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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야 뱅뱅 돌아진 섬에 - 문봉순] 혼 들여 주고 넋 들여 주는 고씨 삼승할망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7-02-01 23:37

함덕리 고씨할망 일뤠당 ... 여전히 삼승할망의 보호와 위로가 필요한 시대
함덕리 고씨 삼승할망당 현장. (사진제공=제주섬문화연구소)


  어릴 적 사촌동생의 목 뒤에는 새파란 점 하나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저 자리에 있던 것인지, 나처럼 뾰족한 연필심에 찔려서 저렇게 된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것이 ‘자라 따기’의 흉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체 내립니다”, “자라 땁니다”라고 적힌 보살집 간판에 적힌 글자. 엄마가 말했던 자라 따기가 이런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보살집 간판에는 자라 따기 대신 ‘넋들임’이라 적힌 곳이 많았다. 넋을 들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왠지 사촌동생의 파란점이 떠올랐다.

  모든 어머니에게 아이는 특별한 존재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내야 할 우주 같은 대상.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 아이들의 나라와 그들을 지키는 신들을 만들어 낸다.

제주도 신화 속에는 ‘불도땅’이라는 공간이 등장한다. 이곳은 아이가 태어나 15살이 될 때까지 삼승할망의 보살핌을 받는 곳이다. 또 15살 이전에 죽은 아이들은 저승이 아닌 서천꽃밭으로 가서 꽃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을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삼승할망에 대한 이야기는 제주도에만 특별히 전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삼승할망 신화에는 생불할망과 저승할망(구삼승할망)이 등장한다. 두 여신은 꽃 가꾸기 시합을 하는데, 여기에서 이긴 생불할망은 이승을 차지해 인간을 잉태시켜 낳게 해주고 시합에 진 저승할망은 저승에서 죽은 아이의 영혼을 차지하게 된다.

  어머니의 눈에 아이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온 마음을 쏟고도 못미더워 수호신인 삼승할망의 보호 아래 둔다. 어려서부터 특별히 몸이 약한 경우에 삼승할망에게 아이를 팔았다가 성인으로 무사히 자라고 나면 본래의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주는 굿을 한다.

어머니의 깊은 애정은 살아 있는 아이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일찍 죽은 아이는 저승할망이라는 존재를 설정하여 죽어서도 혼자가 아니도록 해준다.

  삼승할망은 신화에만 등장하는 존재가 아니다. 제주도의 마을에는 굿을 하는 심방이 아닌 삼승할망이 따로 있어서 각기 자신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심방을 찾아가 굿을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 간단한 비념이나 넋들임 등의 의례는 삼승할망의 몫이었다.

‘넋들임’은 몸에서 빠져 나간 넋(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을 말한다. 즉 질병의 원인을 영혼의 이탈로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와 영혼을 일치시키는 의례가 바로 넋들임인 것이다. 이는 어른들에게도 행해진다. 전통적인 장례 풍속의 초혼에서처럼 환자의 옷을 손에 들고 머리 위 숨골에 숨을 불어넣는데, 이때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넋들라”고 말한다.

  조천읍 함덕리에는 삼승할망으로 유명했던 고씨할머니의 무덤이 있다. 고씨 할머니는 생전에 어떤 병이든 낫게 해주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죽은 뒤에도 그 힘에 의지하고자 사람들이 무덤 앞에서 넋을 드리면서 신당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넋들임에 효험이 있어서 현재까지 신앙이 지속되고 있다.

함덕 마을에서 무업은 고씨할머니 집안의 여성들에게만 세습되며 현재 고씨 할머니의 외손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일인 매월 음력 7일, 17일, 27일이다. 불공할망당, 넋산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함덕리에 사는 사람은 물론 부산, 서울, 일본 등 국내외에도 영험이 널리 알려져 단골이 많다. 몸이 아프거나 우환이 닥친 때 여기에서 기도를 하면 하는 일이 잘 되고 심신이 편안하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은 치료용으로 옷을 보내는데 기도 후에 옷을 돌려보내어 그 옷을 입으면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넋들임과 삼승할망의 존재는 미신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덕리 고씨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사람들은 그곳에 찾아가 넋들임을 하고 있고, 서귀포 시내에 살고 있다는 보살은 넋들임으로 너무 유명해져서 예전에는 한 시간씩 해주던 넋들임을 10분밖에 못 해 줄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과학은 우리의 몸을 노동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영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통사고로 놀란 사람, 가족 간에 재산 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 친구문제로 상처 받은 아이들. 우리는 여전히 삼승할망의 보호와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으로 근무, 제주신화를 연구하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 문봉순 /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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