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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는교회 최준영 목사, '죽이는 법과 살리는 법'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1-08 04:07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품는교회 최준영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율법’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닌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하셨다(마5:17).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마태복음_12장_1-14절 

죽이는 법과 살리는 법(1-14절)
사람을 정죄하며 죽이는 법과 사람을 사랑으로 살리는 법이 있다. 

바리새인들을 포함하여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구축해놓았던 종교적 권위와 관습을 무너뜨리시는 예수님께 좋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 동안 몇 차례 예수님의 행동에 대하여 꼬투리를 잡고자 했으나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그들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본문의 사건들이 생긴다. 

첫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일이다. 그런데 그때 배가 고팠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었다(1절). 이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항의한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2절).

또한 이어지는 사건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회당에 있었다. 그러자 그런 그를 보고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 고발할 명목을 찾던 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한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0절). 두 사건의 공통점은 먼저 안식일에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안식일  관습법의 이행여부를 놓고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립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첫 번째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행동을 방관하셨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시더라도 책잡힐 수밖에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분명 하나님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해 믿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았던 이들이다. 그들의 안식일 관습법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안식일을 더 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가운데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이러한 관습법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계신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들은 율법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해 본질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어떤 피조물보다 특별하게 창조하셨다. 삼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시고, 또한 복을 주시며 모든 피조물들 위에 두셨다. 그리고 그들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셨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이런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떠나 죽은바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셨기에 죽었던 그들을 살리고자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부르셨으며, 그들에게 주신 율법도 그 연장선상에서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분명 율법의 본질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눅10:27참조).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에게 있어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닌, 죽이는 법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안식일의 관습법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삭을 잘라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제자들을 정죄하고 판단한다(2절).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는 장애를 갖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었던 손 마른 사람을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시험의 도구로 이용한다(10절).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 되시며(8절),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신 성자 하나님조차 정죄하며 그들의 율법으로 죽이고자 한다(14절).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 즉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그 마음을 알려주시고자 하신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3-4절)와 안식일에 제사장들의 예(5절)를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의 굶주림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보셨다. 그랬기에 구약성경 어디에도 다윗과 그에게 떡을 준 제사장 아히멜렉의 행위를 정죄하는 구절은 없다. 또한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에서 ‘일’을 하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그 것에 대해 정죄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에서 ‘일’을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루기 원하시는 뜻을 호세아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7절). 또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의 예(11절)를 드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절). 그리고나서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라는 ‘형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자비’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을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은 종교적인 관습으로 사람을 죽이는 날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나는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하루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내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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