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6일 금요일
뉴스홈 종교
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성령강림절을 기념하라!'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5-31 08:45

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1. 이렇게 성령님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성령님을 내 삶의 순간마다 존중해드리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나 성령님을 자주 생각하고 말을 걸며 성령님 임재의식으로 살게 될 줄 몰랐다. 이토록 성령님을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이상이 되시는 분으로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나는 원래 아주 보수적인 장로교 신자였다. 5살 때부터 신학교 1학년 마칠 때까지 대형 장로교회에서 나름대로 가장 신앙 좋은 아이들 중 하나로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확증들로 오순절 신학, 순복음 신학을 하게 되었다. 부인할 수 없는 인도하심과 확증들로 감사한 마음으로 신학교에 입학한 거다. 그러나 감사는 곧 짜증으로 바뀌었다. 

2. 신앙생활의 모습이 크게 다른 부분이 있어서다. 신학공부와 과제만으로도 벅찬데 주말마다 전도대회가 있다. 삼각산과 청계산에서 매주 하루는 철야 기도회를 한다. 매일 오후에는 1시간 30분씩 부르짖는 기도를 훈련한다. 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큰 북이 강대상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고 선배님은 열심히 그러나 일정하게 북을 친다. 왜 불은 다 끄고 기도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언어로 불꺼진 예배당에서 북이 울리며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퍼져 나간다. 기도회 모임 제목은 왜 그리 불편하게 신경쓰이는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다. 

<성령 불 기도회>

3. 내가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는 엄숙했다. 근엄했다. 진지했다. 무거웠다. 음... 어릴 때는 지루하게 느꼈다. 물론 수련회에서는 밤에 부흥회 끝나고 불끄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도 있긴 했다. 그러나 수련회 부흥회 때만 그랬다. 반면에 신학교에서는 꼭 방언기도가 아니더라도 부르짖는 기도가 일상이며 자연스러운 기도였다. 그러다 보니 적응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내가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하루에 세 번 식사기도는 했다. 그러니 기도 자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도 많이 했다. 당시의 내 수준이 꼭 에베소 교회 사람들 같았다고 할까. 

4.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1-2) 

방언이라는 성령님의 은사에 대해서도 1도 몰랐다. 성경을 꽤 여러 번 읽고 공부도 해왔는데 왜 방언의 은사를 처음 알게 된 걸까? 더 심각한 건 말씀처럼 성령님이라는 인격이신 하나님께서 계심도 인식해본 적이 없다는 거다. 부르짖는 기도니 방언기도니 산상기도니의 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성령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거다. 성령님을 인식하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5.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인식하고 나서 내가 뭘 어디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순진한 마음에 단호한 결심을 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 곁에 계신 것이 진리다. 인격적이신 성령님께서는 스스로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무시하며 살아도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 사랑 가지고 내 안에 들어오셨으니 더욱 존중해드려야 한다. 그러면 뭐부터 해야 할까? 

아! 지금 이 생각부터 성령님께 말씀드리자. 앞으로 깜빡 잊지 않는 이상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생각과 감정과 판단을 성령님께 아뢰고 대화해야겠다. 말을 계속 걸어야겠다. 마음과 생각속으로라도 말을 걸면 안에 계시니 전부 들으시리라." 

6. 물론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헤프닝도 많았다. 신비주의로 치우칠 뻔한 시기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기준으로 삶의 균형을 배우고, 하나님 인격적이신 성품을 추구하도록 인도해오셨다. 

무엇보다 언제나 은사가 아닌 은사를 나눠주시는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주목하게 하셨다.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말씀으로 삶과 체험으로도 배우게 하신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7. 나의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제 전부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제 가장 귀한 친구이십니다. 
은사보다 성령님만을 원합니다. 

처음 성령님을 인격적이신 하나님으로 알았을 때는 성령님을 부르는 것 자체가 어색했었다. 내가 성령님의 음성이 전혀 안 들리는데도 계속 이렇게 곁에 계신 것처럼 이런 말 저런 말 속삭이는 게 정상인가 혼란스럽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사도행전만 보더라도 제자들은 아주 당당하게 성령님 곁에 계신 것처럼 보이는 듯이 이야기하더라. 

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행 15:28)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행 10:19)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행 11:12)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행 13: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22)

9. 여기서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계속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구하지도 않은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음성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경적으로 교회사적으로 부흥과 성령님의 나타나심, 은사들에 대해 배우도록 인도하셨다.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목회자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인도하며, 책을 집필할 만큼 배우도록 인도해 주신다. 

은사, 강의, 집회, 부흥회, 책 집필 등 감사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사라져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성령님과의 관계다. 그분의 음성을 잘 듣지는 못해도 이제는 성령님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 성령님께서 마음 아프실 때 가끔 내 마음도 아프다. 눈물이 난다. 성령님 기뻐하실 때 나도 기쁘다. 우정과 사랑이 관계적으로 형성된 거다. 

10. 그래서인지 친한 친구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듯이, 성령님의 생신은 아니지만 기념하는 절기가 내게 참 기쁨이다. 교회의 대표적 절기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성탄절과 부활절이라고 한다. 맞다. 그러나 나는 이 절기들의 무게감에 가깝게 성령강림절을 중요하게 여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시기에는 성려님께 평소보다 좀 더 기쁨을 드리고 싶다. 작년에 성령강림주일을 며칠 앞두고 그런 고민을 했었다. 

<성령님께 축하드린다는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그래, 얼마 안 되지만 내 비상금으로 성령강림절 기념 떡을 맞춰서 성도님들과 나누면 좋겠다.> 

11. 그런데 우리 성도님 가정이 선수치셨다. 성령강림절이 너무 감사해서 당신들께서 기념떡을 맞추신다고 말이다. 은근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의문의 1패를 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작년 성령강림주일 설교 시간에 내년은 내가 하고 싶다고 소소한 소망을 고백했다. 

드디어 올해 성령강림주일이 다가왔다. 다행히 성도님들 가운데 먼저 이야기 하시기 전에 내가 선수쳤다. 개별 포장 된 맛있는 떡을 주문해 놓았다. 혹시 주일 당일에 기념 간식들을 챙겨오실까 싶어서 교회 채팅방에 미리 말씀드렸다. 이제 바닥이 보이는 내 비상금 주머니지만 성령님께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시면 좋겠다. 

12. 성령강림주일에 여러분 모두 성령님을 좀 더 생각해주시면 어떨까?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에 좀 더 시간을 드리면 어떨까? 여러분이 무엇을 하면 성령님께서 기념 절기에 기쁨 얻으실까? 우리 모두 각자 주어지는 감동과 마음의 소원을 따라 움직여보면 어떨까? 

평소에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이미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성령님의 친구의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성령님으로 인한 감동과 감사가 더욱 풍성하시기를 소망한다.

사랑하는 성령님.
2020년도 성령강림주일을 축하드려요. 
언제나 스스로 주목받지 않으시고,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며 존중해드릴수록 더욱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그저 감사드립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성령님께서 더 존중과 기쁨을 얻으시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