 또한 이 말씀에 대한 주석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은 요한복음의 초반부에서 이 말씀에 대한 요한의 증언을 소개합니다.(요 1:6~37) 그리고 이어서 '요한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의 증언을 소개함' 과 더불어 성령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요 1:38~21:25)

5. 제자들의 증언 첫번째는 안드레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시몬 형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증언 두번째는 "율법과 선지서에 기록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요 1:45)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장에서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고 하며 은연중에 예수의 그리리스도이심을 드러낸 '마리아의 간접적인 증언'이 나옵니다. 

6. 제자들의 증언은 계속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수가성 우물 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동네에 내려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8)고 했던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도 나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했던 베드로의 증언, '날 때부터 맹인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맹인의 증언'(요9:24~38),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마르다의 증언 "(요 11:27~12:8), "빌라도의 증언'(요 18:38~39),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자의 증언"(요 19:35),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요 21:1~25)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7. 공생애 사역을 통한 성령충만한 예수님의 증언(예수님의 자기 계시)은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증언과 섞여 혼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기 계시를 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여러가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자기 계시를 하였습니다.  그 표적 사역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였던 사역"(요 2: 1~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사건"(요 4:43~54), "베데스다 연못간의 병자를 고친 사건"(요 5:1~48),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요 6:1~45), "물 위를 걸어온 사건"(요 6:16~20),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친 사건"(요 9:1~12),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요 11:38~44) 그리고 "친히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여 자기를 드러내신 사건"(요 19:28~21:23) 등을 말합니다.

8.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도 친히 자기 자신을 계시하기도 하셨습니다.  "와서 보라!"(요 1:39),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 4:26),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이 의로우니라."(요 5:30),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48),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요 8:25), "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요 18:3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요 20:27)  등등 주님이 친히 자기 계시를 하신 말씀들은 요한복음에 차고도 넘쳐납니다.

9.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3년간의 공생애 사역 전부에 나타나 있는데 그 중에 최고의 하일라이트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증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죽은지 나흘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해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지기도 합니다.  나사로의 이야기 전에 나오는 1장29절부터 10장42절까지는 약 3년간의 사역을 다루고 있고, 12장 1절부터 21장23절까지는 주님이 죽기 전의 6일간의 과정과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 요한복음 16장 5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중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사역인 십자가 사역을 다루기 위한 본문, 즉 요한복음 12장 1절 이후의 사건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만에 살려내시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을 피해 제자들과 함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 동네에서 은둔하시던 주님은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엿새전에 나사로와 그의 여동생이 살고 있는 기적의 동네에도 다시 나타났습니다.

11.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일을 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으며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씻으며 주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거룩한 예식을 치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죽은 지 나흘만에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해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를 합니다.

12. 베다니에서 잔치가 끝나고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갔으며 예루살렘의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나와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했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요 12:19)라고 하며 크게 낙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13. 예수님은 명절에 예배하러 온 헬라인들 몇이 주님과의 면담을 요청했을 때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라고 하며 밀알의 비유와 함께 십자가 복음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도'를 친히 행해 보여주셨고, 제자들 중에 하나가 자기를 팔 것이라고 예고하며 가룟 유다의 배신 계획을 드러내시기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 13:21)

14. 제자들은 아직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님은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죽음과 마지막 사명에 대해서 드러냅니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요 13:33) 그리고 마지막 유언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계명으로 제자들에게 줍니다.

15. 이제는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제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라고 말쓴하시는 주님에게 "주여, 내가 지금은 오찌 따라 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겠나이까?"라고 했고 주님은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16. 제자들은 이제 혼란을 넘어 서서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졌습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의 한계와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이 말쓴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그리고 죽음의 의미와 천국의 비밀을 살짝 드러내십니다. 

17.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4)  그리고 도마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고 주님은 그 유명하신 말씀 "내가 곧 길이여 진리오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했습니다.

18. 그러자 빌립도 말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그러자 주님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19.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참포도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핍박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16장을 시작하면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 16:1)

20. 오늘 내가 집중적으로 묵상한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이 나더라 어디로 가는 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 16:5~6)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친절하게 말씀을 풀어주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싸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묻지 않느냐?"(요 16:5)

21. 한 편으로 주님의 이 질문은 매우 생뚱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가 시작된 요한복음을 13장부터 다시 살펴보면 제자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13장 36절에서는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14장 5절에서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했습니다.

22. 그런데 주님은 다시 또 그들을 책망하며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 16:5~6)  다시 현재시제를 크게 강조함으로써 문제 제기를 하는 주님의 이 질문 "너희 중에 나더러 지금 묻는 자가 없도다."라는 말씀은 사실 그들의 두려움에 대한 책망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싸여 있으면서도 그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주님의 책망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23.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십자가의 길, 사명의 길을 걸어가시는 주님과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여전히 자아몰입적인 상태에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그렇게 친절히 자신의 "떠남"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들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느낌, 눈 앞에 닥친 위기와 불운에 대한 의식 등, 자기 문제에 몹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4. 이렇게 자기 자신에 몰입되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떠남"에 대해서 그리고 "다시 오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또한 오늘날 이 시대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기적인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채 이기적인 자기에 매몰되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자 주님을 사랑하거나 신뢰하는 일에도 실패하고 결국은 그렇게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혀 끝없이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25. 이 점을 주목하며 카슨(D.A. 카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망에 대해서 오래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 시대의 현실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카슨의 다음 말들에 귀울 기울여 봅시다.

- D.A. 카슨의 메세지 -

"기독교 내의 어떤 교단들은 성도의 체험, 성도의 특권, 성도의 축복, 성도의 신앙, 성도의 사랑, 성도의 행동 등을 강조합니다. 복음 전도가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전도시에 상대방과 쉽게 접촉할 수 잇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만 수행될 뿐입니다." 

"전도시 어떤 호소 내용들은, 사람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믿거나 적절히 자기를 버리기만 한다면 그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호소를 받아들여 회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뼈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소 내용들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

"또 어떤 설교 내용을 보면, 개심자가 통회, 기쁨, 슬픔, 승리, 사랑 등을 체험한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이 종종 불균형을 이루기는 하지만 이중 어느 것도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교들을 살펴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의무를 다해 어음을 지불한 자, 즉 대속자로서 묘사한 것을 제외하고,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를 향한 촛점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물론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개성을 변화시켜 또 개인적 체험의 범주 안에서 풍부하게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더 관심을 가지 자가 얼마나 될까요?"

"기독교계의 어떤 교파들은 희생의 중요성과 봉사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할 것을 강조하며, 연단된 자아부정을 근본적, 핵심적, 지배적 주요 논제로 보지 않는 모든 기독교 신앙고백은 결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이 자아부정을 요구하고, 성도들에게 희생적 봉사와 소외 계층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촉구한다는 개인적 희생이 개인적 구주를 보좌에서 물러나게 할 정도로, 자아 연단의 치장에만 정신이 팔리고 절박한 정의에만 분주히 매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어떤 교파들은, 내부로부터 기독교를 망칠 위험이 있는 교리적 타락에 대해, 벌벌 떨 정도로 마음을 씁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고관념(high view)으로부터의 배반 행위를, 마음을 마비시킬 정도의 엄청난 해악으로 보며, 혼합주의(syncretism)가 복음주의의 나약한 측면을 내밀히 뚫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수호자로서 그들은, 이단이라 하면 초기에 냄새를 맡고 재빨리 습격하여 폭로시켜 버립니다."

"물론 진정한 기독교는 과연 성서(the Book)의 종교이며, 일정한 비타협적 교리들과 배타적 주장들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리들을 부인하는 사람은 기독교 진영 밖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정통파가 되어 진리의 바른 체계에 대해서는 커다란 관심을 가지는 반면, 완전히 사모의 념에 잠겨 예수님 자체를 따르는 일에는 언제나 최소한도의 관심 밖에는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6. 오, 놀랍도다! 생명의 말씀이여~ 말씀하시는 말씀이 날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니 우리는 그 말씀 안에서 말씀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우리는 그 말씀 안에서 그 말씀과 더불어 자유함을 누리며, 우리들은 그 말씀 안에서 그 말씀과 함께 더 크고 넓은 세상으로 날마다 달려가노라!  오, 나의 생명의 말씀이여~ 오늘도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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