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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창의 샘(우물) 이야기_(32) 유등면 창신리 아랫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11-20 07:15

당산제 올리기 일주일 전 샘에 금줄치고 깨끗하게 관리해 그 샘물로 재물 장만
마을에 궂은 일이 생기면 일이 끝난 뒤 꼭 샘을 품어내고 깨끗이 청소
상수도에 의존하면서도 현재도 생활용수로 활용
순창군 유등면 창신리 아랫샘, 원형./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거등산(200m)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온 한 지맥이 300여 미터쯤 내려오다가 다시 남쪽으로 돌아 나가며 결인 된 구릉이 되고 있으니 이 고개를 ‘벼룩고개’라 한다. ‘벼랑’이라는 뜻의 ‘벼루’와 ‘고개’가 합쳐져 ‘벼루고개’가 되고 이것이 다시 ‘벼룩고개’가 되었는데 마치 ‘벼룩’과 관련된 땅이름처럼 되었으나 곤충 ‘벼룩’과는 관련이 없다. 벼룩고개는 잉어가 뛰는 형상이라 하여 비리(飛鯉)고개 또는 벼리고개라고도 부른다.

이 고개 아래는 예부터 마을이 있었으니 이곳이 창신리이다. 순창읍에서 1km쯤 떨어진 곳으로 유등면 서남쪽에 위치한다. 창신마을 북쪽 골짜기 관음사가 있던 곳을 가람자골이라 하고, 창신리 서쪽에 있는 당산을 당산몰이라 부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창신마을과 정동마을을 통합해서 창신리(昌新里)라 하였다가 1934년 한자명을 창신리(昌申里)로 바꾸었다.

창신리는 ‘역몰’이라고도 불렀는데 역(驛)이 있었던 마을로 고려 공민왕 때 원위전(院位田)을 나누어 준 것으로 미루어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신리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방도 730호선이 지나가는데 도로변에 윗당산인 할아버지 당산이 있고 서쪽에 할머니 당산이 있다. 그 중앙에 땀떼기 샘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창신리(昌申里)에는 예부터 웃것샘과 아랫샘이 있었다. 아랫샘은 창신마을이 형성된 시기부터 있었다. 아랫샘은 물의 수량이 많고 석간수로 돌 사이에서 도내기샘같이 물이 풍부하게 솟아올랐다. 창신 아랫뜸 샘은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로 활용하였기에 마을 주민들이 샘을 신성시 여기고 관리에 각별한 심혈을 기울였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안 날 창신마을 뒤 당산나무에 제를 올렸는데 아랫샘물로 음식을 장만하기 때문에 일주일 전에 금줄을 치고 샘을 깨끗하게 관리해서 그 샘물로 재물을 장만하여 제를 지냈다. 제를 지내기 전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농악대가 먼저 아랫샘에 와서 샘굿을 신명나게 치고 당산제 모시는 곳으로 가서 당산굿을 치고 엄숙하게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 궂은 일이 생기면 일이 끝난 뒤 꼭 샘을 품어내고 깨끗이 청소하고 관리를 해왔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렇게 귀중하게 여긴 샘이 상수도가 들어 온 후부터 주민이 상수도에 의존하면서도 아랫샘의 향수에 젖은 마을 사람들이 현재도 세탁물로 활용하는 등 생활용수로 쓰고 있다.

옛날에는 아랫샘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아랫샘에 지붕을 서구식으로 잘 디자인 하여 지어서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샘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보기에도 좋거니와 샘물도 옛날과 변함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요즘은 당산제나 샘굿을 간략하게 약식으로 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합심해서 전통의 풍습을 이어가는 맥이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출처. 순창문화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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