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담임 유승원 목사.(사진제공=언약장로교회) |
<출 17:8-16>
1. 이게 뭐하는 짓인가요?
한 사람이라도 더 나가서 싸워 힘을 보태야 되는데, 모세와 아론과 훌은 한참 전투 중에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진두지휘하는 여호수아만 위험하고 힘들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산에 올라가서 손 들고 벌 서는 것처럼 서 있는 것, 이것이 지금 할 일인가요? 지금 민족의 생사가 달려있는 치열한 전투가 산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2. 이 전쟁은 여호수아의 데뷔전이었습니다.
기록 상으로 볼 때, 성경에서 여호수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그의 이름이 성경 스토리의 진행으로 볼 때 여기서 처음 언급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차세대 리더입니다. 큰 승리를 거두는 이 여호수아의 데뷔전에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실력과 용기가 싸움의 성패를 좌우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싸웁니다. 그의 칼이 싸웁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13절).
이 구절만 읽으면 이 전쟁의 모든 공로는 여호수아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자신의 무기로 힘을 다해 싸웠고 그의 용기와 실력이 아말렉을 압도하여 끝장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구절을 맥락에서 떼어내 읽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맥(context)을 무시하고 구절(text)의 일부만 찍어내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못된 짓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는 이렇게 문맥에서 떼어낸 구절로 예수님을 유혹하려 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싸움은 여호수아가 한 것이 아닙니다.
3. 이 사건의 요지와 교훈은 14절에 있네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이 사건을 잘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잊지 않고 명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외워서 명심하고 또 명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내가 그때 용맹충천하여 최선을 다했더니 역시 일이 잘 됐더라고? 아닙니다. 그 싸움은 여호수아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14절).
여기서 ‘나’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4.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벌을 선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그분께 이스라엘의 삶과 운명을 맡겨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9절). 여기서 ‘하나님의 지팡이’는 왕 되신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모세는 이 산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받들어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지칩니다. 그래서 손이 내려오면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 버티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게 해야 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여호수아 닛시’도 아니고 ‘모세 닛시’도 아니며 ‘여호와 닛시’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깃발이시다. 하나님이 승리의 깃발입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아닙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집니다. 실패합니다.
5. 그의 데뷔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잘 기억하며 한 평생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여호수아가 그에게 주어진 생애의 소명이었던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나서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5).
6. 바울은 자신이 건강하면 더 일을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몸을 괴롭히는 어떤 병, 그가 ‘몸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 칭하던 고통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략 40일에 걸친 기도를 세 번이나 하고 난 뒤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도의 끝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그 모든 역사는 바울이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새삼 다시 깨달은 바울은 기뻐하면서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핌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b-10).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산에 올라서 손을 들고 서 있으면 됩니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아말렉과의 전투에 주어진 역할을 다 하면 됩니다. 나는 그저 내 호흡이 있는 동안 묵묵히, 설쳐 잘난 척 하지 않고 괜히 불안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도 말며, 나의 약한 것과 수치를 솔직하게 인정하여 그 연약한 질그릇에 담긴 보배 되신 그리스도께서 일하게끔 왕좌를 내어드리고 수종을 들 뿐입니다. 오늘도 다시, 솔리 데오 글로리아, 여호와 닛시!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