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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회 칼럼] 절의(節義)냐 시의(時義)냐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이승주기자 송고시간 2020-05-07 10:00

충남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김국회 한문학박사./아시아뉴스통신 DB

[아시아뉴스통신=이승주 기자] 
천 년 왕조 고려(高麗)가 망하고 새 나라 조선(朝鮮)이 서는 왕조교체기의 기로(岐路)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最善)이며, 중도(中道)일까. 어떤 선택이든 자기 목숨을 걸고 할 일이요, 누구도 밝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순간이다. 친형제나 절친 간에도 명분(名分)에 따라 선택이 매우 다르다.
 
포은 정몽주(鄭夢周)와 삼봉 정도전(鄭道傳)이 그랬고, 공주 금강변 월송동에 있는 명탄서원에 배향된 공산이씨 이명성(李明成), 명덕(李明德) 형제분도 하나는 고려를 위한 두문(杜門) 충절(忠節)을 택하고, 하나는 새나라를 위해 신명(神命)을 다바쳤으니 누가 천 년 역사에서 중도(中道)를 얻었을까.
 
왕조교체기를 살았던 오은(梧隱) 김사렴(金士廉:?~?)과 낙포(洛圃) 김사형(金士衡:1341년~1407년)의 형제분도 기로(岐路)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형님인 김사렴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고 공민왕 대에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 신돈(辛旽)의 국정 농단을 탄핵하여 직간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태조가 등용하고자 애썼지만, 청주 도산(陶山)으로 운둔했다.
 
그는 평생 절의를 지켰을 뿐 아니라 유언으로 ‘망국의 죄인이니 봉분을 올리지도 말고 비석을 세우지도 말며, 후손도 벼슬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숙종 대에 발견된 그의 지석으로 인해 다시 봉분을 올리고 송천서원(宋泉書院)에 배향하였다. 그의 충절 사례는 과거시험 주제로 출제될 정도였고, 우암 송시열은 ‘해와 달같이 빛나는 충정, 산악과 같이 높은 절의(忠昞日月 節高山岳)’라고 그를 칭찬했다.
 
아우 김사형은 태조 이성계에게 충성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김사형은 생각이 깊고 침착하며, 중후하여 말이 적었다. 속을 숨기지 않고 모나게 행동하지 않았다. 재산을 도모하지 않고 성색을 밝히지 않았다. 관직 평생에 한 번도 탄핵을 당하지 않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이처럼 잘한 이가 드물다’라고 평했다.
 
역사 속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수시로 갈림길을 만난다. 소소한 갈림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제 자리에서 만나니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떤 선택은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크게 달라진다. 단지 자기 한 사람의 삶 뿐 아니라 배우자, 자녀와 후손, 시대와 역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과연 위기 상황에서 지금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절의(節義)인가 시의(時義)인가”
 
공주 명탄서원에서 읊은 한시 한 수로 같이 고민해 보자.
 
鳴灘書院兄弟公(명탄서원형제공) 명탄서원의 형제분이여
一忠杜門或國功(일충두문혹국공) 하나는 두문충신, 혹은 개국공신되니
岐路名分天壤差(기로명분천양차) 갈림길에서 명분이 하늘과 땅 차이라
千年春秋誰得中(천년춘추수득중) 천 년 역사에서 누가 중도를 얻었는가.
 
◈ 김국회 프로필
-한문교육학박사
-유림학당(hanja4u.cafe24.com) 주인
-충남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lsj9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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