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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본교회 이상갑 목사 '청년들의 헌신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8-12 22:41

청년사역연구소 이상갑 대표.(사진제공=CBS새롭게하소서)


청년들의 헌신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예전에 우리는 안 그랬는데..)

청년들은 교회의 핵심에 자리합니다. 교사, 성가대, 찬양팀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청년들의 삶은 무지 고되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자리에 머뭅니다.

청년들의 삶은 이전 세대보다 스펙은 높아졌지만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더구나 이전 세대와는 다른 문화와 토양에서 자랐습니다. 굶고 배고픈 세대는 한끼 밥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자란 세대는 밥값보다 커피값이 더 나갈 수 있는 세대입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년들 극소수만 이해합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예전에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맞습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충성하는 세대였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가정이나 학교나 교회에서 존중받기 보다는 상명하복의 군사문화의 영향을 받은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대화보다는 명령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던 세대입니다. 

가정도, 학교도, 직장도 교회도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체질화 되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3-7명의 형제 자매가 자라기에 그 속에서 질서와 권위에 파묻혀 지내는 시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는 권위에 저항하기보다는 맹종하는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다릅니다. 성장과정에서 형제자매가 1-2명이기에 존중 받았습니다. 배고픔이 뭔지 모릅니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고 고기를 먹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권위적인 문화와 충돌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교회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청년사역을 하면서 청년들의 헌신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청년들의 의견을 계속 경청하는 시간을 다양한 모습으로 가졌습니다. 저의 한계가 있지만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가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권위가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위험함도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저 자신을 깨뜨릴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리스마적인 수직적 리더십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가지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꾸는 시도를 했습니다. 성폭행이나 성문제가 일어난 사역자들의 공통점은 이의제기를 허락하지 않는 일방통행식의 독불장군 리더십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일방통행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청의 시공간을 가졌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미있는 작업이였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는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을 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신앙과 삶에 있어서 목회자가 모든 것을 다하는 만능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판단과 결정이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나 아니면 안 된다." 는 식의 사고는 위험합니다. 목회자가 일터를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청년들의 삶의 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상명하복의 문화는 목회자의 무덤이라고 생각됩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슈퍼맨이 아님을 알아야 하고 자기 연약함과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청년사역의 과제는 성경적이면서도 인격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머리만 키우는 제자훈련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마음이 향하고 손과발이 세상을 치유하는 쪽으로 가도록하는 양육훈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자훈련은 목회자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성경적인가를 고민하고 겸손히 주를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교회가 양육과 훈련을 생략하고 일만 시킵니다. 일만 시킨다는 것은 극소수의 헌신된 사람이 모든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가는 구조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탈진이 됩니다. 

청년들의 용어로 "영적 공급" 이 없습니다. 영적 공급은 받지 못하고 봉사에 내몰리는 청년들은 신앙이 삶으로 체질화되는 과정이 생략되기 쉽습니다. 신앙이 일터로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콩쥐 컴플랙스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무조건 착해야 한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그것은 위험신호입니다. 

내면과 외면이 동일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내면은 따라주지 못하는데 외면은 많은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계속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영적인 엔진이 타버립니다. 출력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장과 성숙으로 영적 기어를 변속해 주어야 하는데 영적 갓난 아이 상태인 1단 기어로 과속을 계속하다보니 엔진이 타는 것입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엑셀레이터를 더 강하게 밟는 것이 아니라 기어를 변속 시켜 주어야 합니다.

영적인 기어를 변속하는 과정이 양육훈련입니다.

양육훈련을 통해서 내면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봉사와 섬김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에 대한 반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순서가 바뀌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봉사와 섬김은 쓰임받는 것을 행복하게 느끼게 합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가 감사한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게 하시니 더욱 감사가 넘칩니다.

그러나 은혜가 충분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봉사와 섬김은 영적 엔진 오일을 고갈 시킵니다. 엔진 오일이 없는 상태에서 무시하고 차를 계속 달리다가 보면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결국 차는 멈출 것입니다. 엔진이 타 버리기 때분입니다.

사실 봉사와 섬김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봉사는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없는 봉사는 영적인 자학이며 자해일 수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종종 말합니다. "은혜받은 만큼 봉사해라. 봉사와 섬김이 너무 귀한데 네가 받은 은혜를 너무 넘어서지 못하게 해라." 쉬운 말이지만 꼭 기억해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좋은 기계라고 기름을 치지 않고 무조건 돌리기만 하면 빨리 고장나고 멈춥니다. 좋은 기계일수록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청년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청년들을 먼저 잘 양육하십시오. 영적으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청년은 교회의 종이 아닙니다. 더구나 아무렇게나 막 대하는   종은 더욱 아닙니다. 청년은 동역자요 예수님의 제자여야 합니다. 그들은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은혜를 먼저 깊이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서 헌신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1인 1봉사는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갓난 아이에만 머물면 머리만 커지고 몸은 자라지 않는 영적 기형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봉사는 영적인 생수의 강의 수위만큼만 할 것을 권합니다. "나 아니어도 됩니다."

교회마다 형편과 처지가 다를 것입니다. 개척교회나 농촌교회는 사실 1인 다역을 감당해야 하는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 특히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섬김을 하나님께서 기억 하십니다. 특히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에서 힘에 지나치도록 수고해 주시는 목사님과 성도님들 청년들에게 너무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

그러나 기본 원칙은 분명합니다. 받은 은혜의 수위에 따라서 헌신의 수준을 조절해야 합니다. 많은 봉사가 문제가 아니라 은혜없는 봉사가 문제가 됨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적 수로가 마르지 않기를 응원합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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