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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끝이 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1-13 01:48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끝이 있다]

(역대하 9:13-31)

1. 솔로몬이 누린 것

솔로몬은 참으로 엄청난 것들을 누렸다.
세상의 왕들과 비교해도 솔로몬이 누린 것은 최고였다. 

솔로몬 왕은 재산에 있어서나, 지혜에 있어서나, 이 세상의 어떤 왕보다 훨씬 뛰어났다. (대하9:22)

약간의 과장법이 사용되었겠지만,
솔로몬 때문에 예루살렘에 은이 돌처럼 흔했기 때문에
은은 귀금속 축에 들지모 못했다고 한다. (대하 9:20, 27)

솔로몬이 누린 부귀와 영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는데,
이 부귀와 영화는 그의 지혜때문에 누린 것이었고,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다.

솔로몬의 지혜를 직접 들으려고
온갖 예물을 가지고 
솔로몬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지혜로 인해 솔로몬은 엄청난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높임을 받았다.

부와 영화와 존귀를 모두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누린 것이다.

2. 부귀 영화의 끝

그런 엄청난 부귀와 영화와 
존귀와 높임을 누린 솔로몬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솔로몬은 죽어서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에 묻혔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대하9:31)

죽었다.
그렇게 엄청난 것들을 누렸으나
그는 40년을 다스린 후에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죽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인해 누렸던
부귀와 영화와 존귀를 다 남겨두고
솔로몬은 이 세상과 이별해야 했다.

세상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았고,
세상 그 누구보다 인정받았지만,
그 부귀와 존경이 그의 생명을 연장하지 못했다.
영생은 더더욱 누리지 못했다.

그 어떤 부귀와 존경과 인정도
반드시 끝난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

돈이 있으면 산소 호흡기로 몇년씩이나
호흡은 연장할 수 있어도
그 어떤 부귀와 영화도 생명을 연장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3.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장 영화롭고 존귀하고 부유했던 솔로몬에 대해,
그리고 그의 부귀영화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평가하셨을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마6:29)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솔로몬이 지혜와 부귀는 가졌으나
옷 입는 센스는 없었다는 말일까? ^^

정말 솔로몬이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것이
들의 백합화 하나보다 잘 입지 못한 것이 맞을까?

이것은 '시각의 전환'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온갖 부귀와 영화로 치장한 것보다
벡합화 한송이가 더 예쁘다는 사실을
느끼며 볼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각과 관점이 
신자에게는 꼭 필요하다.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보다,
그가 입은 어떤 화려한 옷보다
들꽃 한 송이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가진 부에 만족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며,
자신이 가진 적은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누림보다
훨씬 더 복되고 가치있는 삶이다.

4. 솔로몬 이야기의 해석과 적용

역대하는 포로에서 돌아왔으나
황폐한 예루살렘과 가난과 온갖 어려움에 직면한
귀환공동체를 향해 쓰여진 책이었다.

솔로몬 이야기는 귀환 공동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기 위해 쓰여졌기에,
주로 솔로몬의 업적에 대해 강조하고
그의 타락과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솔로몬 이야기 전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는
어떤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할까?

죽도록 일해도 먹고 살아가기 쉽지 않고,
최선을 다해도 직업을 얻기 쉽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 없어서
절망하고 좌정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아프고 슬픈 사람들은
솔로몬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님이 솔로몬 이야기를 통해 주시는 교훈을 
오늘날 신자가 들어야 할 것 같다.
무슨 교훈일까?

첫째, 살펴보아라

솔로몬의 영광이 백합화보다 못하다는 말씀을 하기 직전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마 6:26 a)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마6:28 a)

삶이 힘들고 지치고 먹고 살기 어려우면
주변을 '살펴'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가난이나 고통에만 집중하며
고통만 묵상하고 고통을 준 사람만 묵상한다.

그렇게 살아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고
고통만 가중되고 절망만 커져간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수록,
삶이 아플수록 '살펴'보아야 한다.
지나가다 고개를 돌려 들풀도 보고,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하늘도 쳐다보고,
손을 뻗어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보아야 한다.

주의를 기울이고 살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들의 백합화를 보고 날아가는 참새를 볼 때
고통과 아픔을 넘어서는 아름다움과
참됨의 가치를 보게 될 것이다.

둘째, 걱정하지 말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마6:30)/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마6:31)/

새를 보고 백합화를 보면
마음에 찾아오는 깨달음이 있다.
하늘을 나는 새와 백합화를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아름다움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억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 많이 먹고 더 화려하게 입고
더 큰 재물을 가지려고 탐욕스럽게 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주께서 필요를 다 아시게 때문이다.

셋째, 최우선으로 구해야 할 것

그렇다면 신자는 최우선적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까?
주님은 선명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6:33)/

신자의 삶에서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건,
신자의 삶에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자신의 통치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자가 구할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다.

그리고 그의 의란
나의 옳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옳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나면
'그 다음'엔 무엇을 구해야 할까?
그 다음엔 '먹을 것, 마실 것,입을 것'과
부귀와 영화를 구해야 할까?

놀랍게도 '그 다음'은 없다.
'그 다음' 대신에 '그리하면'만 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더하시겠다는 말씀만 있다.

그래서 신자가 구해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서
신자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야 한다.

5. 나는?

몇 년 전에 교회가 없어질 뻔했다.
교인들이 거의 다 떠났기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바른 말씀을 전하려 했고,
학원 강사로 일해서 생활비를 벌면서 목회를 했는데,
작은 오해로 교인들이 다 떠났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대로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8만원짜리 중고 카메라를 사서
무턱대고 사진을 찍었다.
뒷동산에서, 길거리에서, 아파트 주변에서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다.

약속이 있으면 1시간 정도 일찍 가서
약속 장소 부근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든 것이 나에겐 탁월한 선택이었다.
풀 한 송이가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고
무심히 보았던 새 한 마리가 새롭게 보였다.
하늘의 구름이 이토록 예쁜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 시간을 누리고 돌아오면 살 것 같았다.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님과 대화할 힘도 생겼다.
건강한 시각으로 말씀을 묵상할 
내면의 힘도 새롭게 일어났다.

나의 목회에 대한 방향이 더 선명하게 잡히는 듯 했다.
커지고 높아지고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사라지고,
오직 말씀 하나에 삶을 거는 신자를 세우는 것에만
나의 삶을 걸고 살아가고 싶은 갈망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났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예쁜 들꽃을 발견하면
한참을 앉아서 살펴본다.
그 녀석이 나에게 말을 가는 듯 하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부리로
무언가를 열심히 쪼고 있는 모습을
한참을 넋을 놓고 쳐다보기도 한다.

다람쥐 한 마리를 우연히 만나면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 녀석을 바라보기도 한다.

카메라로 담기도 하지만
눈에만 담을 때도 많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그 자연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취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계심을,
그 분이 나도 지으셨음을 
새삼 가슴 저리게 깨닫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 종일 귀한 분들과
진도라는 섬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연신 사진을 찍느라
일행보다 뒤쳐지기 일쑤였다.

팽목항에 처음 가서 세월호의 흔적을 보고
목포에 안치한 세월호 배도 보았다.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흘렀다.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의 긴 여정을 아시는 권사님께서
티비를 보며 쉬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 깊은 갈망이 생긴다.
말씀을 보고 싶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말씀 속에서 나의 영혼을 숨쉬게 하는
참된 호흡을 만나고 싶다는 갈망이다.

자연을 통해 쉼을 누렸고
세월호의 흔적을 통해
삶과 사회의 부조리의 아픔을 느꼈으나,
그것들만으론 내가 살 수 없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말씀의 필요성, 하나님의 필요성,
그의 나라의 의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말씀이 있어서 감사하다.
말씀이 나에게 그의 나라를 가르쳐주고
그의 의를 깨닫게 해주고,
그것을 넘어서 그의 나라와 의를 누려가게 해주니,
말씀이야말로 나에게 유일한 생명이다.

말씀에 삶을 걸고,
말씀에 삶을 거는 신자들을 세우는 일에
나의 남은 시간들을 다 소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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