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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영원한 제국은 없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8-08 01:11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영원한 제국은 없다]


(이사야 21장)

1.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의 몰락

해변 광야로 불렸던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심판 도구로 사용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무한한 바다'와 같다고 스스로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교만에 걸려 넘어지고 망하고 만다.

바빌론의 함락에 있어서 특이한 표현이 등장한다.

(사 21:9, 새번역) 그런데, 갑자기 병거가 몰려오고, 기마병이 무리를 지어 온다. 누가 소리친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조각한 신상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서 박살났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라는 표현에 
곧바로 따라오는 표현이 의아하다.
"조각한 신상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서 박살났다!"

바빌론의 함락과 신상들의 박살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2. 제국 몰락의 이유

바빌론 함락과 신상의 박살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바빌론의 우상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바빌론'이라고 하면 누구나 '신상들'을 떠올렸을 정도로
바빌론의 중심에는 우상들이 있었다.
왜 그럴까?

바빌론은 역사상 존재했던 대부부의 대제국의 모습이
극단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국은 언제나 부와 힘을 가지고 
약한 나라들을 정복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이 불가피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건물과 곡식들이 불타 없어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이 엄청난 학살과 피해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제국의 힘을 키우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국은 언제나 신의 이름을 차용했었다.
그래서 바빌론에게는 그토록 신상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의 음성은 분명하다.
부와 힘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을 몰락시키고
정당화하기 위해 우상을 세운 것,
그리고 자신들의 힘을 자랑한 교만이 
그들이 몰락한 이유였다.

3. 몸살을 앓는 선지자

그렇게 악하고 패역한 바빌론이 망하는 모습을 미리 보고 
선지자는 어땠을까?
선지자는 괴롭힘을 당한 이스라엘 사람이었으니 
통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선지자의 반응이 의외다.

(사 21:3-4, 새번역) [3] 그러자 나는,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아기를 낳는 산모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온 몸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그 말씀을 듣고 귀가 멀었으며, 그 광경을 보고 눈이 멀었다. [4] 나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떨었다. 내가 그처럼 보고 싶어한 희망찬 새벽빛은, 도리어 나를 무서워 떨게 하였다.

약자들에게 잔혹하고 잔인했던 바빌론이지만
그 나라의 멸망이 너무 혹독했다.
그 혹독함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 장면을 미리 본 선지자가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세상 어느 나라의 멸망도 결코 기쁠 수가 없고,
세상 어떤 사람의 죽음도 결코 즐거움이 될 수가 없다.

공의의 하나님이 그 나라나 그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멸망과 죽음은 언제나 잔혹한 것이어서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은 슬프고 아파야 정상일 것이다.

4. 희망이 있을까?

선지자는 희망찬 새벽빛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희망찬 새벽빛이 왔다.
그런데 그 희망찬 새벽빛에 일어난 일이,
바빌론의 잔혹한 멸망이었다.

희망의 날이 과연 있을까?
날이 새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할 날이 과연 올까?

(사 21:11-12, 새번역) [11] 이것은 두마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세일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파수꾼아, 밤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수꾼아, 날이 새려면 얼마나 더 남았느냐?" [12] 파수꾼이 대답한다. "아침이 곧 온다. 그러나 또다시 밤이 온다. 묻고 싶거든, 물어 보아라. 다시 와서 물어 보아라."

희망은 없다. 
암담하기 그지 없는 미래뿐이다.
두마가 의지하던 앗수르가 멸망하고,
머지않아 바빌론도 멸망하고,
바빌론 왕의 도피처이자 본거지였던 아리비아도 쇠락할 것이다.

밤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밤이 찾아오는,
악순환의 연속으로 인하여 
부귀와 영화와 번영을 누리던 나라들이 
차례로 망해가고 없어져 간다.

잠시 찾아온 아침 빛은 
곧 어두운 밤에 의해 잠식되어
희망인 듯 싶었다가 더 큰 절망만 만나게 된다.

자신의 부와 힘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세운 
우상들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서도 
시간만 지나면 희망의 날이 올 것이라 믿다가는,
절망에 더 큰 절망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부와 힘을 정당화하는 교회들

오늘날의 교회들은 바빌론 같다.
제국이 되어 힘과 부를 자랑하고 
그 힘과 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차용했던
바로 그 짓을 동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불법과 탐욕을 가지고 예배당을 화려하게 짓고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라고 말하는 것,
엄청난 부를 축적한 교회로 세우고는
그 부를 목사 마음대로 사용하고,
그 목사 비자금의 문제로 장로가 자살을 하고,
그렇게 엄청난 부를 가진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그런 짓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해서 부와 힘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니 신자들은 다 속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그 속에 공평과 정의라는 하나님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건 우상, 또는 다른 신을 섬기는 사악한 짓에 불과할 것이다.

그 부와 힘과 화려한 건물과
엄청나게 축적한 모든 재산들과 함께
하나님의 잔혹한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하고 이용하는 것은
가장 악한 짓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렇게 함부로 들먹여선 안 된다.
하나님을 가볍게 차용하는 것은
자신의 어떤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함일 경우가 많으니
가장 조심해야 할 표현이 아닐까 싶다. 

6. 나는?

언젠가부터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종교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일상의 언어로 신앙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대화 중에 많이 사용하는 것,
그리고 종교적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나의 주장과 태도를 정당화하려는 
은밀한 의도가 숨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힘과 부를 추구하고,
그걸 하나님의 이름으로 얻고 싶어하는 것이 
이미 제국주의적 가치에 물든 것이니,
그 가치를 벗어버리지 않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리 들먹인다 해도,
종교적인 용어를 아무리 사용한다 해도,
그건 이미 하나님의 이름을 차용하는 악한 짓이 분명하다.

왜 교회 부흥에 관심이 없느냐?
왜 목사가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관심이 없느냐?
혹시 내숭 떠는 것 아니냐?
등의 은근한 질책의 소리를 가끔 듣는다.

교회에 새로운 신자가 오는 것이 싫지 않다.
교회에 성도가 늘어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목사로서 추구하는 가치는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져다 쓰기는 싫다.

하나님을 차용해서 나의 욕망이나 탐욕을 정당화하는
패역하고 악하고 제국주의적인 시도에
한 걸음도 빠지고 싶지 않다.
적어도 그렇게 망하기는 싫다. 

나는 살고 싶을 뿐이다.
신앙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
세상과 똑같이 커지고 싶고 부자되고 싶은 그 욕망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바빌론처럼 혹독한 심판에 직면할 것임을 
성경을 통해서 보고 또 보고 있기 때문이다.

커지고 화려해지고 유명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결코 나에게 이롭지 않음을 
성경을 통해서 계속 확인한다.

많은 숫자의 교인들을 모으고
엄청난 규모의 교회를 세우고 나서 
나는 망해 버린다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해 버린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을까?

그 어리석은 짓을 하기 싫을 뿐이다.
그래서 그저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나머지는 주께서 인도하시기만 기도한다.

나의 탐욕이 춤추지 못하도록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재정을 갖지 못하도록
장치를 만들어갈 뿐이다.

20여명의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말씀의 사람이 되어가려는 지금의 교회가 
너무나 기적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아름답게 세워져왔기 때문이다.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계속되는 것,
나와 성도들이 말씀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뿐이다.

커지고 유명해지고 높아지고 거대해져서 
함께 망하는 것보다,
그 잔혹한 심판에 직면하는 것보다, 
말씀 하나에 삶을 걸고 살아가려 노력하면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신자와 교회가 되고자 함이
비교할 수 없이 지혜로운 삶이라 생각된다.

결국은 망해버릴 제국의 꿈에 빠지지 않고 
매일 말씀을 통해 내면이 회복되고 살아나서
말씀의 가치를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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