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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
[하나님이 덜 하신 일]
(이사야 5:1-17)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도원에 비유하신다.
그리고 질문을 하신다.
(사 5:4, 새번역)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이 질문에 대해서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두 가지의 대답이 있다.
1. 덜 하신 일이 없다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다.”이다.
이 대답은 하나님이 스스로 하시는 대답이다.
(사 5:1-2, 새번역) [1]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2]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포도원을 위해서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우고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으면서,
포도나무에서 정상적인 포도가 열리게 하려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다 하셨다.
하나님이 덜 하신 일은 없다.
포도원에서 정상적인 포도가 열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빠뜨리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들포도만 맺었다.
왜 이스라엘은 들포도만 맺었을까?
하나님의 이 질문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전혀 다르게 대답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 덜 하신 일이 많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위해서 빠뜨리신 일이 없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하나님이 덜 하신 일이 많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 엿보인다.
(사 5:8, 새번역)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더 많은 집과 더 많은 밭과 땅이었다.
집과 밭과 땅을 늘리고 늘려서
또 원하는 것이 있었다.
(사 5:11-12, 새번역) [11]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한 술을 찾는 사람과, 밤이 늦도록 포도주에 얼이 빠져 있는 사람에게, 재앙이 닥친다!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거문고와 소구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주님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그들아 원한 것은 연회를 즐기는 삶이었다.
그들은 오직 연회와 수금과 거문고와 소고에 관심이 있었고
밤이 늦도록 포도주에 얼이 빠져 살아가는 삶이 좋았다.
집과 밭과 땅이 늘어나고
연회만 즐기고 포도주만 즐기는 삶이
그들이 원하는 삶이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런 삶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삶은
그런 삶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삶을 원하셨을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포도’는 어떤 모습일까?
(사 5:7, 새번역)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신 삶은 간단하다.
이스라엘이 선한 일을 하는 것,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다른 것을 원했다.
자신들의 끝없는 탐욕을 채우길 원해서
약자를 희생시키고 살육해서
온 나라에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넘쳐났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길 원하고
자신의 욕심을 한없이 키우면서
그걸 채워주시길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일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의 잘못되고 악한 욕망에 대해서
처절하게 심판을 베푸실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이 원했던 건 악이요 죄였을 뿐 아니라
패역하고 더럽고 추했기 때문이었다.
3. 결과
하나님이 덜 하신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자신의 탐욕을 추구했던 이스라엘은
어떤 결과를 맞이했을까?
(사 5:5, 9, 새번역)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9] 만군의 주님께서 나의 귀에다 말씀하셨다. “많은 집들이 반드시 황폐해지고, 아무리 크고 좋은 집들이라도 텅 빈 흉가가 되어서, 사람 하나 거기에 살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이 울타리가 걷어치워지고 담이 없어져서
결국 포도원이 못쓰게 되고 짓밟히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원해서 얻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심판을 받고 말았다.
탐욕과 욕망을 키우고
그것을 채우기에만 혈안이 된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
하나님은 탐욕과 욕망을 키우고 또 키우는 삶에는
함께 하실 수가 없다.
탐욕과 욕망으로 얻은 것들을 잃게 만드시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그 삶을 심판하셔서 망하게 하신다.
아니, 하나님이 심판하실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탐욕과 욕망이 그들 스스로를 망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실 하나님의 돌보심을 정상적으로 받고
풍요롭고 복된 삶을 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름진 언덕에 포도원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시고
하나님이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한 가운데 망대도 세우시고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으시는 등,
정상적인 좋은 포도가 열리도록 모든 것을 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이 하신 그 모든 것들을
누려가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것을 그저 누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왜 그저 누려가는 것이 어려울까?
욕심과 탐욕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충분히 주시는데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넘어서서
1년의 양식, 10년, 100년의 양식을 원하는
패역하고 악한 탐욕을 자꾸 키워가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상적인 좋은 포도를 맺는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전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이다.
욕심과 탐욕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지 말고
전 삶을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 삶을 반드시 복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신자다.
교인임에도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그래서 탐욕과 욕심의 결과로 근심과 걱정과 염려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줘 버린다면
그 삶은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비참한 삶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과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삶,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높아지고 위대해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운명을 걸고 살아가는 삶이 된다면
하나님이 그 삶을 반드시 책임지셔서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실 것이다.
5. 나는?
성공하고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보았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아주 잠시 성공과 부 비슷한 것을 누렸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참으로 무의미하고 허망하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이 전혀 충만해지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죽도록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내면은 메마르고 피폐해져 갔다.
그대로 살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너무나 바쁘고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삶의 모습은 별로 바뀐 것이 없는데
마음에 근거 없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씀에 나의 운명을 맡겨보자는 생각도 생기기 시작했다.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마음에 더 깊이 다가오는 말씀이 있었다.
이 구절이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구절과 비슷한 내용이 성경 곳곳에 얼마나 많은지를
성경을 묵상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묵상하면 할수록 이 약속의 말씀이 점점 더 믿어졌다.
그 믿음과 확신에 따라 부산의 삶을 접고
경기도로 올라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시작했다.
오직 말씀 하나에 목회와 교회의 운명을 다 걸어보자 싶었다.
말씀의 사람 세우는 것 하나에만
목회의 모든 방향을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말씀에 기록된 약속대로
‘이 모든 것’ 즉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으로 믿기로 한 것이다.
‘그 말씀에 나의 목회와 삶의 모든 것을 걸기로 했는데
만약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생각했다.
‘아님 말고.’
아니면 어쩌겠나. 말아야지.
그 말씀이 틀린다면 뭘 해도 어차피 의미가 없는 삶이니,
그때 육체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면 되지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말씀의 약속에 목회적 운명을 걸었는데,
그 결과는 대실패가 되고 말았다.
오직 말씀 하나에 삶을 걸자고 2년 반을 외쳤는데,
교인들 중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거의 생기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교인의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버린 것이었다.
소위 ‘망한 것’이었다.
‘말씀의 약속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목회에 있어서
말씀 외에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면서
주일에 연기학원 공간을 빌려서
3명의 성도들과 함께 예배했다.
그 ‘망함’의 사건이 나에게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떠난 교인들에게 ‘배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갈 길을 가신 것이고
나는 나의 갈 길을 계속 가면 되겠다는,
다소 담담한 생각이 생겼다.
다른 사람 목회하려 몸부림치지 말고
그저 나 한 사람 말씀에 삶을 걸다가
주님께 돌아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만나기 시작했다.
그 만남들은 하나같이 기적 같았다.
어디서 이런 귀한 분들을 만났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너무나 아름다운 교회가
지금 이렇게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져 가고 있다.
지금도 나는 말씀의 약속에 나의 운명을 걸고
목회적 운명도 걸고
나의 삶 전체를 걸고 살아간다.
나의 삶이 더 부유해지고 더 커지고
더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관심은
점점 적어져 가고 있고,
말씀의 약속이 나에게 이루어져 가는 것은
조금씩 더 누려가고 있다.
말씀에, 말씀의 약속에 나의 삶 전체를 걸고 살아서,
말씀 하나에 나의 목회적 운명을 다 걸고 살아서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삶을 책임지시는지를
끝까지 누려가기만 소원한다.
그래서 나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 말씀에 삶을 걸고 살아가게 되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생겨나기를 소원한다.
욕심과 탐욕에 찌들어 살아가는 비참하고 무의미한 삶에서
말씀이 주는 약속을 누려가는 이 복된 삶으로
돌이키는 사람들이 한 분 한 분 생겨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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