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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 일터가 아닌 전쟁터…마음도 몸도 온통 상처뿐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유경석기자 송고시간 2019-12-19 18:27

반려견 물리고 병원비 부담까지…지국장 "일 할 수 있나?"
"사고 때도 나는 없다"…"필터, 고객 챙기는 모습에 눈물 펑펑"
고객 시간 맞추려 과속운전…코디 못지 않은 설치·수리 현장기사
방문 서비스노동자의 감정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18일 오전 웅진코웨이 코디가 고객 방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제공=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방문판매서비스지부)

정수기나 비데, 침대 등 가정을 직접 방문해 관리를 대행하는 대여제품 방문 점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있다. 개별 가구를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고객의 욕설이나 폭행, 괴롭힘 등에 시달리고 있다. 주로 1인 근무가 대부분이어서 성희롱과 성추행도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객 이탈로 인한 수수료 수입 감소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제도의 보호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노동환경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시아뉴스통신은 총 5회에 걸쳐 대여제품 방문 점검원의 현실과 대안 등을 다룬다.〔편집자 註〕
 
① 돈 버는 회사, 한숨짓는 노동자…생활가전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실태
② 사장을 감독하는 지점장…코웨이·청호나이스·SK매직 특수고용노동자
③ 일터가 아닌 전쟁터…마음도 몸도 온통 상처뿐
④ 노골적인 성희롱․성추행…웃으며 '고객님~' 하는 사연
⑤ '근로자 인정' 필요한 노동자…노동관계법령 개정 절실
 
웅진코웨이 코디들은 매일 세 방면에서 전쟁을 치른다. 고객, 사무실, 코디 자신. 고객 방문을 마친 코디에게 일터는 전쟁터다. 고객의 불만은 끊이지 않고,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 역시 영업 압박으로 느껴진다.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라는 자긍심은 꼭대기와 바닥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마냥 멈추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상처뿐인 코디들에게 회사는 더 힘들게 하는 존재다.
 
반려견 물리고 병원비 부담까지…지국장은 “일 할 수 있나?”
 
“선배 코디가 고객을 방문했을 때 개 두 마리가 어깨와 다리를 동시에 무는 사고를 당했어요. 고객은 ‘우리 개는 무는 애들이 아닌데, 코디가 위해를 가하려고 하니까 물었던 것’이라는 식이었대요. 고객에게 치료비를 받지 못했어요. 고객이니까요. 선배가 병원비를 전부 부담했죠. 회사요? 얼른 병원에 가 보라는 말말 할 뿐 별다른 안전조치나 보호해 줄 방법은 내놓지 않았죠.”
 
고수진 웅진코웨이 코디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지국장은 다친 코디에게 ‘괜찬아요? 일을 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고 다종다양한 방문서비스 현장의 위험상황을 담담하게 소개하며 고개를 떨궜다.
 
방문판매서비스노동자들의 일터가 전쟁터인 상황은 다양한 사례가 방증한다.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웅진코웨이 코디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하면서 실태가 드러났지만 청호나이스, SK매직서비스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 측 전언이다.
 
웅진코웨이 코디가 소개한 사례는 귀를 의심케 한다. 고객 방문 때부터 위험상황은 시작된다. 코디는 스스로 이동수단을 준비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승용차 모두 본인 책임이다. 대부분 승용차를 이용한다. 방문서비스에 필요한 장비 무게만 15㎏에 달하는 탓이다.
 
하지만 주택가나 도로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언덕길을 오르내릴 때면 식은땀이 흐른다. 비나 눈이 내릴 때는 더 위험하다. 도로에서 차량을 만나는 경우 충돌을 피하는 과정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타박상은 물론 골절상의 위험도 있다. 여기에 장비와 소모품 등 피해 모두 코디 부담이어서 신체적·물질적·정신적 손해가 적지 않다.
 
"사고 때도 나는 없다"…“필터, 고객 챙기는 모습에 눈물 펑펑”
 
웅진코웨이 10년 차인 고수진 코디는 자전거를 이용하던 신입코디시절 생수배달차량을 피하는 과정에서 자전거 밑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고수진 코디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고, 필터는 길바닥을 뒹굴었다. 자전거에 깔린 탓에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필터 분실을 우려해 몸보다 앞서 필터를 챙겨야 했다.
 
“기다리고 있는 고객에게 먼저 전화를 했어요. 오늘 방문이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제 모습이 너무 처량한 거예요. 전화를 끊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어요.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내 자신보다 필터를 챙기고 고객을 챙기는 상황이 너무 서럽더라고요.”
 
이동 중 사고 외에도 점검과정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비데 점검 중 스팀기가 펑 하니 터지면서 손목에 화상을 입는 경우, 반려견에 물리는 경우, 도둑으로 내몰리는 경우 등 다양하다.
 
이는 비단 코디만의 문제는 아니다. 청호나이스 등 설치·수리 현장기사 역시 하루에도 수차례 아찔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청호나이스 하청업체인 나이스 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는 최영배 기사에 따르면 천장작업이나 특수 설치 등 위험한 작업을 혼자서 처리한다. 70㎏이 넘는 정수기도 혼자서 운반한다. 하루 20건 내외인 설치·수리업무를 처리하려면 과속을 피할 수 없다. 밥 먹을 시간을 줄여가며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고객 시간 맞추려 과속운전…코디 못지 않은 설치·수리 현장기사
 
하지만 불만 건이 접수될 경우 평가점수에 반영돼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감정노동은 물론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보상은 기본급 190만 원과 통신비·식대 5만 원씩 총 200만 원이 전부다. 유류비 등 차량유지비만 월 90만 원 가량 들어간다. 회사 측은 처리 건당 500원의 유류비를 지원할 뿐이다.
 
웅진코웨이 이윤선 코디는 “억울하지만 아무런 얘기를 할 수 없는 코디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을 수밖에 없다”며 “웅진코웨이가 코디들을 사랑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으니 고객들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노동환경 개선을 희망했다.
 
이와 관련 웅진코웨이 등 방문판매 전문업체들은 유사 사례를 막는 한편 사회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웅진코웨이 관계자는 "방문서비스관리자들이 존중 받고 배려 받을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사회인식개선에 앞장서겠다"고 했고,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서비스 전문가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근로자와 고객 모두가 즐거운 현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SK매직 관계자는 "서비스 인력의 처우 개선을 위해 상해 보험 등에 무상 가입, 지원하고 있어 사고 등 발생시 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의 인식도 개선돼야 서비스 인력들의 고충을 근본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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