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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 흠이 없으려는 노력과 회개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5-19 13:32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시편 18:16-29

1. 흠이 없으려는 노력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내가 의롭게 산다고 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상을 내려 주시고, 나의 손이 깨끗하다고 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상해 주셨다. (시18:20)/진실로 나는,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무슨 악한 일을 하여서 나의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도 아니하였다. (시18:21)/주님의 모든 법규를 내 앞에 두고 지켰으며, 주님의 모든 법령을 내가 버리지 아니하였다. (시18:22)/그 앞에서 나는 흠 없이 살면서 죄짓는 일이 없도록 나 스스로를 지켰다. (시18:23)/

다윗이 이토록 자신있게 말하는 걸로 봐서는
아직 간음과 살인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때
이 시를 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울에게 억울하게 쫓겨다니면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가려고,
그리고 율법과 계명을 지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을 상황에서 구원을 받은 적이 많았다.

주 앞에 흠이 없는 사람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윗은 삶으로 체험한 것이다.

2. 흠을 가지다.

흠 없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다윗이지만
왕이 되고 마음이 느슨해졌고
결국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그때 다윗은 어찌되었을까?
다윗 자신이 쓴 시의 내용대로 되었다.

깨끗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간교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절묘하심을 보이십니다. (시18:26)/주님께서는 연약한 백성은 구하여 주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십니다. (시18:27)/

다윗이 어느새 간교해졌고,
어느새 교만해져 버렸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절묘하심과
낮추심을 겪어야 했다. 

아들의 배신으로 고통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절묘하게 다윗을 심판하셨고,
다윗이 교만해서 인구조사를 했을 때는,
이스라엘에 염병을 내려 심판하심으로
다윗을 낮추셨다.

3. 모순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흠이 없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시를 쓴 다윗인데,
왕이 되고 힘과 권력과 부를 얻자
금세 죄를 범한 것이니,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후로 다윗은 다시 동일한 시를 쓸 수 있있을까?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흠 없는 자만 돌보시고 승리케 하신다면
다윗 자신은 이제 희망이 없는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긴 하셨으나
다시 다윗을 살리셨기 때문이다.

다윗의 시편이 내용에 균열이 생긴다.
다윗은 아마 범죄한 이후에는 
그의 신앙관과 시의 내용이 바뀌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엄청난 모순을 발견했기에
하나님의 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오직 주의 긍휼 때문에 
자신이 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4. 흠이 없으려는 노력은 필요할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으려는 노력은
아무런 필요가 없지 않을까?
무슨 죄를 지어도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니
결국은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닐까?
죄를 얼마든지 지어도 좋지 않을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고의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것과
흠 없으려 노력했는데 죄를 짓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흠 없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했음에도
조건이 갖추어지면 죄를 짓는 자신을 보고
다윗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신은 결코 의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고의로 그리고 상습적으로 되를 짓는다면
죄에 중독되어 자신이 죄인임을
심각하게 깨닫거나 느끼지 못하게 되고
죄에 둔감한 존재가 되고 만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으로는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무서운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주님 앞에 흠이 없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신앙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노력해서 거룩해지거나 흠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노력함에도 결코 거룩해지지 않는,
오히려 기회만 되면 죄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치절하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흠이 없으려고 죽도록 노력해보아야
결코 거룩해지지 않는 자신을 
처절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야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5. 나는?

젊은 날 속했던 공동체는 
거룩과 성결을 강조했다.
그 공동체에 속해서 생활하면서
노력하면 거룩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늘 좌절하고 절망했던 터라
그 공동체에 들어가면서 
거룩할 수 있으리라는 큰 희망을 가졌다.

매일 밤 집에서 1시간씩 기도하고
월요일에 모여서 3시간씩 함께 예배와 기도를 하고
각종 은사들을 체험하고 기도를 받기도 했다.
구약의 각종 율례들도 가능하면 열심히 지키면서
나는 거룩해져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결코 내가 거룩해지고 있지 않음을 보았고,
게다가 리더인 사람들조차 실망스러운 모습을 
계속 나타냄을 보면서 다시 좌절에 빠졌다.

그 공동체를 나와서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바쁘고 절박한 일상 속에서
거룩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점점 더 세속에 물들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깊이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그대로 살다가는 불신자로 죽을 것 같아서
살고 싶어서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기 시작했다.

목사가 된 지금도 말씀 묵상에 삶을 거는 이유는
사역을 위해서라거나,
세상을 복음화시키기 위해서라거나,
어떤 위대한 목표 같은 건 없다.

나는 지금도 그때와 동일하게 
'살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한다.
말씀을 통해 나의 죄를 날마다 깨닫고
주의 은혜만이 생명임을 확인한다.

이 시간을 포기하고도 
신자로 살아갈 자신이 나는 없다.
그저 살기 위해 묵상할 뿐이고,
묵상을 나누기 위해서 sns에 묵상글을 올릴 뿐인데,
어느새 말씀묵상이 사역이 되고,
연결해서 여러 사역들도 열려왔다.

이상하고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살기 위해서 묵상하는데,
살기 위해서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을 만난다.

나는 전혀 거룩하지 못해서,
말씀에 붙어 있음으로 주의 긍휼을 누려가고
그렇게 하루하루 생명을 유지할 뿐인데,
어느새 그 생명이 풍성해지고 있음을 본다.

이 은혜를 누려가길 포기하지 않길 소원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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