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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4-21 10:51

하나교회 정영구 담임목사.(사진제공=하나교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브라함의 믿음과는 다른, 행위의 악순환이 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이다.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26)

율법의 행위는 저주로 시작한다. 최초의 율법이 창세기 2장 16에서 17절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면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생명의 하나님이 죽음을 말씀 하신다. 죽음은 저주이고 심판이다. 율법은 하라와 하지 말라는 명령안에서 지키면 살고 지키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세익스피어 햄릿 작품의 대사이다. 햄릿은 아버지를 살해한 숙부와 그와 결혼한 어머니를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존재하느냐 아니면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다. 죄악, 부정, 부패, 욕망, 욕심 앞에서 살고 있는, 존재하고 있는 나에게 묻는다.

아담도 마찬가지이다.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는 죽음이다. 이 죽음의 나무의 열매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죽음의 악순환이 율법의 행위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을 아는 나무의 율법을 주신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613가지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라는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킬 수 없는 법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 주신 사랑,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만 사는 존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율법의 행위로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저주 아래 있다. ‘저주 아래’라는 말은 저주의 작용과 구조라는 체제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저주의 악순환이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9. 나무에 달린 자
갈라디아서 3:10~14, 호세아 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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