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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회 칼럼] 일상의 여유가 주는 삶의 위안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이승주기자 송고시간 2020-04-16 21:25

충남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김국회 한문학박사./아시아뉴스통신 DB

[아시아뉴스통신=이승주 기자]  시(詩)는 작가의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랫말이다. 비록 한시(漢詩)는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느라 압운(押韻)도 고민하고 대우(對偶)도 고민하면서 구절 표현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속에 작가의 진솔한 심정(心情)과 지향(志向), 감성(感性)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 된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사회적 관계 소멸을 걱정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와 반대로 격리로 주어진 여유와 자유로움을 즐기라는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가 화두로 떠오른다.
 
얼굴로 만나는 기회가 적어지니 친구에게 잊혀질까 두렵고, 외부 활동이 줄어든 상태에서 특별히 달라질 것 없는 무료한 일상은 SNS조차 끊게 한다. 이런 시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길은 무엇일까.
 
여기 조선시대 두 편의 한시(漢詩)를 통해, 일상의 무료함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던 두 사람의 마음을 비교 감상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이겨내는 슬기를 찾아보면 어떨까.
 
巷僻忘城市(항벽망성시) 거리가 후미져 시장도 서지 않고
官閒謝卯申(관한사묘신) 관청도 한가해 일거리가 없네.
門無褦襶客(문무내대객) 문에는 패랭이 쓴 손님조차 없어
樽有聖賢人(준유성현인) 술동이 속 청주 탁주가 남아도네.
 
이 시는 얼핏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근무하는 관원으로서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시어에 담긴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인이 그 한적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듯하다.
 
우선 '벽(僻)'자는 '후미지다, 궁벽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마을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속내를 드러낸다. '망(忘)'자는 '잊다, 까먹다'는 뜻이니, 요즈음 말로 보면 궁벽진 시골이라 제대로 된 마트조차 없고 사는 사람도 적어 언제 번화한 도시에서 살았는지 기억조차 안난다는 말이 된다. 그 여유를 즐기면 좋을 텐데 떠나고 싶은 조바심이 보인다.
 
그러니 한유한 관청에서 기나긴 근무시간에 뭘 할지가 고민이다. 그저 시간을 때우며 이제나 저제나 혹시나 찾아올 술친구를 기다려보는데, 찾아오는 손님조차 없다. 이 구절에서도 예전에 살았던 도시의 번화함, 인구도 많고 이것저것 처리할 일거리가 많은 도시의 관청 자리에 대한 열망이 숨어 있다.

청주, 탁주 종류별로 대접할 술은 남아도는데, 딱히 찾아오는 이가 없으니 전반적으로 무료함을 어찌 달랠지 모르고 두리번 거리고 있는 시인의 속내와 이런 곳에 파묻혀 있는 신세에 대한 서운한 빛이 느껴진다.
 
지은이는 김수항(金壽恒)이다. 주어진 여유를 즐기며 자성의 시간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스스로 예송 논쟁에 깊이 관여하여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서인(西人)의 일원으로 정권을 잡고,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남인(南人)을 척살하는데 깊이 연루되었다.
 
일생의 벼슬살이에서도 고관대작을 두루 넘나들며 한가로울 새 없이 정파에 휩쓸리다가 결국 스스로도 유배(流配), 사사(賜死)되었으니, 그 마음 씀과 인생의 끝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김수항보다 대략 100년을 앞선 시대에 살았던 기대승(奇大升)도 벼슬살이를 오래 했지만, 다음 시에 담긴 시심(詩心)을 통해 지향이 다른 여유를 볼 수 있다.
 
壯夫逐卯申(장부축묘신) 장부가 공직에 쫓겨
終世隨名韁(종세수명강) 평생 공명을 좇을 손가
脫然物外遊(탈연물외유) 초탈하여 물외에 노닐면서
歷盡蒼山岡(역진창산강) 푸른 산 등성이를 다 구경하리
揮手謝世人(휘수사세인) 손 흔들어 세상사람 이별하고
矯首追洪荒(교수추홍황) 머리 들어 우주를 생각하네
冥冥不可解(명명불가해) 아득한 이치 알 수 없으니
汩汩徒自傷(골골도자상) 골몰해야 절로 상심할 뿐이지
 
1,2구에서 장부로 태어나 벼슬살이와 공명에 쫓겨 사는 삶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3,4구에서도 물외(物外), 창산(蒼山)을 떠돌며 노닐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니, 시인의 지향점이 저 청산(靑山)과 세상 밖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5,6구에서는 더 적극적이다. 번잡한 세상과 잠시 떨어지려 멀리서 손 흔든다. 적극적 격리로 단절의 상심을 이겨낸다. 그러면서 넓게 툭 트인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한다. 무료함을 메꾸기 위함이 아니라 그 사이 일상에 쫓겨 잊고 살았던 근원에 대한 고민(苦悶)과 성찰(省察)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 두 발을 디딘 자신의 한계(限界)를 받아들인다. 아득한 문제에 너무 지나치게 골몰(汨沒)하지 않기에 그로 인해 상심(傷心)에 이르지 않는다. 실제 고봉 기대승은 젊은 시절, 퇴계 이황과 7년간 수십 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대해 치밀하게 논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 퇴계와의 거듭된 논쟁을 통해서 자신의 논리를 끝까지 펼치기도 했지만, 훗날 퇴계 이황의 학문과 논리를 인정하고 퇴계를 스승으로 삼았다. 관직생활도 무난하게 지나고 노년에 병으로 귀향하여 돌아갔으니 그런대로 천수(天壽)를 누렸다.
 
물론 이 시 한 수로 두 작가의 온 인생을 평가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시참(詩讖)이나 예언(豫言)은 더더욱 아니다. 이 시 한 수만 놓고 볼 때 그런 면도 있다는 하나의 소견(小見)일 뿐이다.

두 시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는 시인의 시각과 감성을 확장하여 감상함으로써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또다른 의미를 찾고 싶을 뿐이다. 시 해석(解釋)이나 그 해석에 대한 해석(解釋) 또한 글을 읽는 이의 고유한 몫이다.
 
*김수항(金壽恒): 1629년∼1689년.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신)안동(安東)으로 좌의정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며 인목대비는 그의 이모할머니였고 영창대군과 정명공주는 이종숙과 외종이모였다. 노론 4대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의 아버지이며,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의 종조부이다. 풍고 김조순의 5대조이며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의 6대조이기도 하다. 자(字)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기대승(奇大升): 1527년~1572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전라도 광주목 광산면 소고룡리 출신으로, 본관은 행주이며,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峰)·존재(存齋),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및 이기(理氣) 논쟁을 통해 조선 성리학 수준의 제고에 기여했다. 광주광역시 월봉서원(月峰書院)에 제향되었다.
 
◈ 김국회 프로필
-한문교육학박사
-유림학당(hanja4u.cafe24.com) 주인
-충남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lsj9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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