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30일 화요일
뉴스홈 종교
샤마임 영성 공동체 대표 정경호 목사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0-10 00:28

송림교회 담임 정경호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어제는 교회 예배 동영상을 사용하는 캠코더가 고장이 나서 AS센터에 맞기고 왔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다 마칠즈음 센터에서 전화과 왔는데, '부품을 구할 수 없어서 수리 불가'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요즘 시대의 빠른 변화를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캠코더는 제가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 '설교 영상'을 제작하라고 한 형제가 선물한 제품인데, 지난 4년간 잘 썼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영상'을 만들수 없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다음 주에 제 핸드폰을 바꾸려고 합니다. 실은 제 스마트 핸드폰도 2-3개월 전에 '부품'이 없어서 더 이상의 AS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정들었던 핸드폰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잔머리를 굴려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는 '카톡 문자'가 전혀 되질 않아서 여간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영상 때문에 고심하다가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스마트폰'이라도 새로 구입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음이 왠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변화의 시대가 마음을 피곤하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의 빠른 변화가 사람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는 변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어제 전화 받은 후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상 설교가 멈추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또 다른 길과 섭리의 은총을 기대해봅니다.

누가복음 20장 1-8절 말씀입니다.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종교지도자들이 몰려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라고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참 대단한 언어표현입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이런 태도는 당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종교적인 권위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바운더리에서 함부로 말씀을 전하는 갈릴리 촌 나사렛 출신의 청년의 모습이 거슬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감히 최고의 학부와 최고의 명성을 소유하고 있는 자신들 앞에서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것은 큰 문제에 속한 것이었을 겁니다. 이들의 강력한 항의에 주님께서는 도리어 질문하십니다.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3-4)"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선지자'로 인정하였던 순교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을 죽인 자들에 대한 분노가 이 당시에 온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사역에 항의하던 이들 또한 세례 요한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무지 이들은 진리와 상관 없이 자신의 자리만을 탐하던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 보다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에 분노하고 질투하고 안 되면 죽이는 자들이었습니다. 원래 종교인들은 이런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종교인들이지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들의 고민에 그대로 담겨져 나타나게 됩니다.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6-7)." 이에 주님께서도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8)"고 말씀하시므로 이들의 어리석은 종교주의와 형식주의와 오만과 외형주의를 그대로 무시하고 넘어가시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일반 종교'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담아내는 '생명의 종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구원을 외치는 영생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생명은 열매로써 그 의미를 증명합니다. 생명의 열매가 없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쓸모 없는 종교주의요 형식주의요 정치적인 자리 싸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규모의 크고 작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알지 못하노라(7)"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종교 안에서 여전히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세속적이며 세상적인 사람들은 모두 알지 못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며 설혹 알았다손 치더라도 자신들의 입장에 해가 될까봐 '알지 못한다'라고 얼버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익에 따라 진리도 거짓으로 바꾸는 곳이기 때문이니다. 만일 종교 안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면, 그곳은 거룩한 곳이 아닌 거룩의 이름으로 포장된 세속의 장소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진심이라면 배워야 하는 것이요, 알지 못함이 이익에 관계된 것이라면 그 사람의 말은 후에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종교지도자가 되는 것은 잘못하면 사망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이 그런 길에 있다면, 마땅히 그 야망을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으로 내려와서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길을 걷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망이냐 주님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도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생명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삶에 의미가 있게 하옵소서. 야망과 큰 꿈을 통해서 위대해지려는 욕망을 비워내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 앞에 선 영혼이 되게 하셔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오늘 하루고 거룩을 지켜내가는 소박한 제자도를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