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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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세대 Ministry 대표 김영한 목사, '성경 하브루타 코칭 요한계시록 5장'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9-15 00:00

품는교회 담임 김영한 목사.(사진제공=Next 세대 Ministry)


유튜브를 할 때 많은 구독자와 시청자를 끌어 오려면 다루어야 할 몇 키워드가 있습니다. 


첫째, 정치에 관한 내용(좌파적 혹 우파적 이야기)입니다. 
둘째, 돈에 관련 된 내용(주식, 투자, 돈 버는 일)입니다.
셋째, 먹고, 마시고, 노는 재미 나고 자극적 내용(먹방, 혼술, 여행, 등)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하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무엇이 요한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습니까?  

요한계시록 5:1-14, 성경 하브루타 코칭

1. 4장에 이어 5장에서 어떤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4장에 이어 5장에서도 천상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에 4장이 성부 하나님께 대한 예배라면, 5장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카메라가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2.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두루마리 책이 있었습니다. 

두루마리 책은 구약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에 이미 나와 있던 이미지입니다. 

(겔 2: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겔 2: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겔 2: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역하였습니다. 그래서 두루마리 책 안팎에는 애가, 애곡, 재앙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먹으니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습니다. 
  
(겔 3: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겔 3: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겔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요한계시록에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두루마리를 가지고, “먹어라” 하셔서 먹으니 입에 달았습니다. 그러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썼습니다. 

(계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다니엘서는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봉함되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단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看守)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往來)하며 지식(知識)이 더하리라
(단 12: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단 12: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看守)하고 봉함(封緘)할 것임이니라
(단 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오늘 본문에 두루마리 역시 안팎으로 일곱 인으로 보앟여 있습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요한은 봉인된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여기 ‘보다’(헬라어: 오라오)라는 동사는 일반적인 동사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볼 수 없는 기이한 ‘두루마리’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한 복싱을 배우는 선수와 무서운 코치가 있었습니다. 코치는 선수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코치: 그게 보는 건가? 
선수: 제대로 못 봤습니다. 

코치: 왜? 그럼 눈을 감고 해야지! 주영아 
선수: 네 

코치: 왜 눈을 뜨고 하는지 알아? 사람 눈이 왜 두 개인지 알아? 
선수: 보려고 

코치: 아니, 진실하고 거짓을 보기 위해서 그런 거야 
선수: 네 

코치: 그런데 너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야! 그럼 돼? 안 돼? 
PD: 왜 이렇게 엄하게 합니까? 

코치: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코치: 김연아 엉덩방아는 말입니다. 연습 때 아주 많이 다칩니다. 
     실전에서 아름다운 모습만 보이지, 착각하면 안 되죠. 

보좌에 앉으신 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른손에 그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었고, 요한은 그 두리마리 봉인을 보았습니다. 

3. 요한은 두루마리 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두루마리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듣고, 잘 이해가 안 되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4.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무엇을 외쳤습니까? (2절)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1) 보매 
2) 큰 음성으로 외쳐 
3)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지 물었습니다. 

요한은 다시 보았습니다. 
요번에는 큰 음성으로 외쳐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이 그 두루마리를 펴시면서 그 일곱 개의 인으로 봉인 된 인을 누가 뗄 수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5.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에 어떤 자가 없었습니까? (3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알았습니다. 
자신도, 그 누구도, 이 땅에 있는 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자신이 보고, 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천사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오직 전능한 주님만 가능함을 알았습니다. 

신앙은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을 아는 것입니다. 
코로 호흡하는 인생의 연약성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전능하신 주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6. 왜 요한은 울기 시작하였습니까?
 
자신이 어쩔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언제 울 수밖에 없는가?> 

1. 배가 너무 고프면 
2.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3.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떠나야 한다면 
4. 인생을 뒤돌아보면 
5. 너무 가난하면 
6. 너무 행복하면 
7. 구원받으면 
8. 선물을 받으면 
9. 비전을 이루면 
10. 결혼 혹 이혼하면 

무엇으로 요즘 우울해하고, 울고 있습니까? 

<원코리아 넥스트 통일세대 연합집회> 

작년 원코리아 넥스트 통일세대를 준비하는 집회 때 탈북한 목회자, 허남일 목사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대해 나누어 주셨습니다. 

다 큰 남자, 느헤미야가 땅에 주저앉아 울어 버린 장면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과 그 백성이 온전하지 못해 울어버렸습니다. 

7. 요한은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자가 없을 때 울어버렸습니다. 나 자신은 인생에서 어떤 일로 울 수밖에 없었나요? 혹 지금 울고 있나요? 

8. 요한이 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없어 울었습니다.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사도 요한은 두루마리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보고,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있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울어버렸습니다. 

<한 목회자 분의 고백> 

요번 주 한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오랫동안 안식년을 가지지 못하시다가 요번에 가지면서 한국에 방문하셨습니다. 목사님이 하신 설교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가 교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제대로 목회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고 하셨답니다.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는 괴롭습니다. 설교를 잘하지 못해 괴롭고 설교를 잘해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그렇게 사랑의 사도가 아니라서 괴롭습니다. 

사람은 때로 똑똑하지 못해 괴롭고 똑똑하기만 해서 괴롭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입니까? 

9. 요한은 자신은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자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무능력, 부족함, 연약함을 경험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적은 언제였나요? 

10. 누가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라고 하셨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합당한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1) 다윗의 뿌리인 주님이셨습니다.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그 다윗의 뿌리인 예수님께서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셨습니다. 그 때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서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분이셨습니다.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습니다.

2)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계셨습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르니온’과 ‘암노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암노스’는 어린양을 의미하고, ‘아르니온’은 갓 난 어린양을 말합니다. 

여기 요한계시록에서는 ‘갓난 어린양’을 의미하는 ‘아르니온’이 29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특징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바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 주님이시기에 부활하시고, 마지막 때 심판 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없어져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 곁에 설 수가 없습니다. 

3) 어린양이신 주님이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11. 두루마리를 취하자 누가 경배하였습니까? (8절) 

- 네 생물, 이십사 장로들이 경배하였습니다. 

1)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올려 드렸습니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여러분은 어떤 악기를 다룰 줄 압니까?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거문고를 연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 앞에 ‘엎드려’ 찬양하였습니다. 
찬양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져왔습니다. 
그 금 대접에 담긴 향은 바로 성도들의 기도들이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도가 함께 녹아져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도가 함께 녹아져야 합니다. 

일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도가 함께 녹아져야 합니다. 

영성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땀, 눈물, 피만 묻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그 속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2) 새 노래를 불러 찬양하였습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보면,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들이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는 새 노래였습니다. 

‘새 노래’란 깨끗한 노래일 수도 있고, 
정말 요한이 모르는 새로운 노래일 수 있습니다. 

헬라어는 
‘네오스’는 시간적으로 새로움을 말하고
‘카이넨’은 질적인 면에서 깨끗함의 새로움을 말합니다. 

여기 본문에 ‘새로운’은 ‘카이넨’(καινὴν)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시간적인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이미 있는 우리 존재가 더 정결하고,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새 노래’를 드리고 있습니까? 

깨끗한 채로 주님께 거룩하게 찬양하고 있습니까? 
과거 정체된 신앙이 아니라 날마다 더 배우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새 노래’를 올려 드리고 있습니까? 

12. 새 노래는 ‘케이넨’이라는 헬라어로 깨끗하고, 정결하게 찬양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더 ‘케이넨’(정결, 거룩)하게 주님 앞에 더 서도록 노력해야 할까요? 

13.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습니다.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새 노래를 올려 드릴 때 주님은 그들을 나라와 제사장들로 삼으셨습니다. 단순히 믿음이 좋다고 인정만 하신 것이 아니라 땅에서 왕 노릇 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인데 이단은 이 내용을 자신들의 이단적 집단이 누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정말 주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입니다. 

이단의 모략 교리를 아십니까? 

거짓말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자가 정말 깨끗하고, 정결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새 노래를 부르는 자일까요?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기계인 것입니다. 

14. 환상적인 찬양과 경배는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찬양하는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들을 둘러선 수많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수는 만만이고, 천천이었습니다. 

만만, 천천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천천도, 만만도 다 많다는 표현이고, 의미입니다. 요즘 먹방을 보니 먹는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양만 많아도 대단합니다. 한 여자 유튜버는 마른 체형인데 라면을 20개를 끓여 먹었습니다. 

여기 천사가 한두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천사들이 있다는 것은 먹방으로 라면 20개 정도 먹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만만’ 그리고, ‘천천’ 표현은 다니엘서 7장 10절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2) 큰 음성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였습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높여 드렸습니다. 7가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1) 능력
2) 부
3) 지혜
4) 힘
5) 존귀
6) 영광
7) 찬송 

우리는 때로
나 자신을 높이고, 
주위 사람들을 높이고, 
권세 있고,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아부를 하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여러 영역에서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3) 어린양에게 찬송, 존귀, 영광, 권능을 세세토록 돌렸습니다.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13절에 보면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들이 다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특히, 4가지를 올려 드렸습니다. 

a. 찬송
b. 존귀 
c. 영광 
d. 권능

왜 이런 찬송, 존귀, 영광, 권능을 받으셨습니다. 

천상에 계셔서 이런 찬미를 받으셔야 했지만 다 내려놓으셨기 때문에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탐욕적으로 찬송, 존귀, 영과, 권능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다 누리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네 생물은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요한은 다시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음성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어떤 음성이 반복적으로 들려지고 있습니까? 
어떤 유혹과 시험이 찾아오고 있습니까? 
어떤 탐욕, 욕심이 지배하고 있습니까? 

15. 네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은 7가지(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를 주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나는 7가지 중 어떤 부분을 주님께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나요? 

16. 오늘 받은 은혜 혹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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