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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교회 정영구 담임목사.(사진제공=하나교회) |
민수기 14장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멸시, 믿음 없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구약에서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불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멸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멸시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원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하나님이 분노하셨다. 그들이 부르짖고 통곡하면서 가나안을 앞에 두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죽기보다는 애굽으로 돌아가서 다시 노예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지금이 너무나 억울하다.
멸시, 원망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현실부정이다. 현실이 다 불만이고 불평이다. 그래서 부정하고 싶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수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기뻐하시고 인도하여 들이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멸시한다.
멸시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짊어지고 담당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죄를 위해서 살 필요가 없다.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 죄의 노예가 아니다. 바로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애굽의 삶이라는 노예 생활이 나의 체질이 아니다. 그런데 안 믿는다. 죽어도 안 믿는다.
두 번째 멸시한다는 말은 망상한다는 뜻이다. 노예생활이 죽을 맛이다. 애굽에서 고된 노동과 착취와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살았던 역사가 400년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망상을 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었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 도다.’(출 16:3)
사실일까? 한번은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확인을 해보면 출애굽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전체로 만들어 버리고 그것을 옛 추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것이 멸시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과거의 상처이든 영광이든 그것에 매몰되어서 아프고 슬프고 괴로워서 과거의 영광을 망상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멸시는 다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런데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돌아가기 위해서 지휘관을 세운다. 이것이 누구인가? 내 마음의 주인인 ‘나’이다. 나라는 자신의 자아를 여전히 주인 삼아서 살려고 작정을 한다. 실제로 돌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광야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13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
갈라디아서 4:8~11, 민수기 14:1~10
God bless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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