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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찌 우리 잊으랴! 6.25 영웅 ‘육탄 3용사’를...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10-12 07:39

백마 3군신(軍神) 강승우 소위, 안영권 하사, 오규봉 하사
전쟁기념관 ‘10월 호국의 인물’ 선정
고귀한 생명 희생, 대한민국 한 뼘의 땅도 그냥 얻은 것이 없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명예도로 안영권로(금산사 입구)에 세워진 '육탄3용사고안영권하사전공기념비'./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매년 10월 12일은 6.25 전쟁 때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 6~15일)의 영웅으로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품에 안고 뛰어들어 장렬히 산화한 ‘육탄 3용사’를 추모하는 날이다.
 
이들의 희생으로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철원-평강-김화)를 감시할 수 있는 요충지이자 열흘 동안 24번의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395m)를 탈환했다.
 
육탄 3용사는 강승우 소위, 안영권 일병, 오규봉 일병이다. 강승우 소위는 1930년 11월 23일 남제주군 성산읍 시흥리 출생으로 1951년 8월 갑종7기 소위로 임관했고, 안영권 일병은 1925년 11월 10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화리 출생으로 1952년 2월 27일 입대 했으며, 오규봉 일병은 1928년 10월 4일 충남 천안군 성환읍 출생으로 1952년 4월 11일 9사단 30연대 소총병으로 참전했다.
 
전쟁기념관은 백마고지전투의 영웅인 ‘육탄 3용사’를 ‘10월 호국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들은 1952년 10월 12일 중부전선의 전략 요충지인 백마고지에서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혈전을 전개하던 중 아군 9사단 30연대의 역습이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력화되자 특공대를 자원, TNT와 박격포탄, 수류탄을 휴대하고 육탄 돌격해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이를 계기로 국군은 백마고지를 완전 탈환했다.
 
이들은 오늘날 백마 3군신으로 불리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려 을지무공훈장 수여와 함께 강승우 소위는 중위로, 안영권‧오규봉 일병은 하사로 추서했다.
 
1973년 어린이대공원에 백마고지 3용사 동상이 건립됐다. 1991년 6월 제주자연사박물관 입구 탐라자유회관에도 동상이 건립됐으며 강승우 중위 모교인 동남교에도 그의 흉상이 건립됐다. 김제시 재향군인회는 안영권하사 산화 66주기를 맞아 금산사 입구 기념비 앞에 안 하사의 흉상을 건립했다. 오규봉 하사의 추모비는 전사 61년 만인 2013년 6월 7일 오 하사의 고향인 충남 천안시 천안삼거리 초등학교 맞은편에 세워졌다.
 
한편 일본에서도 ‘폭탄 3용사’를 선정해 미화시켰으나 75년 만에 거짓으로 판명됐다.

1932년 1월 28일 제1차 상하이 사변인데 중국군과 충돌하면서 목표 점령에 간신히 성공하자 아사히신문은 “폭탄을 두른 3명의 병사가 돌격로를 개척하기 위해 적진으로 용감히 달려들어 철조망을 폭파한 후 산화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전사자 3명을 ‘폭탄 3용사’로 이름 붙여 침략전쟁을 미화도구로 활용했다. 영웅으로 만들어 추모곡, 영화, 만화, 광고 등을 제작해 강제적으로 듣고 보게 했다. 선전 책자를 학교에 배포해 시험 문제로 출제토록 했다. 전사자 3인을 신격화 하려고 도쿄 세이쇼우지 사찰에 동상도 세웠다.

그러나 ‘폭탄3용사’는 산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표지점에 늦게 도착해 폭사 당했다. 먼저 도착한 군인은 모두 무사했다. 지난 2007년 6월 13일 아사히신문은 이 사건의 왜곡보도 사실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다. 75년 만에 잘못을 고백한 것이다.
 
우리의 백마 3군신(軍神) 강승우 소위, 안영권 하사, 오규봉 하사.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영화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한 뼘의 땅도 그냥 얻은 땅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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