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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완 목사의 북리뷰 '목사, 그리고 목사직'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9-29 16:19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담임목사.(사진제공=우리가꿈꾸는교회)

목사, 그리고 목사직_이재철(홍성사)

1. 신학생 시절, 참 좋아했던 목회자 중에 한 분이 지금은 은퇴한 이재철 목사님이었다. 새신자반을 시작으로 홍성사에서 나온 책들을 참 많이 사서 읽었던 것 같다. 100주년기념교회에서의 사역은 상식적이었고, 파격적이었다. 

성경에 대한 건강한 해석과, 문화와 시대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기에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절제하고, 제어하려는 노력에서 많은 귀감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100주년기념교회에서 회개장부를 홈페이지에 오픈하는 것이었다. ‘볼펜 한 자루’까지 공개했던 것은 교회의 불투명한 재정사용과 잘못된 관행들이 한참 불거지던 시절, 신학도로서 사이다를 들이키는 것 같았다.

내 기억에, 이재철 목사님에 대한 호감은 외모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학자 같이 절제된 외모에, 아나운서 같이 선명한 인상은 분명 신뢰감을 주는데 톡톡한 몫을 했다. 

그분의 은퇴설교에 대해서 여러 불편한 시선으로 말한 분들도 있고, 그분이 치리했던 100주년기념교회가 ‘알고보면~’ 라고 말하는 것도 많이 들어봤지만

오랜 항암치료로 인상이 변한 것을 보듯, 쉽게 그분의 삶과 사역을 저평가하기에는 한국교회 안에 그가 끼친 선한 영향력과 삶의 모범이 특별하다.

2. 얼마 전 고상섭 목사님과 서점에 갔다가 목사님께서 책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몇몇 관심있는 책을 골랐다. 그 중 하나가 이재철 목사님이 최근에 쓰신 ‘목사, 그리고 목사직’이었다. 이분의 책을 손에 든게 몇년 만인지 모르겠다. 

최근, 광화문 사태를 겪으며 한국교회 안에 ‘어른’이 참 없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가졌었다. ‘옥한흠’이라는 어르신이 많이 생각났던 것도 이와 같은 면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이재철 목사님의 책은 (마침 주제도 목사와 목사직에 대한 이야기다.) ‘아 이분도 있었지.’ 하는 반가움을 주었다.

한 챕터, 한 챕터가 묵직했다.

- 나는 지금, 왜 목사로 살고 있는가?
- 나는 두 목회자의 유형 가운데 어느 유형인가?
- 나는 목사이기 이전에 전도자인가?
- 나는 얼마나 자발적으로 고독한가?
- 나는 얼마나 인간을 알고 있는가?
- 나는 나의 목회를 소위 더 큰 목회를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정말 믿고 있는가?
 
목사, 그리고 목사직.(사진제공=김병완 목사)

3. 이재철 목사님은, 한 스님과의 대화를 이야기 하며, ‘스님이 중 냄새가 나야하듯, 목사들에게도 목사 냄새가 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이 목사님께서 두 가지 키워드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람들의 어부’고, 또 하나는 ‘자발적인 고독’이다. 

1) 사람들의 어부
개역성경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런데 원어에는 ‘낚는’이라는 표현이 없다. 정확히는 ‘사람들의 어부’다. 우리말에서 어부는 ‘낚시’를 하니까, 번역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다소 의역한 것이다.

사실, 유대인의 ‘낚시’는 느긋하게 줄을 미끼에 걸어 던지고 기다리는 대낚시가 아니다. 오히려 투망을 던지고 길어올리고를 반복하면서 물고기가 잡혔는지를 보아야 하는 힘든 ‘그물 낚시’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자신(혹은 교회, 넓게는 기독교)을 위한 것이라면, ‘사람들의 어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사람들을 위한 어부’, ‘사람들을 섬기는 어부’다.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어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섬기는 대상’의 이익을 향한다.

그러므로 그가 첫 번째 키워드로 건낸 ‘사람들의 어부’는, 우리 목회의 방향, 우리의 시간 활용, 우리의 재정 활용에 대해서 재고 하게 한다.

2) 자발적인 고독
그는 구약 속에서 동시대의 선지자들이 함께 연대하지 않았음을 주목한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떨어뜨려서 사용하셨다. 우리 생각에는 함께 쓰시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인데 왜 연대하지 않게하셨을까? 

사실 오랫동안 나의 고민 중 하나는 교회와 교회, 사역자와 사역자의 연대였다. 그 생각은 맨 몸으로 개척을 하면서 더욱 커졌다. 교회를 나온 사역자들이 함께 팀으로 사역하면 더 좋지 않을까? 서로 각개전투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함께 연합해서 하면 하나님나라가 더 선명하게 임하지 않을까? 나의 이러한 고민은 사실 아직도 종료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서에서 말하는 이유가 어느정도 대답은 되었다. 예수님도 그분께 호감을 갖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셨다면, 빌라도 총독을 압도했을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함께 연대했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더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철 목사님은 “인간은 어느 누구 혹은 집단과 ‘연대’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가시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체감 가능한 ‘인간 연대’의 힘을 더 의지하기 마련인 까닭’이라고 말한다.

연대가 강력할수록, 목사들이 하나님보다 ‘연대’의 힘을 더 믿고 의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시대의 목사들에게 ‘자발적으로 고독’할 것을 요청한다.

<비전의 사람>에서 그가 말했듯이,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열망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소외감이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이는 역량이 있음에도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격리하는 능력’이다.

그는 목사가, ‘자발적으로 고독’할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힘을 비로소 의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4. 이재철 목사님은, 뒷 부분에 ‘청빙’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미가의 신상’을 예시한다. 그는 사역자가 조건부적으로 목회직을 옮겨다니는 것은 욕망에 기인할 뿐, 사명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이재철 목사는 그가 개척한 주님의 교회를 임기 10년을 마치고 은퇴한 뒤 스위스로 넘어갔었다.)

그분의 입장을 정리하면 부목사의 ‘담임목회’로의 청빙은 괜찮지만, 담임목회자의 더 큰 교회로의 ‘청빙’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쨋든 그가 이유로 든 내용이 목회자로서 마음에 울림이 있어 그대로 인용한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 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 목사를 믿고 당신의 자녀들을 그에게 맡기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임기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으로 맡겨진 교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교인들을 위한 어부’가 되어, 자신의 뼈가 으스러지기까지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누어야 한다.”

“그대가 지금 담임하는 교회는 그대가 선택한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믿으시고 그대에게 맡기신 교회다. 그 교회 ‘교인들을 위한 어부’로 그대의 삶을 바치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대에게는 그 교회가 그대의 ‘땅끝’이다. 그대의 임기가 다하기까지, 그대의 생명을 걸고 그대의 ‘땅끝’인 그 교회를 지켜야 한다.”

4. 교회개척 2년차, 젊은 목사는 배워야할 것도 많고 고민해야할 것도 많다. 곧 유진피터슨의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도착한다.

선배들의 목소리가 젊은 목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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